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조각사·V4·리니지2M...40여일 사이 나란히 출시
'리니지'로 인연 맺은 1세대 게임 개발자, 하반기 대작 게임으로 격돌
콘텐츠 강화하며 게임 소비자 마음 잡기 치열한 경쟁 점입가경

'리니지2M'을 직접 공개하는 김택진 대표의 모습 (사진=엔씨소프트 제공)
과거 '리니지'  개발에 몸 담았던 게임업계 거장들이 하반기 대작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리니지2M'을 직접 공개하는 김택진 대표의 모습 (사진=엔씨소프트 제공)

[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외교가와 비즈니스 업계의 오랜 격언이다. 과거 한솥밥 먹던 사람들이 서로 경쟁자가 되어 치열하게 맞붙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2019년 하반기 게임업계가 바로 그렇다.

과거 ‘리니지’로 인연을 맺었던 국내 1세대 게임 개발자들이 각각 ‘리니지2M’과 ‘달빛조각사’ 그리고 ‘V4’를 출시하며 치열한 경쟁중이다. 엔씨소프트 김택진,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넷게임즈 박용현 대표 얘기다. 세 사람은 약 40여일의 기간을 두고 나란히 대작 게임을 출시하며 정면승부를 벌이고 있다.

◇ 하반기 기대작 러시의 시작, ‘달빛조각사’

지난 11월 첫째 주 주말, 기자는 충남지역 한 재래시장 호떡집에 40분 동안 줄을 섰다. 유명한 지역 맛집이라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다.

호떡집은 분업화가 철저했다. 반죽을 떼는 사람, 굽는 사람, 그리고 계산하는 사람이 정해진 동작으로 자기 임무를 수행했다.

호떡은 대량으로 만들어놓고 팔 수가 없어 그때그때 구워야 한다. 불판 크기는 정해져 있고, 기다리는 사람은 많으니 회전이 빠르지 않았다. 반죽을 뭉쳐 기름판에 올려놓고 그게 구워지는 동안 몇 분간은 다들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새 반죽이 올라가고 다음 손님이 계산을 하기까지 잠시 시간이 남는 순간, 카운터에 있던 직원이 비닐 장갑을 잠시 벗더니 스마트폰 잠금화면을 열었다. 그리고 ‘달빛조각사’에 접속했다. 2~3분여 찰나의 시간이지만 게임 내에서 급히 진행해야 할 미션이 있었던 것 같다.

엑스엘게임즈가 개발한 달빛조각사는 판타지 소설 원작을 활용한 게임으로 사전예약자 320만명, 출시 하루만에 애플스토어 및 구글 플레이 양대 마켓 1위를 차지한 화제작이다. 하반기에 출시했지만 2019 한국게임대상에서 최종심사까지 올랐다.

과거 '리니지의 아버지'로 불렸던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이사가 지난 2016년 '달빛조각사' 개발이 한창 이뤄지던 당시 경기도 판교 엑스엘게임즈 본사 'Q5 스튜디오'에서 촬영에 응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과거 '리니지의 아버지'로 불렸던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이사가 지난 2016년 '달빛조각사' 개발이 한창 이뤄지던 당시 경기도 판교 엑스엘게임즈 본사 'Q5 스튜디오'에서 촬영에 응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 MMORPG 평정 나선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달빛조각사는 지난 10월 10일 출시됐다. 이 게임을 만든 사람은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대표이사다. 그는 과거 리니지 개발자였다. 단순히 개발 과정에 참여한 여러 프로그래머 중 한 명이 아니라 원작 작가에게 사용 허가를 얻어내고 초기 개발을 주도한 ‘리니지의 아버지’다. 2003년까지는 엔씨소프트에서 개발 총괄 부사장으로 일했다.

송재경은 넥슨 지주사인 NXC대표이사 김정주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86학번 동기다. 서울대 컴퓨터 스터디 클럽 SCSC 출신의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드림위즈 이찬진 대표 등과도 20대 시절부터 교류를 많이 했다.

94년 역삼동의 한 사무실에서 김정주와 함께 창업해 유명 게임 ‘바람의 나라’ 개발 과정에 참여했고, 퇴사 이후 리니지 판권을 확보해 개발하다 당시 벤처기업인 엔씨소프트로 가서 98년 11월 리니지 출시를 주도했다.

이후 엔씨소프트를 떠나 엑스엘게임즈를 창업했다. 당시 김정주 김택진 등과 불화설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업무상의 의견 충돌 과정이었고 지금은 원만한 관계들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송재경 대표는 ‘달빛조각사’를 출시하며 MMORPG시장에 진출했다. 이 과정에서 리니지 개발을 함께했던 김민수 이사가 큰 힘이 됐다. 김 이사는 송재경 대표가 엔씨소프트 시절부터 함께 일했던 동료다.

◇ 넷게임즈 박용현, “묘한 경쟁구도, 사람들 모일테니까 더 좋다”

달빛조각사 열풍이 불고 한 달 후, 지난 11월 7일 넥슨에서 하반기 기대작 ‘V4’를 내놨다. 이 게임은 넥슨 자회사 넷게임즈가 개발했다. 그리고 넷게임즈 박용현 대표는 과거 엔씨소프트에서 ‘리니지2’ 총괄 프로듀서로 일했다.

그는 2007년 엔씨소프트를 떠나 게임 개발 관련 일을 계속했고 2015년 넷게임즈를 설립해 모바일 게임 '히트'와 '오버히트'를 출시했다. V4는 박용현사단의 차기작으로 출시 전부터 큰 주목을 끌어왔다.

V4 역시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출시 이틀만에 앱스토어 최고매출 1위를 달성했고 구글플레이에서도 최상위권의 매출을 올렸다. 공교롭게도 V4 출시 후 당시 달빛조각사 매출 순위가 하락했다. 출시 후 날짜가 지나면 순위가 하락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호사가들은 두 작품의 경쟁구도를 부각하기도 했다.

박용현 대표는 V4 출시를 앞두고 게임 관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시기상 묘한 경쟁구도가 형성됐다. 서로 잘 경쟁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사람들 이목도 모이지 않겠나? 같이 잘 살아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리니지 출신 거장들의 경쟁 구도에 대해서는 “재밌게 말하면 그런 상황이긴 하다. 나도 두근두근하다. 근데 의외로 특별한 생각은 안 난다”는 소감을 밝힌 바 있다. 박 대표는 이 인터뷰에서 리니지2M과의 차별화에 대해서도 직설적으로 언급했다.

박용현 넷게임즈 대표가 신작 V4 출시 계획을 발표하는 모습. 주위에 몰려든 취재진과 유저들의 모습이 그에 대한 관심을 실감케 한다.
박용현 넷게임즈 대표가 신작 V4 출시 계획을 발표하는 모습. 주위에 몰려든 취재진과 유저들의 모습이 그에 대한 관심을 실감케 한다. (사진=소비자경제)

◇ 엔씨소프트 김택진, “기술력으로는 리니지2M 따라올 게임이 없다”

리니지의 개발을 누가 맡았는지는 과거의 얘기고, 어찌 되었던 소비자들은 리니지의 이름에서 엔씨소프트와 김택진 대표의 이름을 떠올린다. “택진이형 밤샜어요? 근데 리니지2M 언제 나와요?”라는 카피가 게임 소비자들의 인식을 대변한다.

김택진 대표는 지난 9월, 리니지2M 콘텐츠를 일부 공개하면서 “향후 몇 년 동안 기술력으로는 더 이상 따라올 수 없는 게임은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경쟁자들이 리니지M을 따라올 때, 우리는 리니지2M을 따라나섰다”며 사뭇 당당함을 보였다.

김택진 대표는 경쟁자가 누구인지 특정해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시 게임업계는 이미 하반기 기대작들의 연이은 출시와 그에 따른 경쟁 구도에 주목하는 분위기였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날 김택진은 대표라는 직함 대신 최고개발책임자(CCO)라는 직함으로 소개됐다. 기술력을 강조하기 위한 메시지로 읽힌다.

11월 27일 출시한 리니지2M은 사전예약자 738만명이 몰린 인기 게임답게 첫날부터 서버가 북적였다. 정식 출시 전 사전 다운로드 단계에서 이미 구글플레이와 애플앱스토어 1위를 차지했다. 130개 서버마다 이용자들이 가득 찼다. 새벽  간인데도 수천명이 서버에 입장하기 위해 대기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하나금융투자 황승택 연구원은 "리니지2M의 경우 시장 컨센서스 기준 연간 6~7000억원 내외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면서 “엔씨소프트에 4조원 수준의 시가총액 증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콘텐츠 강화 나선 하반기 대작들, 치열한 경쟁 점입가경

리니지는 스타크래프트와 더불어 국내 PC방 문화를 활성화한 게임이다. 당시 개발자들은 스타 CEO가 되어 국내 게임산업을 이끌고 있다. 이들이 치열한 선의의 경쟁을 벌이면서 게임 소비자들에게는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를, 국내 게임시장에는 새로운 활력소를 제공하고 있다.

실제로 V4와 달빛조각사는 11~12월에 대형 광고와 이벤트, 업데이트 등을 진행하면서 컨텐츠 강화에 나선다

달빛조각사는 리니지2M출시 하루 전과 이틀 후에 각각 대규모 업데이트를 공개했고 V4는 지난 22일 게임 애호가이자 유명 방송인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를 광고와 이벤트에 참여시켰다. 12월 12일에는 대규모 업데이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최근 국내 게임 시장은 어려움에 처했다. e스포츠에서의 K-게임 열풍 등으로 한류 흐름을 주도하고 있으나 상반기 MMORPG시장은 다소 침체된 분위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기대작들이 출시되고 ‘리니지 조상님’들의 치열한 경쟁구도가 형성되면서 소비자들의 관심이 쏠린 것은 청신호다. 각 게임들이 콘텐츠 강화에 나서면서 업계는 새로운 활력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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