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신문 최송목 칼럼] “되게 열심히 치는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 열심히 쳐요.” 유명 피아니스트 임동민이 연주자 대학생에게 던진 말이다. 우연히 유튜브를 보다가 이 장면을 주목하게 되었다. 임동민은 쇼팽 콩쿠르 한국인 최초 입상자이자 쇼팽 스페셜리스트다. 그런 그가 음대생들의 연주 모임 ‘또모’에 깜짝 게스트로 나와 원포인트 렛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조기 축구에 손흥민이 나타난 격이다.

대학생이라고는 하지만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앞에서 원포인트 렛슨을 받겠다고 나설 정도면 나름 수준급 이상이다. 연주한 학생의 손놀림 동작이나 품세를 보니 보통 학생이 아니었다. 대단히 열정적인 연주였다. 그런데 피아니스트 임동민의 지적은 돌직구였다. “열심히 치는 거 다 좋은데 너무 에너지를 낭비하는 거 같아요” 그럼 설렁설렁 치란 말인가? 열심히 치는 것도 흠인가? 그는 말을 이었다. “음악이란 포인트가 있어야 하고, 뭘 얘기하고 싶은지가 중요합니다. 균형이 있어야 하고 날카롭게 쳐야 합니다. 소리를 크게 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효과가 있어야 합니다. 효과가 있으려면 작을 때는 작고, 클 때는 커야 해요.” 순간 나는 흠칫했다. 어찌 이리도 경영과 음악의 맥이 같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이어서 그가 시범 연주를 했다. 같은 곡인데도 전혀 다른 곡처럼 들렸다. 같은 악보를 가지고도 다른 곡을 연주한 것이다. 아마추어인 나의 눈에도 확실히 그의 연주는 강약 고저가 있고 대조가 확연했다.

회사에서 신입직원들은 대개 바쁘고 정신없다. 일머리도 없고 해야 할 일도 많으니 그럴 것이다. 그러나 임원, 사장이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면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십중팔구 잘 안되는 회사의 경우가 그렇다. 혼자서만 열심히 하고 있거나, 할 일 안 할 일 구분을 못 하고 있거나, 미덥지 못해 위임을 못 하고 본인들이 감당하고 있으니 바쁠 수밖에 없다. 주변에 열심히 일하는 사장님이 많다. 쉴 새 없이 사람을 만나고 해결하고 항상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사람들은 그런 사장들과 마주칠 때면 항상 던지는 덕담이 있다. “열심히 사시네요. 보기 좋습니다” 열심히 하니까 성공할 거라는 말인가? 아니면 열심히 하는 자체가 좋다는 말인가?

우리는 ‘열심’이라는 과거 노동집약적 고정관념과 ‘칭찬’이라는 주변의 부추김 때문에 막연한 낙관의 환상에 사로잡혀있는 사장들을 많이 본다. 학생이라면 성패 결과에 상관없이 ‘노력 상’이라는 게 있다. 하지만 사장에게는 ‘노력 상’이라는 건 없다. 성패의 결과만 중요할 뿐이다. 그래서 사장은 어떤 일을 허겁지겁 열심히 하기 전에 “왜 이 일을 이 시간에 하고 있는가?”에 대해 답해야 한다.

마라톤 42.195km를 달리는 핵심은 구간 관리다. 어느 지점에서 속도를 높이고, 어느 지점에서 숨 고르기를 할 것인지를 미리 계획해 두어야 한다. 경영은 열정을 짊어지고 달리는 장기 레이스와 같은 것이다. 뜨거운 열정을 지속적해서 유지하기란 힘든 일이다. 넘치는 열정을 주체 못 하여 이리저리 종횡무진 움직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순간 폭발하는 열정을 참지 못하여 코뿔소처럼 직진하여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도 있다.

완급과 리듬을 무시한 열정이다. CEO는 무언가 집중할 때는 시속 110Km의 치타처럼 몰아붙이고, 느슨할 때는 시속 200m의 나무늘보 같아야 한다. 시간과 열정을 안배하고 통제하는 에너지의 지배자가 되어야 한다.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열정을 필요한 곳에 쏟아붓는 것이다. 자기 열정을 다스리고 나아가 다른 사람의 열정과 연계. 조합하여 새로운 제3의 용광로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경영은 열정으로 빚어내는 하나의 예술 조각품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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