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 뉴트로와 오팔세대 추억, 낯선 지점의 묘한 교집합
Z세대 뉴트로와 오팔세대 추억, 낯선 지점의 묘한 교집합
  • 이한 기자
  • 승인 2019.11.26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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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기자는 2001년 가을, 영화잡지에서 인생 첫 기사를 썼다.

벌써 18년 전이니까 요즘 세대들에게는 까마득한 옛날이다. 그때 쓴 기사가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에 관한 인물평이었는데, 그 기사 중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제임스 카메론의 역작 <터미네이터>는, 17년이 지난 지금 봐도 평점 만점을 줄만한 SF액션 대작”이라는 문구다.

지금으로부터 19년 전에 그것보다도 17년이나 더 옛날. 그러니까 1984년 얘기다. <응답하라 1988>보다 무려 4년이나 앞선 시절에 <터미네이터>가 나왔다. 요즘 말로 하면 ‘고인물’을 넘어 ‘석유’ 수준이다. (꾸준히 오래됐다는 뜻으로 부정적인 뉘앙스는 아니다)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피도 눈물도 없는 무서운 미래로봇으로 나온 바로 그 영화. 1991년에는 총에 맞고 톱에 썰려도 금방 회복되는 전대미문 액체로봇으로 관객에게 충격을 줬던 <터미네이터>의 원조다.

기자가 먼저 본건 <터미네이터2>였다. 밀레니얼 Z세대들은 잘 모르겠지만 옛날 극장에는 ‘동시상영’이 있었다. 영화를 1+1으로 보여주는 시스템이었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친구랑 동시상영관에서 본 두 번째 영화가 터미네이터2였다. 1편은 비디오로 빌려봤다. DVD나 블루레이가 아니고, ‘음란 비디오는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뜬금없는 경고가 나오던 그 비디오 말이다.

세월이 오래 흘렀고 그후 여러 터미네이터가 나왔다. 케이블 영화채널에서도 단골 작품이었다. 이후에 나온 작품들도 대부분 봤고 몇몇 작품은 TV로 여러번 봤지만 여전히 1991년 동시상영관에서 본 액체괴물 T-1000의 포스에는 못 미친다고 느꼈다.

터미네이터 자체의 특별함도 있겠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소년 시절에 봐서 기억이 강렬한 탓도 크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져서 소위 ‘추억보정’도 이뤄졌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과 달리 그 시절 기자에게는 오리지널 터미네이터가 최고다.

◇ 80년대 영웅들이 2019년 스크린으로, '마블세대'는 공감할까?

이 얘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터미네이터가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름만 빌려 쓰고 다른 배우가 나오는 ‘짝퉁’영화가 아니다, 칠순을 훌쩍 넘긴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여전히 울근불근한 근육에 깜박임 없는 냉정한 눈빛을 쏘아댄다. 환갑을 넘긴 린다 해밀턴도 지구를 구할 엄마 ‘사라 코너’로 나온다.

그들과 같이 늙어가는 기자가 터미네이터에 열광한다면 그건 별로 뉴스거리가 아니다. 나이 든 사람이 추억속에서 헤매이는 건 흔해빠진 일이니까. 하지만 중요한건 <터미네이터>가 마블 세대의 마음도 움직였다는거다. 터미네이터는 26일 현재 국내 기준 238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평단의 평가도 괜찮다.

여기 흥미로운 영화계 뉴스가 하나 더 있다. <람보>도 돌아왔다. 46년생 할아버지 배우 ‘슬버스터 스탤론’이 다시 총을 맸다. 정글 속 전장을 누비던 30대 중반의 람보와는 다르지만 그래도 괜찮은 액션을 보여줬다. 80년대 오리지널 터미네이터와 람보의 귀환, 여기엔 어떤 배경이 있을까.

두 가지 키워드를 읽어볼 수 있다. 하나는 최근 부쩍 유행하는 ‘뉴트로’다. 2020년에 새롭게 탄생한 복고 아이템을 뜻하는 신조어다. 델몬트 주스병이 2만원에 팔리는 시대고 식유통 업계 전반에 걸쳐 레트로 아이템이 큰 인기를 끄는 시대다. 터미네이터와 람보도 그 영향력 안에 있다.

1020세대들은 복고 키워드 중에서 인기있는 아이템들을 ‘힙’하다고 부른다. 최근 <터미네이터>를 봤다는 한 99년생 대학생은 기자에게 “아재가 아재템만 쓰면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놀림받을 수 있지만 괜찮은 아재템을 잘 찾으면 ‘힙’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일부러 복고 아이템을 찾아 소비하지는 않지만, 흥미로운 놀거리를 ‘옛날 아이템’에서 찾으려는 경향은 분명히 있다. 하긴, 90년대 학번인 기자의 친구들 중에서도 ‘이별의 부산정거장’같은 전후세대 노래를 즐겨듣는 아이들이 있었다.

◇ 추억을 소비하는 新중년 '오팔세대' 자신만의 콘텐츠에 지갑 연다 

복고열풍을 무조건 신세대들의 새로운 소비경향이라고만 볼 필요는 없다. 추억을 소비하는 세대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 등이 집필한 <트렌드코리아 2020>에서는 ‘오팔세대’라는 키워드를 제시한 바 있다. 58개띠를 뜻하기도 하고, 이들 세대가 뽐내는 다채로운 색깔이 모든 보석의 색을 담은 ‘오팔’을 닮았다는 의미도 있다.

트렌드코리아는 오팔세대가 새로운 일자리에 도전하고 활발한 여가생활을 즐기며 자신들만의 콘텐츠를 구매한다고 했다.

실제로 기자에게는 대선배인 한 베이비붐 세대 ‘이사님’은 얼마전 터미네이터 1,2를 넷플릭스에서 몰아보고 신작까지 함께 봤다고 했다. 그는 기자에게 “아이언맨이 롤모델이라는 아들에게 괜히 ‘야 임마, 아이언맨도 터미네이터는 못 이겨’ 하고 장난을 걸어봤다”며 웃었다. 그는 “나중에 아들도 손주 앞에서 어렸을 때 보던 아이언맨도 생각하고, 또 제 아버지 생각도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80년대 터미네이터와 람보의 귀환은 뉴트로에 열광하는 Z세대와, 자신만의 콘텐츠를 구매하는 오팔세대의 마음을 함께 자극했다. 세대간 단절이 심화되고 콘텐츠 선호도 역시 분명하게 갈리는 요즘, 두 세대가 낯선 지점에서 묘한 교집함을 이룬 것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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