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계 PC현상, 한국 게임업계에 ‘기회’ 될까
[소비자경제=김민진 기자] 최근 국내 게임계의 약진이 눈부시다. 많은 우려를 모았던 넥슨의 ‘퍼스트 디센던트’는 출시 2주차에도 스팀 동시 접속자 수 10만 명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4월에 출시한 시프트 업의 ‘스텔라 블레이드’는 전 세계적으로 100만 장 넘게 팔리게 글로벌 게이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네오위즈의 ‘P의 거짓’ 역시 누적 판매가 100만 장을 넘기며 손익분기점을 돌파, 흥행작으로 자리잡았다.
장르도, 플랫폼도, BM도 다른 한국 게임들이지만, 이들 게임을 공통으로 관통하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바로 아름다운 미형의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피의 거짓에서는 주인공인 제페토의 인형뿐 아니라 히로인인 소피아, 유제니 등 모든 등장인물들이 굉장히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묘사된다. 스텔라 블레이드 역시 마찬가지다. 이 게임은 캐릭터의 특정 신체 부위를 부각하는 의상과 디자인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출시한 ‘퍼스트 디센던트’는 더하다. 수많은 미형의 캐릭터들이 다수 등장하고, 아예 스킨을 통해 이들 캐릭터들을 꾸밀 수 있는 BM까지 가지고 있다. 8등신의 모델 몸매에 노출이 많은 옷을 입은 미형의 캐릭터들. 국산 게임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캐릭터지만, 의외로 글로벌 게임 계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캐릭터다. 바로 정치적 올바름, PC현상 때문이다.
게임 산업에 퍼진 정치적 올바름 문제
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rectness. 줄여서 PC라 불리는 이 운동은 인종과 성별, 장애, 종교, 직업 등에 관한 편견이나 차별이 섞인 언어, 정책을 지양하는 활동과 신념을 의미하는 말이다. 약 100년 전인 20세기 초반, 공산당의 지침을 정당화하기 위해 공산당의 지침에 맞지 않는 발언이나 행동을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규정한 것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오늘날에는 차별을 철폐하자는 모든 신념, 활동을 이르는 말로 인식되고 있다.
PC는 각계 각층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23년 개봉한 뮤지컬 실사 영화, ‘인어 공주’다. 항상 하얀 피부와 붉은 머리를 가진 백인이었던 인어공주의 주인공이 최초로 흑인으로 설정되었고, 배경도 원작과 달리 아메리카 대륙의 카리브 해로 설정되었다. 세계 최고의 프로 스포츠인 NBA와 EPL에서는 2020년부터 흑인의 인권신장을 위한 캠페인, ‘Black Lives Matter(BLM)’이 유행하기도 했다.
PC 열풍은 게임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다. 복수를 주제로 하는 이 게임에는 수많은 소수자들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레즈비언이며, 동양인과 유태인, 트랜스젠더까지 등장한다. 게임의 주요 스토리는 여성을 위주로 흘러가며 이들은 무장한 성인 남성 집단을 상대로 대등한 전투를 벌인다. 발매 당시에도 전작의 주인공을 굉장히 허무하게 죽여버린 데다가 현실적이지 않은 설정이 난무한다며 게이머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PC를 옹호하는 이들은 ‘라오어2’가 보여준 다양한 체험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며 호평하기도 했다.
플스 독점작 중 가장 성공적인 시리즈로 자리매김한 ‘호라이즌’ 시리즈 역시 출시 때부터 PC 논란에 휩싸였다. 주인공인 에일로이의 외모가 그리 뛰어나지 않고 너무나 평범한 데다가 설정상 여성인 에일로이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 수준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수준인 반면, 악역으로 설정된 이들은 대부분 성인 남성들이었기에 현실적이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세계적인 축구 게임인 EA 스포츠의 ‘FC24’에서는 얼티밋 팀에 남성 선수와 여성 선수를 함께 뛰도록 구현해 화제가 되었다. 문제는 여성 선수의 능력치가 탑급 남성 축구 선수와 비슷하거나, 이를 추월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대중들에게는 이름도 익숙하지 않은 여성 축구 선수가 음바페, 데브라이너와 비슷한 능력치를 보여주는 상황이 축구팬들에게는 다소 어색하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처럼 PC는 게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차별을 없애고 소수자들도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PC가 필요하다는 걸 부정하는 이들은 많지 않지만, 문제는 이런 PC 요소가 부자연스럽게 적용되어 게임의 재미와 몰입을 반감시킬 수 있다. 실제로 ‘라오어2’의 PC 요소는 게이머들에게 불편함으로 다가왔고, ‘FC24’의 혼복 얼티밋 팀은 사용자의 몰입감을 저하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PC에 대한 허들이 낮은 한국 게임이 매력적일 수 있다?
게임계에 PC 요소가 계속해서 활용되는 이유에 대해 많은 분석이 있었다. 제작사가 자신들은 올바르다는 인식과 철학을 게임에 반영하는 일종의 프로파간다라는 분석이 있는 반면, 일각에서는 비즈니스로 인해 PC를 도입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성인 남성들로 대표되던 게임의 주요 소비층이 전체 연령으로 확대되면서 보다 다양한 의견과 철학을 반영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PC가 주목받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서구권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PC를 게임을 비롯한 대다수의 콘텐츠에서 도입해 왔기에 게이머들의 피로도가 높아져 있다는 것이다.
미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캐릭터를 싫어하는 이들은 없다. 다만, 이 캐릭터들이 소수자의 인권이나 개성에 대한 비난, 멸시로 이어질 여지가 있기에 서구권에서는 아름다운 미형의 캐릭터를 게임 내에 잘 구현하지 않는 편이다. 더불어 PC에 대한 역사가 길지 않은 동양은 캐릭터의 성별과 인종 정도에서만 PC 여부를 고민하지만, 동양보다 PC에 대한 역사가 깊고 보다 다양한 각도로 PC를 논의해 온 서양에서는 PC의 기준이 훨씬 높게 책정되어 있다.
실제로 서구권을 중심으로 한 게임 업계에서는 아름다운 미형의 캐릭터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반면에 게임을 미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하나의 요소로 인식하고 PC에 대한 허들이 서양보다 낮은 동양에서는 판타지와 환상 속의 존재를 모두 최대한 아름답게 구현하는 특징이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지점에서 국산 게임이 경쟁력을 가진다고 말한다.
거의 모든 게임에 PC가 깊숙하게 배어있는 서양 게임에 익숙한 서구의 게이머들에게 본능을 자극하는 아름답고 멋진 미형의 캐릭터들이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인공의 노출이 심하고 몸매가 지나치게 부각되는 ‘스텔라 블레이드’가 여성을 성 상품화했다는 이유로 비난여론에 휩싸였을 때도 서구권에서는 긍정적인 여론이 쏟아졌다. ‘퍼스트 디센던트’ 역시 노골적인 디자인과 의상으로 성 상품화 논란이 일부 있었으나, 좋은 성적을 기록 중이다.
종합해 보면, PC가 강조되는 서구권에서는 한국 게임사의 강점인 아름다운 미형의 캐릭터에 대한 수요가 분명 존재하고, 이 점이 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진출을 목표로 하는 한국 게임사들에게는 분명한 호재이지만, 이런 논의의 바탕에는 기본적으로 뛰어난 게임성이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아무리 눈이 즐거운 미형의 캐릭터가 등장한다고 해도, 게임성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롱런은 힘들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