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리뷰] ‘반도체 삼국지’로 본 한국 반도체가 나가야 할 길

삼성전자 1983년 세계 3번째 디램 64Kb 개발 2020년대 삼성 관심사 ‘파운드리 생태계 조성’ 메모리 반도체 초격차 위해 삼성-SK 각각 CXL, AUD 기술 개발 한국 반도체 반세기 역사… 한국이 대처해야 할 자세는? 차세대 반도체 기술·표준 선점 중요… 특히 양자 ICT 기술

2022-11-28     문재호 기자
반도체 주요국별 수출액-증감률, 반도체 주요국별 수출점유율 [자료=전국경제인연합회]

2010년대 들어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반도체 부문 큰 투자를 집행해 빠르게 발전해오고 있다. 이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수치는 반도체 수출액과 수출점유율 지표가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3월 내놓은 ‘동아시아 수출 경쟁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반도체 수출 경쟁력 측면에서 대만과 중국이 크게 향상된 반면, 한국은 소폭 증가했다는 결과로 나타났다. 

또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3월 2020년 반도체수출 증감률이 2011년 대비 중국, 대만, 한국, 일본이 각각 255.9%, 246.1%, 108.8%, -9.7%에 달했다고 집계했다. 반도체 주요국별 수출점유율은 지난 10년간 중국이 7.2% 증가해 14.9%, 대만이 7% 상승해 15.7%, 한국이 1% 증가해 10.5%, 일본이 2.9% 줄어들어 3.7%를 기록했다.

소비자경제신문은 권석준 교수의 저서 ‘반도체 삼국지’를 통해 한국이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지, 그리고 지금의 한국 반도체가 존재하기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 지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삼성전자 1983년 64K D램 개발 성공 [사진=삼성전자]

한국 반도체 산업 :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 역사

한국에 처음으로 반도체 산업이 들어온 해는 1960년대 중반 즈음으로 미국은 물론 일본, 중국, 대만에 비해서 10~20년 정도 늦은 시점이었다. 1965년 12월 미국 전자 회사 코미는 한국에 고미전자산업주식회사를 합작회사 형태로 설립하고 나서 라디오에 쓰이는 트랜지스터와 다이오드 조립 생산을 개시했다. 1966년 4월 미국 반도체 회사 페어차일드는 더 큰 규모의 투자를 통해 페어차일드세미코를 세워 실리콘 트랜지스터와 다이오드를 조립 생산할 수 있는 라인을 만들었다.

미국 반도체 업체들이 한국을 주요 조립 생산기지로 택하기 시작했던 이유는 저렴한 인건비, 높은 교육 수준, 외국 자본에 유리한 조세 환경이었던 외자유치법의 존재 때문이었다.

1966년 한국 최초 정부출연연구소인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설립된 후 국가 주도 반도체 기초연구도 같이 시작되는 등 정부차원에서의 노력도 1960년대 시작됐다. 1970년대로 넘어와 외국 반도체 업체들의 직접 투자 규모는 줄어들고 반도체 산업 축이 점차 국내 기업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1974년 한국반도체가 통신장비 수입사 켐코(KEMCO)와 미국 ICII(Integrated Circuit International Inc)의 합작회사 형태로 부천에 설립돼 이후 TV와 오디오용 트랜지스터 등을 자체 개발했다. 단, 제1차 오일쇼크로 인한 자금난을 견디지 못한 한국반도체는 1974~1977년 사이 삼성에 인수되어 1978년 3월 삼성반도체로 사명을 바꿨다.

1980년대 들어 한국 반도체 산업은 본격적으로 초석을 다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반도체 산업은 규모가 크지 않아서 1982년 삼성반도체 매출은 삼성전자 전체 매출 3.1%에 불과했다. 그러나 1982년부터 현대, LG(구 금성) 같은 후발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반도체 산업에 진출을 선언했다.

삼성은 16Kb 디램 개발도 불가능할 것이라는 세간의 의구심을 불식시키며 반도체 기술 개발 선언 당 해인 1983년 세계 3번째로 64Kb 디램 개발에 성공했다. 전자 산업에서 삼성의 경쟁사이기도 했던 LG는 1979년 대한반도체를 인수하여 금성반도체를 설립했다.

SK하이닉스는 2020년 10월 공정공시를 통해 미국 인텔사의 메모리 사업 부문인 낸드 부문을 90억달러(10조3천104억원)에 인수하는 내용의 양도 양수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한국 반도체 산업: 198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역사

한국 반도체 업체들은 198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다다랐다. 1980년대 중후반 이후 촉발된 한국 반도체 산업의 고도성장 이면에는 한국 정부의 산업 육성 정책이 있다. 1986년 10월, 한국 정부는 초고집적 반도체 기술 공동개발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했는데 이는 산학연관(산업계∙학계∙연구계∙관)이 연합된 대형 국가주도 프로젝트였다.

1986년 10월부터 1993년 3월까지 약 6년 반 정도 지속된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반도체 분야에 있어서는 세계 선두권으로 진입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었다.

성장하던 한국의 메모리 산업은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장벽에 부딪힌다. 1997년 말 IMF 외환위기를 정면으로 맞았다. 1998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삼성전자에 대한 대출 등급을 기준 이하로 분류할 정도로 당시 한국 반도체 산업은 신용 경색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국 정부는 반도체 산업에 대한 선제적 구조조정을 결정했다. 1998년말 당시 5위 업체였던 현대전자가 4위 LG반도체의 메모리 사업 부문 주식 지분 60%를 인수함으로써 양사간 합병이 이루어졌다. 합병 후 1999년 현대반도체로 사명이 변경됐다.

현대반도체는 합병 후 위기에 봉착했다. 2000년대 초반 반도체 시장 불황이 겹치며 15조원 부채를 안고 있던 현대반도체는 충분한 자본금을 확보하지 못해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기술에 투자할 여력이 없었고 2001년 말에는 채권단에 매각되며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매각 후 현대반도체는 하이닉스반도체로 사명이 바뀌었다.

결국 최종적으로 2011년 SK그룹이 그간 이동통신 사업으로 축적한 거대 자본을 토대로 단독 입찰 후 하이닉스 인수에 성공했으며 하이닉스는 SK하이닉스라는 이름으로 SK그룹에 편입된다.

이후 SK하이닉스는 성장을 거듭해 2020년 10월에는 10조가 넘는 자본을 동원해 인텔 낸드 플래시 사업 부문까지 인수하기 이르렀고, 2021년 들어서는 미국 파운드리 업체 키파운드리를 인수함으로써 파운드리 시장 진출을 선언하며 사업 분야를 메모리반도체 일변도를 넘어 다각화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반도체 대기업을 필두로 한국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 반도체 일변도 산업 지형도가 팹리스, 파운드리, 시스템반도체 등으로 확장하고 있다.

2022년 2분기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자료=트렌드포스]

파운드리 사업을 둘러싼 각축전

한편 대만 반도체업체 TSMC 창업주 모리스창은 2020년 7월 일본 경제 매체 닛케이아시아리뷰와 인터뷰 기사에서 ‘삼성전자가 TSMC 파운드리 아성을 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언급했다. TSMC 사훈은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 이다. 철저하게 파운드리 부문에만 집중하여 전 세계 주요 팹리스 고객사들이 믿고 제품을 맡길 수 있는 이른바 슈퍼을 포지션을 지향한다.

2019년 기준 TSMC는 전년 대비 3.7% 증가한 매출 41조 5000억원을 달성했다. 영업이익률은 34.8%로 반도체 업계에서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반도체 파운드리 세계 1위 업체 TSMC는 30년 넘게 고수해온 사업 전략으로 인해 시장점유율 1위를 계속 고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에서는 TSMC가 압도적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대만의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TSMC가 53.4%로 1위, 삼성전자가 16.5%로 2위였다. 이전 분기대비 TSMC 파운드리 점유율은 0.2% 줄어들었고 삼성전자는 0.2% 늘어났다.

파운드리에만 국한된 비즈니스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삼성전자 파운드리 산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제조업에서의 쌓은 미세 공정의 원가 절감과 오랜 공정 노하우를 살린 성능 개선으로, 10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파운드리 분야 매출액 규모 세계 2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그러나 파운드리 사업 부문이 삼성전자로부터 독립된 법인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삼성전자와 경쟁 관계에 있는 업체들의 신뢰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게 단점이다.

한편 2020년대 이후 삼성은 파운드리 생태계 구축에 많은 자원을 투여하고 있다. 2018년 2월 경기도 화성에 7조원 투자해 파운드리 전용 EUV 라인 착공을 했고 2023년부터 평택 팹을 추가하게 됨으로써 파운드리 라인은 기흥 팹 2개, 화성 팹 3개, 미국 텍사스 오스틴 팹 1개 등 총 7개 파운드리 라인을 보유하게 된다. 삼성 파운드리 사업은 성장 가능성이 높으나 고객사와 신뢰 구축을 하기 위해서 장기적으로는 파운드리 사업이 분사될 필요가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의 차세대 메모리 기술 확보 전략

메모리 반도체, 특히 디램과 낸드 플래시로 대표되는 분야는 한국 반도체 산업이 오랜 기간 경쟁력을 유지해온 분야다. 그러나 이 분야 역시 거센 경쟁에 노출되어 있으며 중국 메모리반도체 업체들이 호시탐탐 시장점유율을 확장하려 투자 규모를 확대하고 있는 분야다.

삼성전자는 2021년 5월 업계 최초로 CXL(Compute Express Link) 기술 기반 차세대 디램 기술을 공개했다. 인텔이 주도하여 개발한 CXL은 128GB/s라는 고대역폭 디바이스 간 데이터 연결망을 제공하며 특히 CPU에 연결된 메모리와 가속기에 필요한 메모리를 분리하여 관리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이는 차세대 디램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포석이 될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2021년 3월 차세대 디램 기술의 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몇 가지 기술을 공개했다. 패터닝 기술이 봉착한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EUV 공정의 개선 뿐만 아니라, 선폭의 물리적 축소를 위해 새로운 반도체 절연 물질과 그것을 증착할 수 있는 원자층 증착기술(ALD) 개발, 더 높은 종횡비를 달성할 수 있는 식각 공정 개발 등이다. ALD 기술은 원자층을 한층, 한층 쌓아올려 막을 형성하는 적층 기술을 뜻한다. 

한국 메모리반도체 산업의 지배력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보다 훨씬 더 선행기술 개발에 대한 집약적인 투자를 요구할 것이다. 또한 글로벌 주요 반도체 업체들의 컨소시엄 간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기술표준 선점 경쟁에서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공정 및 소자 기술 개선에서의 고유 장점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 공급망 [사진=연합뉴스]

미국이 주도하는 칩4동맹…우리나라의 처세법은? 

칩4는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산업 공급망 개편이고 의도는 중국을 산업 공급망에서 배제시키는 것이다. 

성균관대 권석준 교수는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삼성이나 TSMC나 선제적으로 미국에 신규 공장을 짓고 투자 규모를 늘리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미국의 반응을 살피고 있는데 사실 미국의 기대에 실질적으로 더 부응하는 것은 한국이라고 생각된다”고 언급했다. 

TSMC가 미국 애리조나에 투자해 최근 완성한 신규 공장은 5나노 공정이고 그 이상 첨단 공정은 계획하고 있지 않으나 삼성이 텍사스 주에 신규건설하려 하는 파운드리 공장은 평택 팹에 준하는 2나노 이하의 최첨단 공정을 포함하는 거대 계획이며 삼성의 명운을 건 투자다.

삼성의 사례에서 보듯 한국이 칩4 동맹에 동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오히려 가장 대체하기 어려운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공정을 미국에 확보해두고 이를 오히려 지렛대 삼을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은 반도체 산업에서 한국, 대만, 일본 대비 연구개발 부분을 압도한다. 2021년 기준 미국 내 본사를 둔 회사들이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의 연구개발비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을 상회하는 56%에 달했다. 연구개발 비용은 800억 달러를 넘으며 특히 차세대 반도체 분야에서의 선행 특허 비율은 60%를 넘는다. 한국이 미국의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면 미국의 연구개발 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파트너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반도체 생태계가 지금보다 더 강고해지려면 일본 중견기업들이 잡고 있는 소재와 부품, 공정 장비를 차세대 공정을 목표로 삼아 따라잡을 수 있는 스타트업을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고 그 기저에서는 기업에서 쉽게 할 수 없는 소재와 공정 원천기술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가 더 증강되어야 한다.

양자 컴퓨터 [사진=픽사베이]

실리콘 공정 한계 임박…차세대 반도체 기술 ‘양자’로 극복

실리콘 기반 반도체 공정 기술은 점점 물리적·경제적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 물리적인 선폭을 줄이는 것의 한계는 물론, 소재 자체의 물성의 한계 그리고 튜링이 제안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디지털 컴퓨터 자체의 한계가 가까워지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가운데 하나가 양자 ICT기술이다. 현재 전망대로라면 향후 20~30년 안으로 반도체 산업 전장은 현재 실리콘 기반 폰 노이만 방식에서 조금씩 양자 ICT 방향으로 옮겨가게 될 것이다.

지금의 실리콘 산업은 양자 ICT를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양자 ICT 기술에는 양자 정보를 제어할 수 있는 소재와 소자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나노미터 혹은 원자 스케일에서의 공정과 소재 제어 노하우가 필요하다. 이러한 노하우는 기존 반도체 산업에서 물려받을 수 있는 것이며 한 회사가 주도적으로 커버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즉, 양자 ICT 산업에서도 여전히 글로벌 공급망이 정립될 것이고, 그 전신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될 것이며 표준과 기술 자산은 바통을 이어받듯 자연스럽게 전달될 것이다. 미국은 이 전이 과정에서도 중국을 제외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으며 중국은 이에 대해 경제개발계획 주요 어젠다의 우선순위에 양자 ICT를 올려 대응하고 있다.

한국이 새롭게 재편될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의 존재감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현재 반도체 산업 공급망에서의 키 플레이어로서의 포지션을 보전하는 것은 물론, 차세대 반도체 산업에서의 포지션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미국이 주도하는 양자 ICT 표준 그룹에 더 많이, 더 큰 비중으로 참여해야 한다. 철저하게 미국이 그리는 기술 로드맵의 레퍼런스 포인트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이 눈을 돌려야 하는 것은 차세대 반도체 기술에서의 표준 선점이다. 미국이 격년으로 개최하는 양자암호통신 분야 그룹에서 표준을 선도할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고 기초분야의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ASML이 10년 넘는 암흑기를 버텨내며 EUV 노광 공정의 실현에 성공했던 것처럼 기업에서는 죽음의 계곡이라고 부르는 장기간의 실패 누적 기간을 학계와 연구계에서 지지할 수 있는 투자가 필요하다.

특히 앞으로 다가올 양자 컴퓨터 시대를 대비해 산업사이클이 죽음의 계곡을 건너갈 수 있는 지원책이 필요하며 이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개발 지원 전략이 수립되어야 한다. ASML의 노광 기술은 20년 이상 꾸준한 연구개발 노력과 정부의 자원이 집중된 결과로 탄생한 성과다. 즉, 하루 아침에 그러한 기술적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진=문재호 기자]

소비자경제신문 문재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