지난해 말 증권집단소송제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상당수 기업 관계자들은 기업의 사활까지 언급했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재계가 부랴부랴 움직인 덕인지 일단 2007년까지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기업의 분식회계란 것이 하루 이틀에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앞으로는 분식 안할테니 과거에 대해서는 해결할 시간을 달라는 애원이 통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24일 금융감독원과 증권선물거래소 등에 따르면 작년 증권선물건래소에 상장·등록된 118개 기업들을 무작위로 차출, 회계감리를 실시한 결과 제도시행을 앞둔 작년에도 여전히 분식을 한 기업이 2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위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투명경영’이 먼나라 이야기이거나 단지 구호일 뿐인 것은 아닌지 착잡한 마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대한항공과 기아차가 분식사실을 자진 공개하고 나섰지만, 그것 역시 ‘투명경영’ 차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2004년 12월 31일 이전 발생한 과거 회계처리기준 위반사실을 오는 2006년까지 자발적으로 수정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감리대상에서 제외하거나 감리중인 경우에는 제재조치를 두단계 경감하겠다는 금감위의 발표 때문이란 것이다.

‘상당수 기업은 집단소송제 시행전까지 과거 분식을 떨어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거나 ‘미국의 경우 회계 역시 마케팅전략의 한 방편으로 인식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너무 심하게 규제해 문제’라는 관계자들의 논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 한켠이 무거워진다.

오는 2007년 이후 증권집단소송제가 본격 도입되면 분식회계의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기업들은 `줄소송''에 직면하게 되고 그야말로 기업의 존폐가 논의될 정도의 막대한 피해를 볼 수도 있다. 특히, 비상장·비등록 기업들은 연도별로 한번씩만 사업보고서를 내놓기 때문에 올 연말과 내년말 과거 분식회계를 수정하지 않으면 기회를 잃게 돼 그야말로 ‘풍전등화’에 놓이게 된다.

2007년에도 다시 몇 년간 유예를 부탁하면 되는 것일까?
투명경영이니 윤리경영이니 하는 각종 상패들이 도처에 널려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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