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신문 최송목 칼럼] 수년 전 ‘박근혜 누나’ 건으로 세상이 시끄럽더니 최근에는 ‘재인이 형’으로 말들이 많다. 흔히 ‘형님 아우’는 동양 문화권에서 친밀, 막역한 사이에 쓰이는 호칭이다. 평소 술자리나 고향, 학교 선후배, 동기 동창회에서 많이 오가는 호칭이기도 하고, 조폭이나 마피아 세계에서 강요된 신뢰, 확실한 서열과 충성심으로 엮인 인위적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과거 우리는 빠른 성취와 결과물을 얻기 위해 단결해야 했고 ‘형님 아우’로 어우러진 충성심과 소속감으로 빠르게 결속해야만 경쟁자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래서 회식이나 술자리에서 술잔을 셀 수 없이 부딪쳤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형님 아우‘를 소리 질러댔다.

특히 직원 서너 명의 회사 사장은 언제 떠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에 나이 어린 직원을 붙잡고 ’형님 아우‘로 얽매보려고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아직도 우리는 모이면 나이, 학번, 고향, 기수 등으로 서열을 묻고 바로 ’형님 아우‘가 되어 어울리고 밀착도를 높인다. 중고교 졸업 OO회, 대학 OO 학번, 판검사들의 OO기, 무슨 교육과정 00기 등이다. 서로 친해 보려는 수단이기도 하고 인간관계 소통의 중요한 실마리이기도 했다.

부족이나 씨족사회에서 가장 원초적이고 최소한의 인간관계로 출발한 ‘형님 아우’는 딱딱한 비즈니스 관계를 친밀도 높은 인간관계로 분위기를 전환해주는 효과가 분명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원초적이고 잠재된 감성의 ‘형님 아우’ 좋은 호칭을 왜곡하거나 악용하는 무리가 가끔 있다.

관계와 친밀도를 최대한 대내외에 널리 알림으로써 호가호위(狐假虎威)의 수단으로 삼아 뒷배를 통해 권력을 탐하고 주변을 주무르는 부류다. 다른 한편으로 로비의 도구 내지는 뇌물이나 편의의 디딤돌로 삼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듣기 좋은 말로 영업을 잘한다거나 처세술이 좋다거나 인간관계가 좋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형님 아우‘의 인간관계 접근법이 앞으로 얼마나 계속 유효할지, 미래 조직발전에 얼마나 기여할지는 의문스럽다.

사실 필자에게도 ‘형님 아우’로 부르며 지내는 사이가 몇 있다. 문제의 핵심은 ‘형님’의 선용과 악용, 왜곡 등 그 쓰임새가 외견상으로 거의 구분이 어렵다는 점에 있다. ‘형님 아우’로 정이 깊어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공사(公私) 구분 없이 따라붙으면 그 틈새로 엉뚱한 기회를 엿보는 자들이 생겨나서 문제가 싹트는 것이다.

눈치 빠른 사람들이 달라붙고 자연스럽게 하나의 세력이 형성되는 것이다. 쉽게 저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좋다고 흥얼댈 수도 없는 이 난제의 ‘형님 아우’를 회사 조직에서는 어떻게 다루는 게 바람직할까?

먼저, 5명 미만의 소규모회사이고 앞으로도 계속 5명으로 유지하고 싶다면 ‘형님 아우’ 문화도 나름 괜찮은 조직관리 방법이다. 하지만 지속적인 조직 성장과 사회적인 흐름을 감안하면 회사라는 공조직에서는 이런 문제의 원인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요즈음 직원들은 아버지 형님 같은 리더를 원치 않는다.


사석이건 회식 자리건 ‘형님 아우’ 호칭 자체를 꺼린다기보다는 거기에서 생기는 서열에서 아우로서 ‘어린애’ 취급받는 걸 원치 않는다. ‘형님 아우’가 총체적 회사 경영으로 이어져 경영, 급여, 배당까지 같이 어우러진다면 모를까 술자리 등 사석에서 일시적이고 휘발성 호칭으로만 남발되거나 상사의 상투적 언어일 때 그들은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이다.

‘직장은 직장이고 가정은 가정이다.’라는 세상 흐름의 기조를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 ‘가족’이라는 슬로건하에 상사들이 아버지, 형님, 언니처럼 군림하던 과거의 조직문화는 이제 경쟁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그렇다고 직원들을 친근하고 살갑게 대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서열로 대하는 수단으로 ‘형님 아우’를 사용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래서 친형제라 할지라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직함과 존칭을 사용하는 게 좋다.

두 번째는 신세대들의 유목민 성향을 고려한 조직문화 형성이다. 그들은 과거처럼 한 직장에서 오래 머무르기를 원치 않는다. 여러 회사에서 여러 상사를 경험하고 여러 가지 경력과 경험을 통해 개인의 성장을 추구한다. 가족적인 ‘형님 아우’를 지향하는 회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때 사장은 그가 원할 경우 언제든지 놓아 보낼 수 있는 쿨한 마음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나아가 직원들이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 주고 둥지를 튼튼히 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세 번째는 조직 운영 방법을 바꿔보는 것이다. 과거 프레임이었던 ‘형님 아우’도 살리고 ‘회사와 가정’을 분리하는 직원의 마음도 같이 보듬어 상호 공존을 꾀하는 것이다. 올림픽 ‘국가 대표팀’ 꾸리듯 한 사람 한 사람 소속은 다르지만, 회사라는 목표를 위해 모였다가 경기가 끝나면 헤어져 각자 자기 집(소속)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예컨대 애자일(agile) 조직이나 프로젝트팀같이 운용함으로써 명확한 목표제시, 공정한 성과측정, 합당한 보상으로 조직을 전문화, 한시화(限時化)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형님 아우’ 문화도 충분히 수용이 가능할 것이다. 내일이라도 헤어질 가능성으로 인해 오히려 끈끈한 우정의 ‘형님 아우’로 가까이 지내도 부작용이 없을 것이고. 나아가 각자 전문가 파트너로서 훌륭한 연결고리 수단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이제는 각자에게 자동차를 한 대씩 주고 운전대를 맡기는 자율성과 전문 능력을 중시하는 시대가 되었다. 회사는 자동차의 종류와 특성에 따라 운전자를 고용하고 그를 믿고 그의 운전을 지켜보는 시대다. ‘형님 아우’의 구속을 통해 충성심을 강요하는 수직관계가 아니라, 공동의 목표를 두고 상호신뢰와 자율성을 근간으로 하는 수평관계의 시대다. 상호 주체로서 서로를 대등하게 존중하는 각자 ‘기능자(技能者)’로서 때로는 뭉치기도 하고 때로는 헤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제 ‘형님 리더십’의 종언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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