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신문 최송목 칼럼] 늘 궁금했다. 서울에서 공부하던 시절 가끔 기차를 타고 고향을 오가던 때의 일이다. 기차역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다 보면 나이 듬직한 검수원이 한 뼘 남짓 조그마한 망치 하나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호기심 가득했던 학생 마음에 별별 생각과 상상이 다 들었다. 큰 덩치의 기차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난감 같은 작은 망치로 뭘 하겠다는 거지? 뭘 점검하는 거 같은데 저 작은 망치로 가능할까? 장군이 지휘봉 가지고 다니듯 폼으로 가지고 다니는 건가? 나중에 안 일이지만 40cm의 그 작은 망치 하나로 열차를 두들겨 보고 전해오는 소리와 촉으로 열차의 이상 유무를 진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의사, 변호사, 컨설턴트, 카운슬러, 스포츠 감독 등 능력 있는 전문가들의 시간당  비용 청구가 너무 과도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가끔 있다. “단 몇 마디 말했을 뿐인데, 시간당 아르바이트비가 만 원도 안 되는 시대에 너무 고액 아닌가? 터무니없다. “보이지 않는 능력, 전문지식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들이다. 과연 그럴까? 파리의 한 카페에  피카소가 앉아 있었다. 그를 알아본 한 여인이 그에게 다가가 자신을 그려달라는 부탁과 함께 원하는 만큼의 대가를 주겠다고 말했다. 간곡한 그녀의 청에 피카소는 단 몇 분 만에 여인의 모습을 그려주었다. 그리고 그림을 건네며 50만 프랑을 요구했다. 여인은 깜짝 놀라 피카소에게 따져 물었다. "아니, 불과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50만 프랑이나 받아요?" 피카소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방금 당신을 그리는 데 걸린 시간은 단 몇 분밖에 되지 않았지만, 당신을 이렇게 그릴 수 있게 되기까지 40년이 걸렸습니다.“ 피카소의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단 몇 분이었지만  피카소가 40년 동안 그림에 쏟아온 노력과 능력의 가치를 기준으로 그림값을 제시한 것이다. 이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최근 그의 그림 중에는 1,000억 원 넘는 가격으로 팔리고 있는 작품이 다수 있다. 보통 사람들 눈에는 간단한 스케치, 사소한 소리, 간단한 말 한마디지만 그 단순한 하나의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수십 년간의 축적된 경험과 지혜가 그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피카소의 5분간 연필 질 값이 1만 프랑, 그림 노하우 값이 49만 프랑이라는 것이고, 열차 검수원의 40cm 작은 망치 속에 40년 축적된 진단노하우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노동집약적 시대의 시간 중심의 시각이 이들의 농축된 노하우를 가려버린 것이다. 
 
 교육 회사 P 사장에게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다.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 이를 BM으로 등록하고 회사의 여러 분야에 적용하고 싶은 것이다. 관련 사이트를 뒤지고 1년 가까이 나름으로 열심히 노력했지만, 진행은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결국 노련한 전문 컨설턴트에게 자문했더니 단 하루 만에 답을 내놨다. “비용에 동의한다면 그리고 꼭 직접 챙기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면 외부 전문가에게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위임하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1년 내내 고민했던 사안이 단 몇 십만 원만 지불하고 3개월만 기다리면 서류가 완성되는 문제로 진단된 것이다. P 사장은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망치만 두들겼지, 외부 전문가가 있다는 것, 위임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리 주변에는 실제로 이런 일들이 무수하다. 정작 당사자들은 동분서주 열심히 일한다지만 부산하기만 할 뿐 몰입으로 인한 다른 선택을 잊고 있는 사장들이다. 이제 ‘귀찮니즘’을 기반으로 하는 단순 생활기능은 ‘편리미엄’이라는 새로운 소비 트랜드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 나아가 전문분야 (High skill work)도 합리적인 가격으로 위임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단기적인 프로젝트나 순간적인 전문지식 활용을 위한 초단기 업무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긱 워커(Gig worker)’들이 공급되고 있는 것이다. 오투잡, 넷뱅, 크몽, 탤런트 뱅크 등이다. 

지금과 같이 다양한 전문분야가 얽혀있는 복잡계에서는 회사를 총괄 지휘하는 사장이 전수 망치를 두드릴 필요가 없으며, 분야별 망치를 두드려 줄 전문가를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찾아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특히 한시적인 프로젝트(TFT)가 빈번하고 내부인재의 겸직 한계와 고급인력난이 겹치는 상황에서 유연하고 효율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유행 중인 Virtual 개념의 주 2∼3일 근무 v-CTO(최고기술경영자), v-CHO(최고인사경영자), v-CMO(최고마케팅경영자) 활용이 바로 그것이다. 사장은 본인이 직접 하던, 팀원이 하던, 외부 위임을 하던, 조언을 받아서 하던 그 또한 그의 능력이다. 여기에 더하여 수많은 전문가 중에서 진짜 전문가를 찾아내는 능력이 CEO의 새로운 능력으로 부상했다. 빌 비숍이 『핑크 펭귄』에서 말하는 비슷하게 생긴 수많은 펭귄 무리 중 핑크색 펭귄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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