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불어닥친 임원 칼바람 속, SK텔레콤 박정호 사장 유임 결정
최태원 회장 비서실장 출신 M&A 전문가, ‘뉴 ICT’ 기업 선도 숙제
AI 사업 지대한 관심, 관련 조직 직접 만들고 확대 개편 중
중간지주사 전환 등 향후 과제 슬기롭게 해결할 것인지 관심

박정호 SK텔레콤 CEO가 '5G 론칭 쇼케이스’에서 5G 상용화를 통한 '초시대' 개막을 선언했다.
SK텔레콤 박정호 사장이 당분간 기업을 더 이끌게 됐다. AI미래기술을 선도하고 '뉴 ICT'기업으로서의 발걸음을 재촉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SK텔레콤 제공)

[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통신사들은 혁신과 변화의 물결 한 가운데 있다. 인공지능 AI와 5G,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등 다양한 IT 관련 기술들이 모두 통신과 연결되어 있어서다.

최근 ICT 산업은 국가간, 사업간 경계가 무너지면서 다양한 협업과 확장이 이뤄지고 있으며 그 와중에 경쟁 또한 치열하다. 실제로 최근 통신사들은 한달이 멀다하고 저마다 신기술과 서비스, 또는 여러 기업과의 협업 소식을 경쟁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주요 통신사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장점을 내세우며 ‘단순한 통신 기업을 넘어 미래 삶의 질을 선도하겠다’고 선언한다. 박정호 사장이 이끄는 SK텔레콤도 그 변화와 경쟁의 최일선에 선 기업이다.

◇ SKT 박정호 사장, “대한민국 ICT 혁신의 주축될 것”

박정호 사장 얘기를 하려면 우선 SK텔레콤의 조직 개편 및 임원 인사 내용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바로 어제(5일) SK텔레콤이 5G 및 New ICT 사업 전체의 성장을 가속화하겠다며 2020년 조직 개편 및 임원 인사를 시행했기 때문이다. 

박정호 사장은 5일 “2020년은 SKT와 ICT 패밀리사 전체가 가시적인 성장을 통해 기업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고, 나아가 대한민국 ICT 혁신의 주축이 되는 한 해가 될 것”이라며, “이를 위해 모든 조직을 5G 및 New ICT 각 사업 실행에 적합하게 강하고 효율적인 체계로 재편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날 SK텔레콤은 조직개편안을 공개했다.

조직개편안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SK텔레콤은 ‘MNO’와 ‘New Biz’를 각각 최적화해 지원하는 이원화 체계를 도입한다.

5G를 중심으로 산업 및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기존 통신 사업과 새롭게 시장을 만드는 New ICT 사업을 양대 축으로 하는 전략이다. 양 축을 가장 잘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 실행력을 제고하고 각 영역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기술 조직은 현재 분산 운영되고 있는 AI센터, ICT기술센터, DT센터의 사업별 기술지원 기능을 AIX센터로 통합해 AI가 모든 사업의 핵심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한다.

SK텔레콤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디지털 광고’, ‘게임’, ‘클라우드’ 전담 조직을 별도로 만든다. ICT패밀리사의 통합 광고사업을 수행할 광고/데이터 사업단, 게임 및 클라우드 사업을 추진할 클라우드게임 사업담당과 에지클라우드 사업본부를 신설한다. 향후 이 조직을 차기 핵심 사업으로 집중 육성할 방침이다.

SK텔레콤은 전사 차원의 핵심 사안에 대해 CEO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CIDO’를 신설하고, 의사결정 기구인 3대 위원회(CapEx/OpEx위원회, 투자심의위원회, 서비스위원회)도 운영한다.

수평적 소통과 빠른 실행을 위해 임원 조직 체계를 3단계 이하로 대폭 축소하는 등 조직을 정비한다. 이에 따라 ‘MNO사업부’는 산하 사업단/센터 조직을 본부 단위로 재편한다. 예를 들어 ‘사장 - 사업부 - 사업단 - 그룹’으로 구성된 체계를 ‘사장 - 사업부 - 본부’로 간소화하는 식이다.

박정호 사장은 “지난 3년간 국내 1등 통신사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New ICT 기업’으로 체질 개선을 이루었다”며, “내년부터 ICT패밀리사 모두의 고른 성장을 통해 글로벌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New ICT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여정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SK텔레콤 박정호 사장이 25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문화혁신포럼’ 연사로 나섰다 (사진=SK텔레콤 제공)
SK텔레콤 박정호 사장이 11월 25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문화혁신포럼’ 연사로 나선 모습 (사진=SK텔레콤 제공)

◇ 연말 인사 앞서 AI조직 사장 직속으로 개편, 그룹 회장도 관심

SK텔레콤은 연말 인사를 앞두고 지난 10월 AI센터에 대한 일부 조직개편을 단행한 바 있다. 당시 AI센터에서 AI서비스플랫폼단을 분리해 CEO 직속 'AI서비스단'을 만들었다. 박정호 사장 직속 체제로 힘을 더욱 싣겠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박정호 사장은 취임 후 3개월만에 'AI사업단'을 만들고 그해 5명의 임원을 포진시키며 규모를 키워왔다. 지난해 9월에는 상위 조직인 서비스플랫폼사업부와 AI리서치센터를 통합돼 AI센터를 신설하고 인력과 조직을 강화한 바 있다.

AI는 박 사장 뿐만 아니라 최태원 회장의 키워드이기도 하다. 최 회장 역시 AI와 디지털전환을 SK그룹 주요 과제로 자주 언급해왔다. 최근에는 SK계열사의 사명 변경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AI가 전면에 드러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발언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최근 SK그룹이 AI 신약개발에 1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만큼 그룹 차원에서 인공지능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AI는 ‘초개인화 기술’을 실현시킬 열쇠로 꼽힌다. SK그룹사뿐만 아니라 정부와 주요 기업들이 일제히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박정호 사장이 이끄는 SK텔레콤 역시 향후 이 부분에 사활을 걸 것으로 보인다.

◇ 최태원 회장 비서실장 출신 M&A 전문가

연말 인사철을 앞두고 기업마다 변화의 물결이 몰아쳤다. GS그룹 허창수 회장이 물러나는 등 굵직한 인사이동도 있었다. SK텔레콤도 인사 시즌을 앞두고 여러 전망이 오갔다. 그 와중에 박정호 사장은 유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았다. SK브로드밴드-티브로드 합병 등 현안이 아직 남아있고, SK텔레콤은 중간지주사 전환도 마무리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정호 사장은 최근 한-아세안 문화혁신포럼에 참석해 아시아 각국 정상들에게 ‘범아시아 콘텐츠연합’을 결성하자고 제안했다. 이런 적극적인 행보를 두고 주위에서는 그의 연임 분위기를 점치기도 했다. 거취가 불분명한 상태였다면 저런 중장기 계획을 힘있게 추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정호 사장은 지난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최태원 회장 비서실장을 역임하는 등 최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인물 중 하나다. 재계 일각에서는 ‘오른팔’이라고도 표현한다. 

경영권을 상속받은 재계 3~4세 인사들에 비하면 소비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이지만, SK그룹에서 박정호 사장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SK가 중요한 의사결정을 앞둔 시점마다 최 회장은 박 사장 카드를 내밀었다. 2011년 하이닉스반도체(현재 SK하이닉스) 인수 당시 박 사장이 큰 역할을 했고, 2014년에는 최 회장을 대신해 SKC&C 사내이사 자리에도 올랐다.

그 시절은 SKC&C와 SK의 합병설이 끊임없이 불거졌던 시점이고, 최 회장이 징역 4년의 실형을 확정받으면서 SKC&C 등 등기이사에서 물러나야 하는 시점이었다. 위기의 순간에 자신의 역할을 대신할 ‘구원투수’로 낙점한 인물이니 평소 신뢰가 어떠한지 짐작가는 대목이다.

박정호 사장은 2015년에는 SK그룹 구조개편도 주도했다. SKC&C와 SK 합병 작업을 마무리한 뒤 합병법인인 SK 대표이사에 올랐다. 당시 그룹 주력계열사 최연소 CEO타이틀을 차지한 것도 그였다.

이후 지금의 그룹 지배구조 체제를 마련하고 ADT캡스와 티브로드 등 M&A가 대부분 그의 손에서 나왔다. 도시바메모리 인수 작업도 박정호 사장이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텔레콤 박정호 사장(오른쪽)이 ‘CES 2019’ 전시장 내 삼성전자 부스에서 삼성전자 고동진 사장과 함께 '디지털 콕핏(Digital Cockpit) 2019'를 체험하고 있다. (사진=SK텔레콤)
SK텔레콤 박정호 사장(오른쪽)이 ‘CES 2019’ 전시장 내 삼성전자 부스에서 삼성전자 고동진 사장과 함께 '디지털 콕핏(Digital Cockpit) 2019'를 체험하는 모습 (사진=SK텔레콤)

◇ 뉴 ICT기업 향한 광폭 행보

박정호 사장은 앞으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꾸준히 강조하고 있는 '딥체인지'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이 IT 기술을 활용한 신사업 발굴 및 사회적 가치 실현을 강조해왔기 때문에, 박 사장은 그룹의 딥 체인지를 앞서 이끌어야 하는 과제와 마주했다.

박 사장은 그룹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 글로벌성장위원회 위원장직도 그대로 유지한다. 이 위원회는 그룹의 사업을 글로벌화하고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핵심 조직이다. 

박정호 사장은 최근 ‘뉴 ICT기업’이라는 화두를 제시해왔다. 단순한 통신사를 넘어 미디어와 플랫폼, 인공지능 등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폭넓은 사업을 영위하겠다는 취지다. 물론 SK텔레콤뿐만 아니라 다른 통신사들도 같은 얘기를 한다. 그 차별화를 어떻게 추진할 것이냐가 박정호 사장의 숙제다. 

SK텔레콤은 최근 광폭행보를 보이며 다양한 발걸음을 걸어왔다. 최근에는 IT업계 신공룡 카카오와 적극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3천억 원 규모의 지분을 교환하고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양사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미래 ICT산업을 선도하기 위한 ‘빅딜’이다. 최고경영자의 적극적인 의지덕분에 가능한 규모다.

◇ 박정호 사장에게 남은 또 하나의 과제, 중간지주사 전환

SK텔레콤의 중간지주사 전환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도 박 사장의 과제다. SK텔레콤이 통신사업회사와 지주회사로 분할한 뒤 지주회사가 SK브로드밴드, SK하이닉스 등 SK그룹의 ICT계열사들을 아우르는 ICT지주사가 된다는 구상이다. 이와 함께 SK텔레콤이 인적분할한 뒤 탄생할 지주회사를 현재 지주사인 SK와 합병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SK텔레콤의 지배구조 개편이 필요한 이유는 SK하이닉스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업황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인수합병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지배구조상 SK하이닉스가 다른 회사를 인수합병하려면 피인수회사 지분을 100% 보유해야 한다.

지배구조를 개편해 SK하이닉스가 지주회사의 자회사가 되면 활발한 인수합병이 가능하다. 박 사장의 원래 계획은 올해 안으로 중간지주사 전환을 마치는 것이었으나 아직 그 작업은 완료되지 않았다. 이제 숙제는 다음 임기로 넘어갔다. 

이에 대해 올해 1월 미국에서 열린 세계가전전시회(CES) 2019에서 올해 안으로 중간지주사 전환을 마치겠다고 말했지만 3월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는 “올해 안에 한다고 100% 보장하기는 힘들다”고 한 발 물러선 바 있다.

업계에서는 중간지주사체제 전환 역시 최태원 회장의 뜻이라고 본다. 실제로 최 회장은 지난 2016년 그룹 CEO 세미나에서 “일부 계열사들은 중간지주회사 전환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박정호 사장이 최태원 회장의 의중과 기업의 방향성, 그리고 미래세대 소비자들의 삶의 질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인지 업계의 관심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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