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설계·생산·경영 두루 겸비한 사장 3월 선임
영도조선소 현재 수주잔량 상선은 전무한 상태
특수선 제외 일반 상선 일감 전멸 만회 위한 고육지책론 솔솔

[소비자경제신문 임준혁 기자] 12년만에 건설 사업분야 담당자가 아닌 조선산업 전문가를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한 한진중공업이 조선 사업 분야에서 특수선(방산)을 제외한 일반 상선 수주 영업에 나설지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한진중공업 이병모 사장은 지난 3월 29일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이 회사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2016년 6월 STX조선해양의 관리인을 사임한 지 3년 만의 현업 복귀다.

당초 업계에서는 이병모 사장이 한진중공업 조선부문의 대표이사를 맡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한진중공업에는 건설부문에서 경력을 쌓은 이윤희 전 대표이사 사장이 있었기 때문에 두 대표이사가 각자 대표체제를 구축하는 방안이 유력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병모 사장이 단독 대표이사에 올라 조선과 건설사업 부문을 모두 총괄하게 됐다.

이병모 신임 한진중공업 대표이사는 “오랜 세월 조선소 현장에 몸담으며 쌓아온 노하우를 살려 회사의 조기 정상화를 목표로 내실과 재도약의 발판을 다지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영업과 설계, 생산, 경영 등 조선사업의 주요 업무를 두루 거친 경험을 앞세워 국내 중형조선사의 회생에 앞장서 온 그가 위기에 빠진 한진중공업 조선사업 분야를 책임지게 된 것이다.

이 사장이 오기 전 한진중공업은 필리핀 자회사인 수빅조선소의 보증채무 4억1000만달러가 현실화되면서 2019년 2월 13일 완전자본잠식에 빠졌다. 주식거래도 정지됐다. 수빅조선소가 수주절벽을 넘지 못하고 2019년 1월 8일 필리핀 올롱가포법원에 기업 회생절차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출자전환과 차등 무상감자를 통한 경영 정상화방안을 내놓았다. 채권단은 6874억원의 출자전환을 통해 필리핀 현지은행들과 채무조정을 진행하는 한편 한진중공업과 수빅조선소의 연결 관계를 해소했다.

한진중공업은 무상 차등감자를 통해 한진중공업홀딩스가 보유한 한진중공업 지분 30.98%와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이 들고 있는 한진중공업 지분 0.5%를 모두 소각하고 다른 특수관계인 주주들의 주식을 1/5로 감자했다. 한진중공업은 자본금이 기존 5303억원에서 727억원으로 줄어든 대신 자본잠식률을 46.9%로 낮춰 완전자본잠식에서는 벗어났다.

한진중공업은 올해 2월 13일 주식거래가 중단됐으나 수빅조선소 연결 해소, 출자전환을 거쳐 지난 5월 21일부터 거래가 재개됐다. 최대 주주인 산업은행은 한진중공업의 경영 정상화를 위한 물길을 터 준 뒤 이 사장을 부른 것이다.

관건은 현재 한진중공업의 유일한 조선사업 분야 사업장인 부산 영도조선소에서 해군, 해경, 관공선 등 국가가 발주하는 특수선 외에 민간에서 발주하는 상선의 수주영업 재개 및 건조다.

하지만 확인 결과 조선업 외길 40년을 걸어왔다는 이 사장 취임 이후에도 영도조선소는 고정적인 발주가 이뤄지는 특수선(방산)만 수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4월 말 기준으로 영도조선소는 해군 함정 등 특수선 23척의 일감을 보유하고 있다. 수주금액으로 환산하면 1조6000억원 수준이다.

문제는 특수선 외에 민간 선주사가 발주하는 중형 석유화학제품운반선(PC탱커), 중소형 컨테이너선의 수주잔량이 전무하다는 데 있다. 영도조선소의 규모가 작아 이러한 선종은 수주 및 건조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 한진중공업 측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26만44462㎡(약 8만평)의 면적의 영도조선소는 5만톤급 PC탱커나 40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등을 과거에 충분히 건조해 낸 저력을 갖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한진중공업이 조선소 규모(Capacity)를 핑계로 민간 상선 수주영업을 하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민간 분야에서 발주하는 상선 영업의 진행 여부에 대해 묻자 “전 세계적으로 조선시황이 불황이라 상선분야는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국내 중형조선사, 심지어 ‘빅3’로 불리는 대형 조선사도 LNG운반선만 골라 수주할 정도로 업황이 바닥이다”라고 답했다.

조선소 영업업무를 담당했었던 이병모 사장이 취임한지 3개월이 지났음에도 민간 상선 발주에 대한 영업이 전무한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지금은 국내 조선 ‘빅3’가 대형 LNG운반선이나 초대형원유운반선 등 대형 선박 위주로 수주를 하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국제해사기구(IMO)에서 추진하는 선박 유해물질 저감 규정으로 이미 건조·운항중인 중소형 컨테이너선이나 PC탱커 등의 교체수요가 발생한다.

다시 말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가 과거 전성기에 수주·건조해왔던 중소형 상선의 신규 발주 수요가 약 2년 후에 생기는 만큼 이에 대한 수주 영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업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 한진중공업이 조선 전문가인 이병모 사장을 선임한 것이 조선 사업분야의 특수선을 제외한 일반 상선이 일감 바닥이 나 이를 만회하기 위해 영업통인 그를 앉혔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일반 상선 수주영업이 전무한 것을 놓고 특수선에만 의지하고 상선은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공존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시황이 개선되고 원가경쟁력이 충분히 확보되면 민간 발주 상선도 수주 및 건조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이와 관련 이 사장의 한진중공업 경영평가는 건설부문보다는 조선사업의 회생 여부에 방점이 찍힐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한진중공업이 건설부문에 중점을 둔 경영 정상화의 길을 걸을 것으로 내다보고 새 대표이사도 건설사업에 초점을 맞춘 인물이 선임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은행이 이 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한 것은 조선사업의 회생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채권단의 분석 내지 판단은 특수선을 제외한 민간분야 상선에서 영업 내지 수주가 나오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영도조선소를 보유한 한진중공업이 조선전문가인 이병모 사장을 영입해 특수선에만 의지하지 않고 중형 PC탱커나 컨테이너선 등 민간 상선에 대한 적극적인 수주영업에 나서는 날은 언제쯤 일지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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