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정년도 없고 야근도 없고 해고도 없는 3無 회사가 있다. 4000여 명이 넘는 직원들 모두가 1인 1실 개인 사무실을 가지고 있고 신입사원도 자기 방이 따로 있다. 이곳에서는 회사를 캠퍼스라 부른다. 회사에 미용실, 세탁소, 어린이집은 물론 병원도 있으며, 근무하는 의사와 간호사도 모두 정식 직원이다. 회사 식당에 가족들을 데려와서 먹어도 되고 집에서 먹기 위해 음식을 싸가지고 가도 된다. 이를 위해 회사에는 4개의 대규모 육아 시설 및 전문인력이 배치된 병원 등이 갖추어져 있다. 이직률은 3~5% 정도로 소프트웨어 산업 업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새스 인스티튜트(SAS Institute) 라는 회사 이야기다.

SAS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 농업 학부 프로젝트로 출발한 통계분석 패키지 ‘SAS’로 유명한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1980년 노스캐롤라이나 캐리에 현재의 캠퍼스를 짓기 시작했으며, 직장 내 보육을 제공하였다. 1984년부터는 사내에 피트니스센터, 의료시설, 카페 등을 갖추며 일하기 좋은 직장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2020년 3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45년 연속으로 이익을 남겼다.

SAS는 비상장 회사다. 지금까지 상장을 하지 않는 이유는 기업 문화와 철학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외부 주주들이 많아지면 설립자의 이념을 유지하기 어렵고, 상장되면 직원에 대한 투자나 복지 대신 이익 극대화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SAS의 짐 굿나이트 회장의 경영철학은 ‘직원이 행복해야 고객도 행복하다’이다.

이런 이유로 SAS는 전 세계 많은 기업이 롤 모델로 삼는 회사다. 세계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 1위에 여러 번 꼽혔다. 구글도 SAS를 벤치마킹했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해왔고, 우리나라에서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유명한 제니퍼소프트 이원영 대표도 SAS처럼 되고 싶다고 말해왔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지금 국내든 해외든 세상의 흐름은 ‘좋은 회사’ 열풍이다. 회사는 ‘좋은 회사’가 되기 위해 열심이고, 사람들은 ‘좋은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안달이다. 이점에 대해 세 가지 측면의 시사점을 던져본다.

먼저, 심리학에 ‘레이니어 효과(Rainier Effect)’라는 게 있다. 미국 워싱턴대학의 한 사건에서 비롯된 말이다. 워싱턴대학 측은 교내 한 부지에 체육관을 지을 계획을 세웠다. 교수들은 이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는데, 그 이유는 체육관 건물이 들어설 부지가 캠퍼스 안에 있는 호수였기 때문이었다. 이때 워싱턴대학교수들은 미국 내 대학교수 평균 연봉에 비해 20퍼센트 정도 낮은 연봉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연봉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이 대학의 교수자리를 수락한 것은 바로 캠퍼스의 아름다운 경관에 반해서였다. 그렇다면 워싱턴대학 교수의 연봉 중 80%는 화폐 형식으로, 나머지 20%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대신 지불되는 셈이었다. 만약 체육관을 지어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파괴하고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면 20%의 연봉이 깎이는 것과 같고, 교수들도 더는 그 대학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어진다. 즉, 돈도 좋지만 근무 환경과 분위기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두 번째 관점은 ‘자유’라는 근원적 시각이다. 살기 어려워지다 보니 취업이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직장이란 직장의 본질은 역시 구속이다. 노사가 서로 합의한 약속과 제도 하의 통제와 약속된 구속이다. 과거의 강제된 노예 시절과 달라진 게 있다면 덜 강제된 노동이고 덜 억압된, 채찍이 사라진 자발적 구속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취업의 한계이며 영원히 풀 수 없는 난제다.

사전에서는 직장인을 "규칙적으로 직장을 다니면서 급여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일명 샐러리맨, 낮은 표현으로는 월급쟁이(월급을 받는 사람)다. 누군가로부터 대가를 받고 일한다는 자체가 구속의 출발이라는 점에서 자유와 구속은 영원히 서로 도달할 수 없는 레일과도 같은 평행선이다. 간극이 좁아질 수는 있지만 결코 일체화될 수 없는 개념이다. 그래서 많은 청년들이 ‘여기가 좋을까 저기가 좋을까?’ 저울질하면서 이 직장 저 직장으로 옮겨 다니는 노동 유랑민(labor nomad), 노동 집시가 되는 것이다.

‘직장’, ‘회사’라는 명칭도 진화하고 있다. 그냥 '회사'가 아니라 플레이스테이션, 캠퍼스 등으로 한껏 격조를 높여 부르고 있다. 워크-일하는 공간, 플레이-놀이터, 스테이-머무는 공간, 캠퍼스-대학교정의 개념을 빌어 온 것이다. 캠퍼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자유분방함을 최대한 표방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다고 ‘구속’의 본질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언어의 성찬으로만 보기에는 요즈음 회사들의 태도가 진지하고 노력도 가상해 보인다. SAS 직원들이 주당 35시간의 근무시간을 자기가 정해서 일하는 것이나, 신입사원 포함 모든 직원들에게 교수 연구실 같은 개인 방이 주어지는 것이나 이 모두가 자율과 자유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니즈를 인식하고 회사가 이를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움직임이다.

세 번째는 회사와의 관계다. 오래전 SAS 회사를 직접 방문한 권태호 기자(한겨레)가 한 직원에게 질문을 던졌다. “만일 회사가 어려워져 프리스쿨도 문을 닫고, 복지 프로그램도 끊고, 월급도 줄어든다면, 그래도 이 회사를 다니겠느냐?”라고. 그는 답했다. “나는 복지 때문에 이 회사를 다니는 게 아니다. 내가 아들의 학교 행사 때문에 3시에 회사를 떠나도 이를 의심하지 않는 상사, 딸아이 학교 자원봉사 때문에 늦게 출근해도 나를 비판하지 않는 동료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을 믿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이 회사를 다니는 가장 큰 이유”라며 “이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고, 이 회사는 내 집과 같은 곳이다. 그런 어려움이 닥친다 하더라도 나는 회사와 동료들이 능히 극복하리라 믿고, 나도 같이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SAS의 임금은 다른 정보통신(IT) 기업들과 비슷하다. 보다 고임금과 스톡옵션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월스트리트로 가겠지만, SAS의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SAS에 오는 것이다. SAS는 잘 ‘만들어진’ 꿈의 직장이라기보다는 ‘같은 꿈’을 지닌 사람들이 꿈의 직장을 ‘만들어 가는’ 회사로 보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 될 것이다.

종합해 보면, 좋은 회사란 결국 흔히 말하는 꿈과 비전 같은 회사의 일방적 리딩의 시각이 아니라, 철저하게 개인적 시각인 임금, 근무 환경과 분위기, 자율과 자유,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글: 《사장으로 견딘다는 것》 저자/ CEO전략 어드바이저 최송목

<인용/참고문헌>

1. 세계 최고 기업은 왜 직원 행복에 집중하는가?, 정진호, https://m.blog.naver.com/jjhland/221340976008

2. 40년 동안 상장 안 했던 SAS, IPO 선언한 이유는?, 심재석, https://byline.network/2021/07/45/

3. 위키백과, SAS인스티튜트, https://ko.wikipedia.org/wiki/SAS_%EC%9D%B8%EC%8A%A4%ED%8B%B0%ED%8A%9C%ED%8A%B8

4. 미국 ‘일하고 싶은 직장 1위’ SAS 가보니…,한겨레,권태호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globaleconomy/420618.html

5. 사장을 위한 심리학, 천서우룽,역자 홍민경,센시오, 2019

6 나는 전략적으로 살 것이다, 최송목, 유노북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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