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달과 아사녀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

▲ 영지(影池), 그림자가 비치는 연못이라하여 붙여진 이름, 불국사가 위치한 토함산이 가운데 보이고 있다. 

[소비자경제=이창환 기자] 로미오와 줄리에 이야기 못지않은 슬프고 애틋한 1000년 전의 사랑이야기가 우리 역사 현장에서 전해 내려오고 있는 곳이 있다. 효(孝)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지만,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는 찾기가 쉽지 않은데 예로부터 전해온 아픔을 담은 사랑이야기가 있어 듣는 이로 가슴을 아리게 한다.

관측 이래 최고 진도인 5.8의 강진이 강타한 경주에서 가슴 아픈 사연을 담은 사랑이야기가 있어 소개한다.

경주시청 옆길로 첨성대와 안압지를 가운데 끼고 7번 국도를 쭉 타고 나가 선덕여왕릉과 성덕왕릉을 지난다. 여기서 울산방향으로 10여km를 달려 괘릉(신라38대 원성왕릉)을 가기 전 우측 골목길을 들어서면 700m앞에 이번 이야기의 근원지가 펼쳐진다. 눈앞의 맑은 호수를 보노라면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이곳을 ‘영지못’이라 부르기도 한다. 공식 명칭은 영지(影池)이며, 그림자가 비친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융성했던 신라의 옛 수도에 어떤 사연이 있었기에 이 곳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걸까.

신라 경덕왕(景德王, 재위 742∼765) 때, 경주 토함산 아래 불국사에 대가람을 개축할 당시의 이야기이다.
자기 삶을 마칠 때까지 불국사 창건 공사를 주관했던 신라 재상 김대성(700년 효소왕∼774년 혜공왕)이 불국사를 짓기 위해 온 천하에서 묘공(妙工)과 공장(工匠)을 불러 모았다.

당시 가장 뛰어난 석공으로 알려진 ‘아사달’은 당나라(또는 백제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에서 초빙되어 다보탑을 먼저 완성해 둔 후, 석가탑을 쌓기 위해 주야로 정성을 쏟았고, 여러 해를 흘려보냈다.

남편의 일이 하루 빨리 성취되고 만날 날 만을 기다리던 ‘아사녀’는 아사달이 수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너무 보고 싶어 서라벌로 직접 남편을 찾아왔다.

그러나 여자는 들일 수 없다는 금기 때문에 탑이 완성되기 전까지 남편을 만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아사녀는 천리를 달려 왔는데 이를 포기할 수 없어서 매일 매일 불국사를 오가며 먼발치에서라도 남편이 보고 싶어서 주변을 서성거렸다.

이를 보다 못한 주지 스님이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그마한 연못이 있소. 정성을 다해 빈다면 석탑의 공사가 끝나는 대로 그 탑의 그림자가 연못에 비칠 터이니 그 때가 되면 남편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다음 날부터 아사녀는 하루 종일 그 연못을 들여다보며 탑의 그림자가 비치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렸다.

무심한 연못 위에 석탑의 그림자가 비칠 리는 만무했다. 남편을 지척에 두고도 만나지 못하는 연유로 상심한 아사녀는 고향으로 되돌아갈 기력조차 잃고 남편의 이름을 부르다 연못속에서 탑의 환상을 보고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 후, 탑을 완성한 아사달이 주지로부터 아사녀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한달음에 그 못으로 달려갔으나 아내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을 길이 없었다.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4호, 아사달이 아사녀를 생각하며 조각했다는 석불

사랑하는 아내를 그리워하며 못 주변을 방황하고 있는데, 아내의 모습이 홀연히 앞산의 바윗돌에 겹쳐지는 것이 아닌가. 웃는 듯하다가 사라지고 또 웃는 듯하다가 사라지고 그러기를 수차례, 그제서야 아내의 죽음을 알게 된 아사달은 그 바위에 아내의 모습을 새기기 시작했다. 조각을 마치고 보니 그 웃는 모습은 인자한 부처님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원불(願佛) 조각을 남기고 아사달은 아사녀의 뒤를 따랐다고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고도 하나 뒷일은 그렇게 전해지지 않았다.

후대의 사람들은 이 못을 ‘영지’ 라 부르고 끝내 그림자를 비추지 않은 석가탑을 ‘그림자가 없다’ 하여 ‘무영탑(無影塔)’ 이라고도 부른다. 또 다보탑은 그림자가 비친다 하여 ‘유영탑(有影塔)’이라고도 부르나 정말 비치는 지는 알 수 없다.

아사달과 아사녀의 이름은 시인 신동엽이 그의 초기 작품의 시적 주제로 삼은 이후로 우리 모두에게 친숙한 이름이 되었고 평범한 지아비와 지어미였던 이들 부부의 사랑이야기는 국경을 넘어 신라 땅 서라벌의 영지에서 종막을 고한다.

‘영지’의 가장 자리에 서서 토함산을 바라보면 그 가운데 불국사가 놓여있다. 한참을 보고 서있노라면 못 가운데 비치는 구름만 애달프게 흘러간다.

경주 지진으로 국보 20호인 ‘다보탑’ 난간석 접합부가 탈락하고 대웅전 지붕과 용마루가 일부 파손됐다 한다. 또 ‘석가탑(국보21)’은 6년 전에 몸체에 균열이 발생해 해체 수리를 거쳐 올해 초 일반에 다시 공개가 됐다. 관계당국은 수천년을 이어온 우리의 문화유산들이 재해로 상하는 일이 없도록 그 보존에 힘써야 할 것이다.

참고
경주 지진 발생 관련, 문화재 피해 및 복구상황, 문화재청
아사달·아사녀의 부부애 — 경주 영지 (물의 전설, 2000. 10. 30., 도서출판 창해)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한국설화 인물유형), 2005.,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 국립민속박물관

 

이창환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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