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움직이는 ‘팬슈머’ 파워…소비자 맞춤 대신 ‘소비자가 직접’ 만든다
기업 움직이는 ‘팬슈머’ 파워…소비자 맞춤 대신 ‘소비자가 직접’ 만든다
단순한 소비자 넘어 기획자, 제작자, 영업자로 발전하는 팬슈머
영상콘텐츠도, 대형 광고도 팬들이 직접 만드는 시대
‘소비자와 함께’는 이제 옛말, ‘소비자에 의해’ 시장 정해진다
  • 이한 기자
  • 승인 2019.12.05 10: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팬덤이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 '팬슈머'로 진행 중이다. 사진은 지난 3월 서울광장에서 열린 '런 아미 인 액션' 행사에 많은 팬이 참여한 모습. 이날 행사는 방탄소년단 팬들이 세계 곳곳에 숨은 2천80개 퍼즐을 찾아 디지털 기록 저장소인 아미피디아를 한 칸씩 채워가는 이벤트였다. (사진=연합뉴스)
팬덤이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 '팬슈머'로 진행 중이다. 사진은 지난 3월 서울광장에서 열린 '런 아미 인 액션' 행사에 많은 팬이 참여한 모습. 이날 행사는 방탄소년단 팬들이 세계 곳곳에 숨은 2천80개 퍼즐을 찾아 디지털 기록 저장소인 아미피디아를 한 칸씩 채워가는 이벤트였다. (사진=연합뉴스)

[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소비자라는 단어의 근본적인 개념이 일부 바뀌고 있다. 단순히 ‘소비’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제품이나 서비스의 기획과 생산, 또는 마케팅에 직접 참여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기업에 고용된 것이 아니라 ‘팬심’에 의한 자발적인 행동이다.

팬슈머라는 단어가 요즘 이슈다.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 등이 집필한 ‘트렌드코리아 2020’에서 해당 키워드를 내년 시즌 10대 소비트렌드 중 하나로 선정했다.

팬슈머는 ‘팬’과 ‘소비자(컨슈머)’의 영문 약자를 조합한 것으로, 특정 대상에 대한 강한 애정을 가지고 그 대상을 소비하는 경향을 뜻한다.

트렌드코리아에 따르면, 팬슈머들은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직접 투자와 제조 과정에 참여해 상품이나 브랜드를 키워낸다. 스스로 키웠다는 뿌듯함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소비하지만, 그와 동시에 애정이 바탕된 간섭과 견제도 하는 집단이다.

팬슈머는 단순한 열성팬, 즉 ‘팬덤’과는 구분된다. 트렌드코리아는 전통적인 의미의 팬덤이 동경 관계, 지지자의 역할, 그리고 후원 가치로 이뤄졌다고 정의한다. 반면 최근의 팬슈머는 상호 보완 때로는 견제 관계, 파트너의 역할, 그리고 관여 가치로 이뤄졌다고 정의한다.

과거의 팬덤이 스타급 연예인이나 애플 등 일부 글로벌 브랜드에 국한된 개념이었다면 팬슈머는 연예인 등을 넘어 제품과 인플루언서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이뤄진다.

◇ 팬슈머와 오빠부대의 차이, 일방적인 소비는 NO

팬슈머와 과거 ‘오빠부대’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스타 관련 콘텐츠를 매우 적극적으로 소비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스스로 생산한다. 혼자 만들어 책상 서랍에 꼭꼭 숨겨두고 개인적으로 소장하면서 보는데 그치지 않는다. 팬슈머들은 다른 팬들과 적극적으로 나누거나 때로는 그것을 작게나마 산업화한다.

직접 뭔가를 만드는 과정이야 과거의 팬들에게도 있었다. 90년대 팬들도 스타에게 정성껏 만든 물건을 선물하거나, 자신이 만든 물건을 같은 팬클럽 회원들과 공유하며 함께 추억을 쌓았다. 

하지만 요즘 팬들은 한발 더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기업 또는 스타의 소속사에 해당 아티스트에 관한 요구사항을 수시로 전달하고 마케팅 활동 전반에 걸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연예인을 예로 들어보자. 가수의 팬슈머들은 의상과 헤어스타일링, 앨범디자인이나 음악 스타일, 어떤 작곡가와 협업하는지, 어디서 콘서트를 하고 사인회를 여는지, 어떤 이미지의 광고 모델이 되어야 하는지 수시로 의견을 제시한다. 콘서트 무대에서 가수를 보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서도, “스케줄이 빡빡해 아티스트가 무리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니 공연 일정을 당장 취소하라”는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실제로 그룹 BTS 팬들은 과거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일본 유명 제작자의 협업 계획이 발표됐을 때, “우익 논란이 있는 제작자와의 협업을 당장 중단하라”고 주장해 프로젝트를 취소시켰다. 과거 같으면 팬들의 불만은 그저 ‘그들만의 목소리’로 치부되거나, ‘보이콧’등의 움직임으로 나타나는 것이 전부였겠지만, 지금은 팬슈머들의 목소리가 기획과 생산 과정에 적극적으로 반영된다. 

팬들은 기업을 대상으로 자신의 스타에 대한 적극적인 ‘영업’에도 나선다. 예를 들어 어떤 스타가 특정 브랜드 햄버거를 좋아하면, 팬들이 그 사실을 기업에 적극적으로 알려 광고 등과 연계되도록 힘쓰는 것이다.

◇ 영상 콘텐츠도, 대형 광고도, 팬슈머가 직접 만든다

최근 온라인에서 식음료 브랜드와 아이돌 그룹 팬들이 관련 내용으로 소통해 화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팬들이 그룹 멤버가 해당 브랜드 제품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기업에 적극적으로 전달하고, 실제로 광고 초안 등을 만들어 온라인에서 적극적으로 공유하면서 ‘영업’을 한다. 브랜드 담당자들은 실제 그 내용을 바탕으로 마케팅 제안 여부를 검토하고 일부는 실제로 협업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스타가 언론이나 광고에 잘 노출되지 않으면 소비자들이 직접 행동에 나선다. 광고도 스스로 만든다. 코엑스와 잠실, 홍대입구와 강남역 등은 팬들이 직접 제작한 아이돌 멤버의 광고가 점령한지 오래다. 어제(4일)만 해도 강남 코엑스 일대에는 팬들이 만든 BTS멤버 진, 엑소멤버 찬열의 생일축하 광고가 여러군데 걸려 있었다.

영상 콘텐츠도 팬들의 몫이다. 방송사에서 제공한 영상을 보는 건 이제 단순히 기본적인 활동에 불과하다. 콘텐츠를 소비하기에 급급했던 팬들이 스스로 영상 컨텐츠를 만든다. 여러 장소의 무대를 교차편집해 춤추는 장면에서 절묘하게 의상이나 메이크업이 바뀌는 영상도 만든다. 어떤 팬들은 자체 제작한 영상에 나라별 자막까지 달아 해외 팬들에게 제공한다.

콘텐츠 소스가 되는 사진과 영상도 기획사에서 제공받지 않는다. 때로는 직접 찍는다. ‘홈마’로 불리는 팬들의 콘텐츠를 활용하기도 한다. 홈마는 ‘홈마스터’의 줄임말로 과거에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의 홈페이지 운영자를 뜻했다. 하지만 요즘은 스타의 고화질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해 개인 SNS에 올리거나 그 콘텐츠를 바탕으로 굿즈(기념품) 만드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스타의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다양한 제품을 만든다. 카페 또는 갤러리 등을 빌려 전시회를 열고 그 수익금을 스타에게 돌려주기도 한다. 소비자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제작자이자 홍보담당자가 되는 셈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스타의 사진을 활용해 제품을 만들어 파는 행위는 초상권이나 퍼블리시티권 침해 소지가 있다. 하지만 관련 시장이 연예산업계에서 이미 활발하고 주요 소비자가 해당 아티스트의 열성 팬들이어서 기획사에서도 문제 삼지 않는 관행이다.

아이돌그룹 멤버의 현수막과 생일 축하 메시지가 걸려 있는 서울 강남의 한 카페. 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진행한 이벤트다.
지난 5월, 아이돌그룹 멤버의 현수막과 생일 축하 메시지가 걸려 있던 서울 강남의 한 카페. 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진행한 이벤트다. (사진=소비자경제)

◇ 직접적이고 과감한 팬슈머들의 목소리

스포츠스타들을 중심으로도 비슷한 경향이 관찰된다. 과거의 팬들은 경기장을 찾아 열광하거나, 열성팬들이라고 해도 선수단 숙소에 찾아가 편지나 선물을 전달하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요즘 팬들은 선수관련 굿즈를 직접 제작하고, 감독 또는 구단에 해당 선수의 기용 등에 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한다.

프로야구를 예로 들면, 요즘 팬들은 잘 던지는 투수가 자주 나와서 많이 던지는 것을 경계한다. 과거에는 이런 경우 ‘철완’이나 ‘투혼’이라는 단어로 환호했지만 요즘은 ‘혹사’라는 키워드로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프로야구단의 팬 게시판 등에는 선수의 등판간격이나 투구횟수 등을 꼼꼼이 짚어가며 선수기용을 문제삼는 글이 많다.

스타들의 생일 풍경도 달라졌다. 팬들이 직접 다양한 이벤트를 연다. 사비를 들여 스타 관련 기념품을 제작하고 브랜드 커피숍 등과 제휴해 카페 방문 고객에게 선물을 나눠준다. 일회용 커피잔에 필요한 ‘컵홀더’가 대표적으로, 어지간한 유명 아이돌은 본인 얼굴 사진이 인쇄된 컵홀더 수십종이 이미 일선 카페 등에서 팬들에게 유통됐다.

팬슈머 키워드에서는 산업의 새로운 흐름이 읽힌다. 충성도 높은 소비자가 자신이 소비하는 콘텐츠의 제작 및 홍보, 유통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만들어진 제품을 수동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한다는 점, 본인 의사가 받아 들여지지 않으면 스스로 대안을 찾아 새로운 콘텐츠를 유통시킨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소비자와 함께’는 이제 옛말, ‘소비자에 의해’ 시장 좌우된다

2020년의 팬슈머 트렌드는 어떻게 진화할까. ‘트렌드코리아 2020’은 이런 경향이 기업이나 브랜드 등으로 폭넓게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스타트업의 아이디어 상품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거나 기업의 상품 개발 과정에 참여하는 등으로 확산된다는 의미다.

‘트렌드코리아’는 “팬슈머 활동의 동력은 바로 ‘이것은 나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자부심”이라고 정의한다. 소유에서 경험으로 이동한 소비 패러다임이 이제는 경험에서 ‘관여’로 발전하는 흐름이다. 책에서는 “이 관여에 대한 열기는 선발과 양육, 기획과 제조, 유통과 홍보, 그리고 지지아 비판까지 시장의 전 영역에 드리워진다”고 짚었다.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가 이런 경우다. 이 시리즈는 시청자들이 스토리라인과 결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단단한 팬덤을 구축했다. 구독자들은 단순한 팬심을 넘어 캐스팅에 관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작품에 관여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베어그릴스’가 등장하는 서바이벌 생존 다큐멘터리 중 일부를 시청자들이 직접 결정하도록 기획했다. 소비자가 정하는대로 참여자가 움직이는 방식이다. 이 작품도 큰 화제가 됐다.

편의점 CU는 밀착형 서포터드 CU덕후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소비자 활동을 지원한다. 컴투스는 게임문학상을 통해 작품을 공모받아 게임 시나리오 등에 활용한다. 농심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직접 굿즈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과거의 팬들은 열성적으로 지지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보이콧’하는 것이 소비활동의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제품과 서비스를 직접 기획하고 제작하고 홍보하는 과정 전반에 소비자들이 직접, 그것도 스스로 참여하고 있다. 팬과 소비자의 관계가 완전히 무너진, ‘팬슈머’ 시대의 모습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