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남 4녀 중 차남, ‘장자승계 원칙’ 깨고 능력 인정 받아 그룹 승계
‘선택과 집중’ 비화장품 계열사 적극 정리하며 아모레퍼시픽 브랜드 강화
중화권 이외 해외 시장 개척, 가맹점주와의 상생 방안 등은 향후 과제

서경배 회장이 과거 아모레퍼시픽 7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경배 회장이 과거 아모레퍼시픽 7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아모레퍼시픽이 K뷰티 선두주자가 되기까지는 긴 세월이 필요했다. 1932년 개성에서 첫발을 내딛고 50년대부터 화장품 시장을 개척했다. 90년대 초중반 과감한 구조조정을 거쳤으며 2000년대 해외시장을 개척하기까지 숱한 어려움을 극복해왔다. 그 중심에 서경배 회장이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는 집을 방문한 ‘아모레 아줌마’에게 화장품을 구매하고 피부 마사지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아모레’의 오랜 역사 중에서 매우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다.

서경배 회장이 이끄는 ‘아모레퍼시픽’의 역사를 짚어보려면 193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서 회장의 할머니, 그러니까 서성환 선대회장의 모친 윤독정 여사가 개성에서 동백 머릿기름을 팔던 ‘창성상점’이 시초다.

◇ 국내 화장품 시장 ‘원조 잇템’ 변화의 기로에 서다

서성환 창업주는 모친의 뒤를 이어 1943년 개성에서 화장품 유통 및 판매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1945년 태평양화학공업사를 세웠고 1959년에 프랑스 화장품 회사와 제휴해 코티분을 생산해 판매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화장품 생산을 시작했고 1964년에는 국내 처음으로 방문판매시스템을 도입했다. 이후 ‘아모레’라는 브랜드로 소비자들에게 인지도를 높였다. 그들의 시도는 대부분 첫걸음이었다. 말하자면 아모레퍼시픽은 국내 화장품 시장의 원조 ‘잇템’이다.

변화를 맞은 것은 1990년대다. ㈜태평양으로 상호를 변경했고 당시 여러 영역에 걸쳐 다양한 사업을 영위했다. 하지만 사업 범위가 너무 넓어지면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졌다. 그 작업을 진두지휘한 것이 서경배 현 회장이다. 그는 당시 기획조정실장으로 취임하면서 사업 구조를 정리해 화장품 계열사 위주로 재편했다. 이후 2006년 지주회사 체제를 출범한 것이 현재 소비자들이 아는 ‘아모레퍼시픽’이다.

그는 2남 4녀 중 차남으로 국내 기업가의 오랜 관행인 ‘장자승계 구도’를 깨고 능력을 인정 받아 그룹을 물려 받았다. 당시 서경배 실장은 태평양증권, 프로야구단 태평양돌핀스, 태평양패션, 태평양여자농구단, 동방기획 등 화장품 사업과 관련이 없는 계열사들을 매각하고 태평양시스템과 태평양정보통신 등의 사업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다.

이후 서경배 회장은 아모레퍼시픽 화장품 브랜드를 대폭 강화했다. 1991년 마몽드, 1994년 라네즈, 1995년 헤라, 1996년 아이오페, 1997년 설화수, 2000년 미쟝센 등을 출시하면서 여성 소비자들의 마음을 굳게 잡으며 승승장구했다. 1997년 3월 대평양 대표이사 취임 후 22년만에 매출과 영업이익을 10~20배 이상 키워냈다.

◇ 소비자와의 소통 중시, 발로 뛰는 체험형 리더십 CEO

서경배 회장은 평소 고객과의 소통을 매우 중시한다. 서 회장은 지난해 4월 정기 조회에서 아모레퍼시픽이 소비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강조한 바 있다. 당시 서 회장은 “고객을 일반적으로 구매자라는 관점으로 봤는데 지금은 달라졌다. 고객은 더는 물건을 사는 사람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기업과 고객 간 소통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고객 간의 소통이 더 중요하게 떠올랐다”고 말하면서 “이제는 칸 광고제에서 대상을 받는 것보다 고객들의 평점을 잘 받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화장품은 대표적인 소비재인 만큼, 실구매자인 소비자들과의 소통을 중시하자는 의미다.

서경배 회장은 올해 신년 행사에도 “앞으로도 변함없이 고객을 중심에 세우는 회사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고객이 원하는 혁신 상품을 만들고, 남다른 고객 경험을 선사하며, 고객의 마음을 맞춰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소통과 더불어 중시하는 것이 바로 ‘직접 체험’과 ‘발로 뛰는 행보’다. 아모레퍼시픽의 주요 시장 중 하나가 중국인데, 서 회장은 지금까지 중국 출장만 120 차례 이상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다. 화장품을 직접 써보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마스카라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제품을 써봤다고 한다.

(사진제공 = 아모레퍼시픽)
아모레퍼시픽은 오랜 역사를 가진 기업으로, 그간 여러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K-뷰티 산업의 대표주자로 우뚝 섰다. 사진은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 본사 전경 (사진제공=아모레퍼시픽)

◇ 중화권 이외 해외 시장 강화가 숙제

아모레퍼시픽의 최근 주요 이슈는 ‘중국 이외의 다양한 국가로의 영역 확장’이다. 아모레퍼시픽을 비롯한 국내 화장품 업계는 중국 시장에서의 큰 관심을 바탕으로 K-뷰티를 이끌어왔다.

아모레퍼시픽은 유럽과 미국 등 새로운 시장으로의 진출을 본격화한다. 최근 중국 매출 성장률이 다소 둔화된 가운데, 중화권 지역에 밀집된 해외 매출 구도를 다양화해 새로운 먹거리로 삼으려는 전략이다. 아모레퍼시픽은 2025년까지 진출 국가를 50개로 확대하고 매출 비중도 50%로 끌어 올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호주와 필리핀 등에 진입했고 북미 시장에서의 매출이 증가하는 등 긍정적인 해외 성과도 많았다. 캐나다 베트남 등의 진출도 이뤄지고 있다. 서경배 회장은 평소 직원 조회 등을 통해 틈틈이 해외 시장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올해 신년회에서도 “향후 5년간 세계 화장품 시장을 이끄는 가장 큰 동력은 아시아 시장이 될 것”이라며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과 아세안, 인도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지난 2분기 아세안시장에서 작년 동기와 비교해 매출이 20% 이상 늘어난 것으로 추산됐다. 특히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서는 40%나 급증했다.미국에서도 올해 2분기에 매출이 지난해 2분기보다 54%나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글로벌 화장품 시장의 경쟁 자체가 치열해서 아모레퍼시픽의 시장 성과가 어떠할 것인지는 차분히 지켜봐야 한다는 시선도 많다.

◇ 아모레퍼시픽 햐한 증권가 전망은 낙관론과 신중론 공존

증권가의 전망은 낙관론과 조심스런 입장이 공존한다. KTB투자증권 배송이 연구원은 아모레퍼시픽의 3분기 전망에 대해 “면세 매출이 성장률이 연중 처음으로 산업 성장률에 부합할 것으로 예상하나 아리따움의 20%이상 역신장 기조가 지속되고 그 외 주요 내수 채널도 부진해 전체 성장률 개선은 크지 않을 전망”이라고 밝혔다.

배 연구워은 “면세가 개선되었고 상반기 대비 프로모션 부담이 완화되면서 수익성 유지 가능할 전망이지만 제한적인 매출 성장으로 인해 브랜드 인지도에 대한 불확실성은 해소할 수 없다”고 밝혔다. “마케팅 비용 축소로 인한 수익성 방어는 브랜드 업체 펀더멘탈과 무관”하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하나금융투자 박종대, 서현정 연구원은 “주가가 그만큼 많이 하락했고 , 저평가되어 있다는 말로도 해석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두 사람은 “소비재업종에서 대표적인 투자심리 회복 종목 이 아모레퍼시픽인데. 8월 면세점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는 말들이 오가면서 주가 모멘텀으로 작용했고, 2015년까지 중국에서 부진했던 시세이도의 실적 턴어라운드 사례처럼 아모레퍼시픽도 기대감이 얹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에서 우리나라 화장품은 여전히 인기다. 최근까지도 김포공항과 인천공항 면세점에는 아침마다 국내 화장품을 대량으로 구매해 출국하려는 중국인들이 연일 장사진을 이룬다. 다만 중국 관광객이 감소하는 등의 이슈가 있었고, 중화권 이외의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가 놓인 것이다. 

◇ 초격차 상품개발 및 변화 시도 등으로 현안 과제 해결할까?

국내 시장에서 서경배 회장과 아모레퍼시픽에게 주어진 과제가 하나 있다. 일부 브랜드 가맹점주와의 갈등 문제다. 지난 9일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 본사 앞에서는 전국 이니스프리 가맹점주 협의회(이하 협의회)가 주관한 상생 방안 마련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온라인 시장의 할인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오프라인 가맹점의 고객 이탈이 늘고 있는데, 회사측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오히려 부추긴다는 것이 협의회 주장이다.

협의회는 ‘아모레퍼시픽은 이커머스 업체에 본사 제품을 공급하는데 일부 제품이 온라인에 싸게 공급되면서 오프라인 매장 경쟁력을 떨어뜨려 점주들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라 ‘불공정한 할인분담금 정산 정책을 시정하고 판촉행사시 가맹점과 협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7월에는 아리따움 가맹점주들이 본사를 상대로 "아모레퍼식이 점주들과 경쟁하는 대신 온라인 고객을 가맹점에 연결해 수익을 배분할 수 있는 이익공유정책을 확대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실제로 화장품 등의 온라인 구매 비율이 높아지면서 오프라인 매장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실이다. 화장품은 오히려 다른 품목에 비해 온라인 판매 성장률이 더딘 편이었다. 직접 피부에 발라보고 점성이나 향기, 색감 등을 직접 확인하고 구매하려는 심리가 강해서다.

여러 업계에서 온라인 시장이 커지는 와중에도 뷰티업계는 오프라인 대형 매장이 여전히 힘을 가졌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오프라인과 온라인 시장이 공존하는 과정에서 일부 갈등이 빚어진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솔로몬의 지혜’를 찾는 것이 뷰티업계의 숙제 중 하나다.

서경배 회장은 2019년 신년사에서 “고객을 놓고 깊은 이해와 연구를 바탕으로 최초이자 최고의 세계 일류 상품, 남들은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아울러 직원들에게 “지금의 모든 변화를 즐기라”고 강조하고 있다. 서경배 회장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시각이 그룹에 긍정적인 방향성을 제시할 것인지 기대가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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