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검사번호 1개 제품 25개…불법제품 유통 ‘환경부 나몰라라’
로션 등록된 제품, 스프레이로 쓰여도 ‘단순표기 실수’ 환경부 “단순한 등록 실수의 가능성도 있다” 모르쇠 “감독 관청의 책임·이익 환수 등 엄격한 제재 필요”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자동차 세차세정제 및 광택제가 자가검사번호 1개에 25개 제품으로 둔갑해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자동차 세차 세정제 및 광택제는 화학 물질이 함유된 대표적인 생활화학제품이다. 매니아층을 중심으로 시작했으나 세차를 취미로 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그 판매액은 연간 3조 7000억원 규모에 달하는 블루오션이 되었다. 그러나 화학성분의 안전성보다 세정력이나 발광력을 강조하는 제품이 많아 안전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곤 했다.
이에 소비자경제가 유통되고 있는 자동차 세차 세정제 및 광택제를 대상으로 안전성에 대해 조사한 결과, 하나의 자가검사번호로 무려 25개의 제품을 유통시킨 판매자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문제의 제품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일으킨 옥시의 나라 영국에서 제조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안전기준 확인을 완료한 위해우려제품의 경우 시험분석기관에 의해 동일모델임을 확인받으면 대표제품에 대한 파생제품으로 제품을 등록할 수 있다.
안전기준 적합 확인을 받은 제품과 비교해 용도와 제형이 동일하며 안전기준에 해당되는 물질에 변경이 없는 제품이 파생제품이다. 모든 성분이 동일하지만 향이 다른 생활화학제품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소비자경제 조사 결과 세차 전문 수입 브랜드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영국 A사의 수입업체인 한국 A사는 하나의 자가검사번호를 25개의 각기 다른 품목에 붙여 그대로 시중에 유통시켰다. 이들은 9개의 자가검사번호로 36개의 제품을 판매 중이다.
A사가 등록한 세차 세정제 중 하나는 2015년 12월 신고된 위해우려제품이다. 한 차례 갱신을 통해 이 자가검사는 올해 12월까지 유효하다. 이 세정제는 자동차용 로션형 제품으로 등록되어 있지만 동일한 자가검사번호를 쓰는 제품은 분무형, 액체형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화학제품은 접촉 독성과 흡입독성이 각기 다르게 발현되기 때문에 사용에 특히 더 큰 주의가 필요한 이유다.
캔들·향초·탈취제·세정제·광택제 등은 환경부 안전확인 대상 생활화학제품으로, 인정된 공인기관을 통해 자가검사로 합격 여부를 판단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우려제품 자가검사’라고 한다. 3년 단위로 재검사를 받아야 하고 제출서류도 많고 절차가 까다로워 생산·판매자 모두 곤욕스러워 하는 검사다.
환경부와 환경산업기술원 측은 “해당 상품은 이미 여러 차례 신고를 통해 자가검사번호의 폐기가 진행 중이며 나머지 제품에 대한 재신고가 필요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미 인지돼 처분이 진행 중이었다는 환경부의 설명과는 달리 해당 제품에 대한 조사 결과는 본지의 본격 취재가 시작된 이후인 11월 10일 경 한강유역청으로 전달됐다.
환경부의 위반제품 조사 결과는 한강유역청으로 전달되고 한강유역청은 재조사를 통해 위반내용이 있을 경우 회수 등의 행정처분을 위한 사전통지 및 이의제기 절차를 통해 행정처분을 진행한다. 만약 제품이 회수처분을 받았다면 향후 이행 모니터링을 통해 조치 결과가 보고되는데 처분 개시까지 빠르면 한 달이 소요된다.
해당 제품에 대한 안전 여부는 조사되지 않았다. “자가검사번호 표기에 대한 위반 사항이 지적되었을 뿐 안전성은 검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만 환경부는 설명했다. 단순히 등록 실수의 가능성도 언급했다.
그러나 해당 제품이 단순히 실수에 의해 다른 제형으로 신고되고 동일한 자가검사번호를 사용하게 된 것인지, 성분에 대한 문제로 인해 다른 이름으로 신고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소비자경제는 해당 사건에 대해 판매자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와 전자메일로 수차례 문의하였으나 답을 듣지 못하였다.
환경운동연합 정미란 국장은 “제형 구분이 없이 동일하게 자가검사번호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표시기준 위반으로 보기 어려우며, 기업의 과실 뿐만 아니라 환경부의 행정 과실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가습기 살균제의 흡입독성이 있는 제품이 판매된 이후 7년 후 알려진 것처럼 화학제품의 피해 사실을 밝히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동시에 그 피해는 인체에 매우 치명적이다. 이제 종료를 앞둔 위해우려제품 자가검사제도는 케모포비아의 확산으로부터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면서 기업의 자율적 판매를 돕기 위해 마련된 제도였다.
위해우려제품 자가검사제도가 과연 국민의 불안을 해소시켰는지, 기업은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였는지 환경부는 기업의 충실한 이행과 국민 불안 해소를 위해 맡은 바 역할을 다했는지에 대한 보다 엄정한 평가와 반성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소비자경제신문 노정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