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신문 소비자주권칼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2008년 약관 개정을 통해 마일리지 유효기간을 10년으로 제한했다.

이를 근거로 두 항공사는 올해 1월1일부터 항공소비자들이 2008년 적립한 마일리지를 소멸시켰다. 소멸된 마일리지는 곧바로 항공사의 이익으로 잡힌다. 필자가 소속한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소비자의 재산인 마일리지 소멸을 막기 위해 지난 2년 동안 항공사의 마일리지 운용 실태조사를 비롯해서 전문가 여론조사, 마일리지 소멸중지 가처분 신청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대응해 왔다.

항공사가 마일리지 약관 개정을 통해 마일리지를 소멸시킨 이유는 다소 복잡하다. 국제회계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업회계기준은 당기수익에 대응하고 불특정 미래에 지출될 가능성이 있는 채무에 대하여 기업이 그 청구에 대비하여 수익이 발생할 때 마다 충당금을 계상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부채성충당금이라고 하는데, 항공사는 은행이나 카드사 등 다른 제휴사에게 마일리지를 판매 할 뿐만 아니라 다른 항공사의 탑승마일리지도 실행하고 있다. 항공사는 이를 종합한 총 발행 항공마일리지의 일정부분을 부채성충당금으로 계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1년부터 국내 모든 상장회사 및 일부 비상장금융회사에게 국제회계기준(IFRS)이 의무적으로 적용되었고, 이러한 기업회계기준의 변화로 인해 항공사들은 2011년부터 마일리지 발행규모에 비례하여 회계상의 선수금 항목, 즉 부채항목이 증가하게 되었고 그 결과 항공사의 당해 자산건전성은 크게 악화 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결국 항공사는 국제회계기준에 따른 마일리지 매출이 부채로 계상되자 이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회원약관을 개정하여 마일리지 이용조건을 강화하고, 마일리지 유효기간을 도입하였다. 이로 인하여 당해기간이 도과된 마일리지에 대해서는 지급의무가 사라지게 되었고 마일리지로 인한 부채항목은 항공사의 이윤으로 전환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소비자들이 보유한 항공마일리지의 사용처가 마땅치 않다는데 있다. 마일리지 소멸 시효는 다가오는데 항공권을 구입하고 싶어도 성수기는 물론이고 평수기 역시 항공권 구입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마일리지를 통한 항공권 구입 비율이 3%정도라고 하지만 확실한 수치가 나온 적도 없다.

항공권 구입이나 좌석승급 이외에 제휴관계사를 통해 마일리지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제한적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로고상품과 렌터카, 국내외 호텔, 리무진 버스, 민속촌 관광, 체험장 등 몇군데 밖에 되지 않는다. 아시아나 항공 역시 로고상품이나 호텔, 리조트 등의 사용처는 대한항공과 비슷하다. 그마저도 두 항공회사의 계열사 위주의 사용처가 대부분이다.

두 거대 항공사가 자주 예로 드는 외국 항공사의 마일리지 운용 실태를 소비자주권이 조사해 본 결과 마일리지를 통한 사용처는 두 항공사와 비교할 수 없이 매우 다양하다. 마일리지를 통한 항공권 구입은 물론이고 좌석승급에 대부분 제한이 없다.

또한 현금과 마일리지를 합한 복합결제, 옥션을 통한 물품구매나 면세점 이용, 마일리지의 선물, 온라인 쇼핑은 물론이고 양도나 상속 등이 가능하다. 두 항공사 측은 외국항공사의 짧은 소멸시효 기간을 말하지만, 마일리지가 추가로 적립되거나 기부, 제휴관계사 이용, 또는 일정부분의 비용(수수료)을 지불 할 경우 자동연장이 가능하다. 실질적으로 외국 항공사의 경우 소멸시효가 무한정이라고 봐야 한다.

올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2016년부터 2019년 8월 까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이 국내 19개 전업·겸업 카드사에 판매한 마일리지 수익이 1조8천79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항공사들은 제휴 관계사를 통해 마일리지를 판매, 현금거래 하고 수익을 창출했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 것이다.

그럼에도 항공사는 소비자들이 적립한 마일리지의 소진처를 사실상 제한하고 여기에 일방적으로 마일리지 소멸기간을 도입하여 소비자의 재산인 마일리지를 소멸시킨 것이다. 이는 마일리지를 소비자의 재산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명백히 소비자를 우롱하는 처사다.

두 항공사의 현재의 마일리지 운용방식은 변화된 시장 환경을 따라 잡을 수 없다. 소비자들이 마일리지를 적립하는 방식은 단순히 항공권 구매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다양한 경제활동을 통해 유통되고 적립되기 때문이다. 마일리지는 항공권 구입 시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단순한 보너스 상품이 아니라 항공사의 주된 판매 수입원이다. 이는 마일리지가 소비자에게는 명백한 재산이라는 사실을 국감자료를 통해 본인들 스스로 보여주었다.

최근 필자가 몸담고 있는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현행 마일리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독립적인 마일리지 표준약관 제정(안)을 마련하여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했다.

주요 내용으로는 첫째, 회원이 적립한 항공마일리지는 소비자가 다양한 경제 활동을 통해 축적한 채권적 재산권으로 인정할 것.
둘째, 항공권 구입 시 탑승마일리지 적립기준과 적립수량 공시를 의무화 할 것.
셋째, 마일리지 가액공시를 의무화하여 마일리지의 과도한 차감을 막고 마일리지 가치와 운용의 투명성을 유지하도록 할 것.
넷째, 마일리지 사용 범위(사용처)를 확대 할 것.
다섯째, 채권적 성격의 재산인 마일리지가 일신전속적 성격의 재산이 아니라는 법원의 판례를 고려하여 4촌 이내의 직계 존비속에게 상속과 양도할 수 있도록 할 것.
여섯째, 마일리지 소멸시효의 기산점과 소멸시효중단 사유를 규정하여 민법 제168조(소멸시효의 중단사유)를 준용하여 할 것 등이다.

2020년 1월 1일이면 2009년도에 소비자들이 적립한 마일리지가 또다시 소멸된다. 2020년도 소멸 마일리지 액수만 해도 수천억 원에 이르며, 마일리지 소멸과 동시에 그 이익은 고스란히 항공사의 몫으로 돌아간다. 소비자들에게 지극히 불리하게 돼있는 두 거대 항공사의 일방적인 마일리지 제도를 폐기하고 소비자 재산권 보호를 우선하는 독립적인 표준약관 제정이 필요하고 시급한 이유다.

<칼럼니스트=소비자주권시민회의 문화소비자센터 박홍수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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