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중에 프로그래밍 전문가가 있었는데, 그의 나이가 마흔이었을 당시 12번이나 직장을 옮긴 이력을 갖고 있었다. 대충 어림잡아도 1년에 한 번씩 옮긴 셈이다. 본인은 역마살(驛馬煞, Journeyman)이라고 둘러댔지만, 어쨌든 다니는 현재 직장에 만족하지 못하니 이리저리 옮겨 다녔으리라. 물론 12번씩이나 이직하려면 실력도 어지간히 좋아야 가능한 일이다. 당시 야영하듯 이산 저산 휘젓고 다니면서 취업과 퇴사를 반복하던 그 선배를 지켜보면서, 선배 능력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직장은 옮기고 또 옮겨도 만족도 끝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런 그를 ‘집시 직장인’이라 부른다.

필자도 선배처럼 12번까지는 아니지만 서너 번 직장을 옮겨 다녔다. 첫 직장은 요즈음 인기 있다는 공기업에 해당하는 국책은행이었는데, 그 당시 우리 부서 인원만 400명, 전체는 1만 2000여명이었으니 큰 조직이다. 회사는 안정적이고 남들 보기에 멋있게 보였을지는 몰라도 주어지는 일의 범위나 권한의 한계가 분명하여 업무처리에 답답함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조직 즉, 좀 규모는 작지만 권한이 많은 회사를 희망하게 되었다. 소위 "용꼬리보다는 닭머리"가 되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작은 증권회사로 옮기게 되었는데, 부서 직원이 4명 정도였으니 전 직장 대비 1/100로 줄어든 작은 조직이었다.

일반적으로 중소기업은 온갖 일을 도맡아 처리하고 업무 범위는 광범하고 내가 알아서 임의 처리해야 할 일도 많지만, 규정이나 제도가 정비되어 있지 않아 어수선하고 두서가 없다. 말이 '닭머리'지 온갖 허드렛일 하는 잡부나 다름없을 때도 있다. 이때쯤이면 과거 지나왔던 대기업의 ‘용 꼬리’가 되기를 다시 그리워하게 된다. 꿈 많은 집시 직장인의 ‘오락가락’ 이런 심리 구조가 불만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것이다.

앞서 선배나 필자나, 모든 선택에는 완벽한 만족이란 있을 수 없고 늘 후회가 따르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도 회사생활의 대부분을 ‘회사 불만’으로 보냈다. 머릿속에는 항상 이상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에 적당히 만족하여 가만히 있다 보면, 뭔가 모자라고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반대로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희망적인 미래를 그리다 보면 현재의 불만 사항이 자꾸 누적된다. 이게 꿈 많은 직장인의 구조적 속성이고 딜레마다. 이런 진취적인 생각에 (이직할 수 있는) 능력까지 뒷받침되면 이 직장 저 직장 옮겨 다니는 집시 직장인의 호조건이 되는 것이다.

집시 직장인은 남들 보기에는 자유인처럼 휘젓고 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현재에 대한 몸부림이다. 직장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고, 사람이 있는 곳에는 항상 문제가 있다. 직장을 옮겨서 A라는 문제는 해결되지만, 옮긴 직장에서는 B라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문제가 없는 직장은 이 세상에 없다. 각기 다른 문제들이 있을 뿐이다. 새로운 직장에는 반드시 새로운 불만이 있다. 그래서 집시 직장인의 몸부림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하지만, 직장인이 급여와 자유 사이를 왔다 갔다 집시로 방황하면 생활이 고달프다. 그래서 대부분의 월급쟁이들은 나이가 들면서 밥과 타협 정착한다. 타협점을 잘 찿아서가 아니라 지쳐서 타협하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힘있을 때 밥과의 타협점을 마무리해야 한다. 그게 집시 직장인의 차선이다.

글: 《사장으로 견딘다는 것》 저자/ CEO 전략 어드바이저 최송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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