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장 11개월 연속 1% 밑돌아
정부 "연말 물가 상승률은 0% 중반 수준까지 오를 전망"
전문가 "디플레 대응책 시급"

이두원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이 2일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브리핑실에서 11월 소비자물가동향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통계청은 이날 브리핑에서 올해 1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4.87(2015년=100)로 전년 동월 대비 0.2% 상승했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이두원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이 2일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브리핑실에서 11월 소비자물가동향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통계청은 이날 브리핑에서 올해 1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4.87(2015년=100)로 전년 동월 대비 0.2% 상승했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소비자경제신문 최빛나 기자] 소비자물가가 4개월만에 공식적으로 상승 전환했지만 1% 대의 초저물가 기조를 이어갔다. 그동안 물가 상승률을 낮추는 데 크게 작용했던 농산물·석유류 가격 하락세가 둔화한 데 따른 것으로, 정부는 연말 물가 상승률이 0% 중반 수준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대로라면 연간 상승률이 사상 최저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 11월 상승 전환 했지만, 초저물가 기조 이어져...소비자 가계 부담↑

3일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1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4.87로 0.2%(이하 전년 동월대비) 상승했다. 이로써 소비자물가는 지난 1월(0.8%) 이후 11개월 연속 1%를 밑돌았다. 이는 1965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최장 기록이다.

정부의 복지 지원 확대와 작황 호조로 이어진 농수산물 가격 하락으로 물가가격이 낮아진 탓에 한국의 위와 같은 상황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모아 말한다.

AI 경제연구원은 <소비자경제>와의 통화에서 "초저물가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위와 같은 아주 적게 오른 상승곡선이 이어질 것 이라고 하지만 섯불리 판단하기는 이르다"며 "김장에 쓰이는 배추 한포기가 8천원대다. 이처럼 장바구니 물가는 아직도 상승곡선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점점 소비자들의 각 부담은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 저물가를 주도했던 농산물의 가격 하락세가 주춤해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으며 개인서비스가 상대적으로 오르면서 상승세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두원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농산물 가격 약세가 이어졌지만 태풍과 가을 장마로 배추·무·오이 등이 작황 악화로 가격이 크게 올라 하락세가 둔화했다”며 “기여도 측면에서는 개인서비스가 1.6% 올라 물가를 견인했다”고 설명했다.

물가가 상승 전환하긴 했지만 저물가 기조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 물가는 지난 8월과 0.0%, 9월 마이너스(-) 0.4%, 10월 0.0% 등 4개월째 초저물가 추세다.

근원물가인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는 11월 0.6% 올랐고,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도 0.5% 올라 1992년 12월 이후 최저치를 경신했던 올해 9월과 같은 수준이다.

이 과장은 “복지와 무상 정책. 학생 교복 인하나 가전제품 같은 내구제 상승률 둔화가 원인”이라며 “개인서비스 중 외식 부분에서는 학교 급식비와 생선회 (물가 하락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다음달 물가 상승률을 0%대 중반으로 예상했다. 연간 물가상승률이 0%대에 그칠 전망이다. 물가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66년부터 지금까지 연간 성장률이 0%대였던 시기는 외환위기 이후인 1999년(0.8%)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터진 2015년(0.7%) 두차례 뿐이다. 올해 11월 현재까지 누적 상승률이 0.4%인 것을 고려하면 올해는 역대 최저치를 기록할 공산이 크다.

내년에도 저물가 기조는 계속될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올해 0.4%에서 내년 1.0%대를 회복할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근원인플레이션율은 0.7%로 올해와 비슷할 것으로 봤다. 유류세 인하와 개소세 인하 종료 등 일회적 요인이 사라지면서 소비자물가는 올해보다 개선되겠지만 근본적인 저물가 현상의 회복은 어렵다는 뜻이다.

다만 정부는 저물가 현상을 두고 대해 수요측 물가압력이 낮아지는 가운데 공급측 요인과 정책 요인에 의한 것이라며 디플레이션(경기 침체를 동반한 물가 하락)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디플레 우려에도 최근 나타나는 낮은 물가상승률은 공급요인이 커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소비자 체감 부담까지 여전...생활물가지수 증가 때문

앞서 저물가 기조가 이어지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체감 물가는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11월 생활물가지수는 0.2% 올라 7월 이후 4개월 만에 상승 전환했다. 전체 460개 품목 중 구입 빈도가 높고 지출비중이 높아 가격 변동을 민감하게 느끼는 141개 품목으로 작성한 생활물가지수는 물가 체감 지표로 불린다.

실제 배추와 무의 물가는 작황이 악화했지만 김장철 수요가 늘어 각각 56.5%, 67.4%의 높은 상승폭을 나타냈다. 서비스 중에서는 택시료(14.8%)와 시내버스료(4.2%)가 올랐고 공동주택관리비(5.7%)와 고등학생·중학생학원비(1.9%, 1.7%)도 상승했다.

1일 한국은행이 글로벌 통계 비교 사이트 넘베오의 자료를 인용한 발표에서도 올해 서울 생활물가지수는 337개 도시 중 26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파리나 런던 같은 해외 대도시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집값 상승세도 꾸준하다. 한국감정원의 11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를 보면 11월 서울의 주택 매매가격은 전월대비 0.50% 올라 지난해 10월(0.51%) 이후 최고 상승폭을 나타냈다. 올해 누적 상승률은 0.38%로 연간 기준 6년째 상승세다. 체감하는 물가는 오르는데 정작 지표에서는 저물가가 이어지는 불균형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시중 유동자금이 부동산에만 쏠리기 때문에 집값만 오르는 물가 불균형이 나타나고 있다”며 “재정의 효율적인 집행을 통해 집값 부담을 줄임으로써 상대적으로 위축한 다른 부문의 수요를 진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사실상 디플레?...정부의 추가 정책 대안 시급해 
 
위와같은 경제 상황에 경제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사실상 디플레이션에 진입했다며 정부의 추가 정책 대안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경제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진입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또 이에 따른 후속 대책이 시급하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비자 물가지수가 1년 전보다 0.2% 상승하긴 했지만 전월과 비교하면 오히려 하락했다"면서 "지금까지의 물가 상승률 흐름을 보면 우리나라가 디플레이션에 진입했다고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성 교수는 "물가 상승률 0.2%의 반등도 사실상 숫자로 볼 때 큰 의미가 없다"면서 "경기악화를 반영한 물가하락에 대한 정책 대응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소비자물가지수는 2000년대 3.5%를 기록했다가 2010년대엔 1%대로 하락했다"면서 "그동안의 수치를 보면 결론적으로 물가상승률 레벨이 둔화된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우리나라가 디플레이션으로 진입하면 소비와 투자가 줄고 이에 따른 가격 하락으로 수요가 감소하는 이른바 디플레이션 소용돌이(deflationary spiral)에 빠지게 된다"면서 "정부가 낙관하기보다는 지금을 디플레이션 전조현상이라고 보고 최악의 상황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하는 경제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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