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중국게임’ 위상, 새로운 장르 될까

2024-07-04     김민진 기자
게임사이언스의 신작, 검은신화:오공 [사진= 검은신화: 오공 스팀 페이지]

[소비자경제=김민진 기자]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 쏟아지는 중국게임에 대한 게이머들의 인식은 그리 좋지 않았다. 번역기를 돌린 것 같은 어색한 번역, 무분별한 광고, 광고와 플레이 화면의 괴리, 다소 부족한 게임성, 비슷한 시스템 등의 특징으로 인해 중국게임은 양산형 게임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부터 중국게임의 위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소녀전선, 명일방주, 붕괴3rd, 원신 등 준수한 게임성을 자랑하는 게임들이 다수 등장하면서 중국게임들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0년, 텐센트 출신 개발자들이 만든 게임 사이언스에서 ‘검은신화:오공’의 트레일러를 공개하며 콘솔 시장에서도 중국게임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8월 출시를 앞둔 ‘검은신화:오공’과 다양한 중국 콘솔 게임을 통해 중국게임계의 변화를 살펴본다.

중국 게임사의 콘솔 진출

‘검은신화:오공’은 게임 사이언스에서 개발한 3인칭 액션 RPG 게임이다. 2020년에 처음 게임 플레이 트레일러가 공개되었고 이후 여러 차례 트레일러와 플레이 화면을 공개하며 기대감을 고조시킨 게임이다. 2023년 게임스컴에서는 시연회를 개최했는데, 무려 5시간이 넘는 대기열이 발생하기도 했다.

8월 20일로 출시일이 확정된 검은신화:오공은 중국의 고전인 서유기를 모티브로 손오공의 여정을 따라가는 게임이다. 트레일러와 게임 화면, 시연회에서 나타난 준수한 그래픽과 탁월한 타격감, 독특한 시스템은 이미 많은 게이머들을 매료했고, 세계적인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검은신화:오공 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게임 개발사인 S-GAME에서 개발하고 있는 세미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처 게임, ‘팬텀 블레이드 제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2017년부터 개발을 시작했지만, 한국에서는 2021년부터 정보가 공개되었는데, 2023년 플레이스테이션 쇼케이스에서 영상을 공개해 많은 주목을 받았다. 무협 세계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화려하고 호쾌한 전투, 역동적인 움직임과 높은 그래픽이 인상적이었다.

넷이즈 산하의 에버스톤 스튜디오에서 제작 중인 무협 오픈월드 액션 RPG, ‘연운십육성’도 있다. 2022년 게임스컴에서 정식으로 공개한 이 게임은 패링 중심의 전투를 기반으로 수많은 무공을 배우고, 주변 환경을 이용하는 전투를 선보였다. 개발사는 대중들이 상상만 해왔던 무협의 세계관을 그대로 게임 내에 구현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연운십육성은 이미 북미권 게이머를 대상으로 비공개 테스트를 진행했으며, 7월 말에는 정식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

이 외에도 페이퍼게임즈에서 개발 중인 인피니티 니키, 팁스웍스 스튜디오와 인폴드게임즈가 제작 중인 발라드 오브 안타라도 있다. 모두 소니의 쇼케이스인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에서 공개되어 호평을 받은 게임들이다.

이 게임들이 이토록 주목받는 이유는 그동안 중국 개발사들이 개발한 여타 게임들과 그 궤를 달리하는 게임들이기 때문이다. 중국 개발사들은 지금까지 한국의 게임 개발사처럼 모바일이나 PC 온라인 게임을 주로 개발해 왔다. 실제로 중국 게임 시장은 모바일 게임이 66%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자국 시장에서 다양한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며 노하우를 쌓고 유저들의 트렌드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있는 중국 개발사들은 자신들의 경험치를 해외에서 꽃피우고 있다. 과거에는 한국의 모바일 게임들이 중국으로 넘어가 히트를 치는 일이 적지 않았는데, 현재는 반대로 중국 게임들이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을 휩쓸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중국 게임들의 주요 앱마켓 매출 점유율은 30%에 이른다. 모바일 게임 매출 10위권 안에서 국내 게임보다 중국 게임을 찾기가 더 수월할 정도다.

넷이즈 산하 에버스톤 스튜디오의 신작, 연운십육성 [사진= 넷이즈]

안정적 내수 시장 기반으로 성장 꾀한다

중국의 게임시장 규모는 약 45조 원에 육박하며 중국 내 게이머의 수는 약 7억 명으로 미국 전체 인구의 2배에 가깝다. 2023년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나타난 2022년 글로벌 게임 시장 점유율도 미국이 22.8%로 1위를 차지했고, 그 뒤를 22.4%의 중국이 바짝 뒤쫓고 있다. 이처럼 시장 자체가 워낙 크기에 많은 게임 기업들이 중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성공한 사례는 그렇게 많지 않다. 중국 정부의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2019년부터 극단적인 게임 규제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일 1.5시간, 주말에 일 3시간만 게임을 할 수 있으며, 밤부터 아침까지는 온라인 게임 접속이 제한된다. 게임 내 결제할 수 있는 총량도 정해져 있다.

게임 규제로 인해 소비자들이 줄어든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판호다. 판호는 중국 내 게임 서비스 허가를 뜻하는 말로 중국 내에서 어떠한 형태의 콘텐츠든 서비스하기 위해서는 판호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 판호를 받는 일이 철저히 ‘운’에 좌우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판호를 받기가 힘들다. 명확히 명시된 기준이 없고, 중국 정부 내부의 사정에 의해 그때그때 판호가 발급되기에 수년간 기다리다가 판호를 받기도 하고, 며칠 만에 판호가 발급되기도 한다.

게임 전반에 대한 중국 정부의 부정적인 인식 탓에 이 같은 판호 발급 문제는 중국 기업과 해외 기업이 공통으로 인식하고 있는 문제였다. 실제로 2022년까지 대형 게임사들 중 판호를 받은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래서 중국의 게임 개발사들은 어쩔 수 없이 해외 진출에 주력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질적, 양적인 성장을 이룩한 것이다.

하지만 2023년부터 이 규제의 강도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중국의 대형 개발사들을 중심으로 판호가 대량으로 허가되고 있고, 정부에서도 게임 산업에 가했던 규제와 제재를 풀어주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가 자국의 문화와 사상을 전파하기 위한 도구로 게임을 선택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중국 게임 개발사들은 안정적인 내수 시장의 성장을 바탕으로 포화 상태가 된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아직은 성장 가능성이 큰 콘솔 게임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텐센트는 미국과 서방세계 진출을 위한 비디오 게임 개발을 천명했고 미국과 캐나다에 스튜디오 지사를 설립하며 향후 10개국 이상의 국가에 지사를 설립하겠다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중국 게임사들이 이런 전략을 구상할 수 있는 이유는 중국의 모바일 게임 시장이 워낙 탄탄하고 안정적이기도 하지만, 규제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PC나 콘솔 게임의 판호만은 꾸준히 발급해준 덕에 중국 콘솔 게임 시장이 조금씩이나마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2년 중국의 모바일 게임 시장 점유율은 26.6%로 전년보다 1.6% 줄어들었지만, PC, 콘솔에서의 점유율은 각각 1.1%, 1.7% 증가했다. 시장조사업체인 니코파트너스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중국의 콘솔 게임 시장은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중국 콘솔 게임 시장이 고속 성장하지는 않지만, 꾸준하게 상승해 2026년이면 25억 5000만 달러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기도 했다.

한국과 중국, 콘솔 게임 시장에서는 ‘초보’에 가까운 두 나라의 게임사들이 앞다투어 콘솔 게임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게이머들의 입장에서는 양질의 게임이 다수 출시되니 반가울 수 있지만, 게임사의 입장에서는 경쟁자가 많아지는 만큼 우려가 될 수밖에 없는 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