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 최근 과기정통부에 2G 서비스 종료 승인 신청서 제출
과거 번호 사용중인 소비자들 “오래 쓴 앞번호 그대로 사용하게 해달라”
사회적 정체성 가진 개인 자산? 서비스 계약에 의한 일렬번호? 사회적 합의 절실

011이나 017 등 과거 번호를 사용하는 소비자들은 언제까지 자신이 원하는 앞번호를 쓸 수 있을까. 해당 논의는 수년째 진행중이지만 뾰족한 해결 방안은 도출되지 않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3년 당시 한 이동통신사 대리점 입구에 걸린 번호변경 안내문 모습.
011이나 017 등 과거 번호를 사용하는 소비자들은 언제까지 자신이 원하는 앞번호를 쓸 수 있을까. 해당 논의는 수년째 진행중이지만 뾰족한 해결 방안은 도출되지 않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3년 당시 한 이동통신사 대리점 입구에 걸린 번호변경 안내문 모습 (사진=연합뉴스)

[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011 등 과거 휴대전화 앞번호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번호를 계속 쓰고 싶다는 소비자들의 거센 항의, 효율성과 법률적인 판단을 앞세운 정부와 기업의 입장이 정면 충돌한다. 휴대전화 앞번호는 사회적 정체성을 가진 개인 자산일까? 아니면 서비스 계약에 의해 부여된 일렬번호에 불과할까? 이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와 타협이 필요한 시점이다.

‘휴대전화가 안 터진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날까. 어려서부터 스마트폰에 익숙한 Z세대는 ‘와이파이 신호가 안 잡힌다’거나 ‘일시적으로 데이터 통신 오류가 발생했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4050이상 중장년 세대라면 소위 ‘안테나’가 안 떠서 정말로 전화를 받을 수 없던 장면을 떠올린다.

지하에서 휴대전화가 가끔 잘 안 터지던 시절, 그때는 통신사마다 앞번호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스피드011’이나 ‘파워017’ ‘원샷018’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앞번호가 전화 연결이 잘 된다고 홍보했다. 통화 품질이나 소비자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 대신 번호 마케팅에만 몰두한다는 불만도 제기되곤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010번호통합’이다. 식별번호 경쟁 대신 통신사업의 본질적인 경쟁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였다.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는 건 귀찮은 일이지만, 많은 소비자들은 번호이동을 하거나 단말기를 바꾸면서 자연스럽게 010으로 넘어왔다. 스마트폰이 대중화하면서 그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그리고 지금은 대다수의 소비자들이 010을 쓴다.

◇ 2G 서비스 종료 논의 본격적으로 재점화

그런데 이 지점에서 문제가 있다. 대부분 010을 쓰지만 아직도 011이나 017 등의 번호를 쓰는 사람이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SK텔레콤의 2G 가입자는 57만 4736명이다.

KT는 2G를 종료했다. 하지만 LG유플러스에도 SK텔레콤과 비슷하거나 다소 적은 숫자의 가입자가 있다. 약 100만명이 아직 2G유저로 남아있다는 얘기다. 이들은 01X 번호를 계속 사용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어려워 보인다.

지난 11월 7일 오후, ”SK텔레콤에서 알려드립니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 이메일이 통신 담당 기자들에게 전달됐다. 메일 본문에는 ”당사는 금일(11월 7일 목요일) 오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2G 서비스 종료 승인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2G 장비 노후화로 망의 유지관리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2G 주파수의 정부 반납 시한이 2021년 6월로 다가와 종료를 준비할 수밖에 없다.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SK텔레콤의 2G 가입자는 57만4736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SK텔레콤의 2G 종료 신청에 대해 “심사기한 및 2G 서비스 종료시점 등에 대해서는 확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추후 2G 종료 여부와 시점은 “이용자 보호계획 및 잔존 가입자 수 등을 종합 고려해 심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사무적인 답변으로 읽히지만, 최기영 장관이 이미 지난 달 국정감사에서 관련 내용을 언급한 바 있어서 2G종료가 한발 가까워졌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 소비자들이 과거의 앞번호를 유지하려는 4가지 이유

일부 소비자들이 01X 번호를 계속 사용하려는 이유는 크게 4가지로 파악된다. 아날로그 감성이 편한 소비자들,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가 업무DB와 연결되는 사람들, 번호에 얽힌 개인적인 사연이나 의미를 버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휴대전화 번호를 소중한 개인 자산으로 인식해 그것을 국가가 정책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기자도 최근 011 명함을 받은 적 있다. 인테리어 및 주방 설비 관련 전문가다. 그는 목수 아들과 함께 2인 1조로 일하는데 23년 동안 고객들과 해당 번호로 연락했다고 했다.

그는 “일 특성상 소수의 의뢰인에게 자주 연락이 오는 게 아니라 폭넓은 사람에게 아주 가끔 의뢰 받는 경우가 많다”면서, “몇 년 만에 한 번 오는 업무 연락이라도 내겐 매우 소중하고, 연락 올 확률이 매우 적더라도 내게는 업무상 큰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01X 번호에 관해 소비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예전 앞번호 사용자와 직거래를 해봤다는 한 소비자는, “온라인 중고 사기가 많고 그런 사람들은 보통 ‘대포폰’을 쓴다던데 오래 사용한 번호라는 확신이 들어서 왠지 믿음이 갔다”고 했다. 

자신이 일하는 회사의 대표, 그리고 이모부가 모두 011을 쓴다는 한 소비자는 “두 분 모두 업무적인 이유로 번호를 남겨뒀다.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만 011 번호는 그대로 살려두고 받는 용도로 쓴다. 가까운 지인들에게야 바뀐 번호를 알렸겠지만 모든 지인들에게 다 알릴 수는 없고, 어쩌다 한번 오는 전화라도 놓치기 싫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취재 중 만난 한 소비자는 개인 의견임을 전제하면서 “2G 서비스는 정지 시켜놓고 010 사용하면서, 나중에 보상을 받으려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번호 둘러싼 입장차 “의미 있는 개인 자산” VS “서비스이용 계약”
 
포털사이트 네이버에는 ‘010통합반대운동본부’라는 이름의 카페가 개설되어 있다. 이곳 가입자는 현재 3만 6800여명. 이들을 취재하기 위해 가입한 언론사 관계자나 호기심에 가입한 회원 등의 허수가 있겠지만 그래도 매우 많은 숫자다.

운동본부 일부 회원들은 지난 6월 SBS 취재를 통해 자신들이 왜 01X 번호를 꾸준히 사용하고 싶은지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들은 당시 인터뷰에서 부모님이 20여년 전 처음 마련해준 휴대전화, 퇴근 후 카톡을 통한 업무지시로부터의 자유로움, 차별화에 대한 자부심 등을 꼽았다.

이 의견들은 결국 한 가지 쟁점으로 모인다. “소중한 의미가 담겨있는 내 개인 자산을 왜 국가가 마음대로 바꾸려고 하느냐”다. 개인이 자신에 관한 개인정보의 공개 여부나 관리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즉,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에 저촉되는 것 아니냐는 항변이다.

이 부분에 대해 법률적으로는 이미 내려진 판단이 있다. KT가 2012년 서비스를 종료할 당시 소비자들이 번호통합 정책에 대한 위헌 심판을 청구했는데 기각됐다.

재판부는 “청구인들이 오랜 기간 같은 이동 전화번호를 사용해왔지만 국가의 정책 및 사업자와의 서비스 이용계약 관계에 의한 것일 뿐”이라고 언급하면서 “재산가치가 있는 구체적 권리인 재산권을 가진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긴 세월에 걸쳐 자신의 휴대전화 앞번호가 사회적인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받아들이는 소비자, 그리고 법률과 정책, 기술적인 부분들을 감안할 때 010으로 완전히 통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정부와 기업의 입장이 서로 부딪히는 지점이다.

◇ 갈등 해결과 그에 따른 비용, 해소 위한 합의와 정책 마련이 숙제

문제는 010 통합에 따른 갈등과 이를 해소하기 위한 비용이 만만찮다는 점이다. 수십만명의 소비자들은 저마다의 사연과 이유로 번호를 유지하고 싶어하고, 통신사들은 장기 충성 고객을 상대로 번호 전환을 설득하거나 또는 강제해야 하는 입장에 놓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SK텔레콤은 2G 가입자의 세대 전환을 위해 단말기 구매 지원금과 요금할인 등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도 일부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현재 실현 가능한 처방은 2021년 6월까지 한시적으로 기존의 01X 앞번호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010으로 이미 넘어온 다수의 소비자들이 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하지만 앞번호에 특별히 애착을 가진 소비자들과 그들을 설득해야 하는 기업에게는 짧게 느껴질 수도 있다.

010 통합반대운동본부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아래와 같은 공지사항이 게재돼 있다.

1. 아직 종료가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2. 기기변경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3. 기기변경 또는 요금제 변경시 각서를 작성하나 구두확약을 하지 마십시오.
4. 번호이동 또는 전환가입을 하지 말아 주십시오.
5. 텔레마케터 전화에 강력하게 대응하세요.
6. 만약, 정말 강제로 SKT 2G 서비스가 종료되더라도 번호이동, 해지를 하지 않을 각오를 가져주세요.
7. 국민정책제안에 릴레이 제안을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8. 현재 우리 011사용자의 현실과 이 행동요령을 많은 이들에게 전파해 주십시오.

지난 2011년, LTE 도입을 위해 2G를 조기 종료했던 KT는 2G 가입자 수를 전체 가입자 수의 1%대까지 낮춘 뒤 정부 승인을 받았다. 통계적인 숫자로 따지면 1%라는 비율은 매우 적어 보인다. 하지만 수십만명에 달하는 통신소비자의 목소리를 감안하면 시선은 또 달라질 수 있다.

앞서 이모부와 회사 대표가 011 번호를 사용한다고 했던 한 소비자는 2G 서비스 종료 관련해 "소비자들 반발이 장난 아니겠네요"라고 말했다. 다수의 효율을 위한 소수의 불편 감수가 어느 선까지 적당한지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것은 물론,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정책적인 접근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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