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어떻게 지내느냐는 친구의 말에 (삐빅!)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

10년 전 인기를 끌었던 그랜저 광고다. 모처럼 친구를 만난 한 남자가 그랜저를 보여주고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장면이다. ‘성공한 남자가 타는 웅장하고 우아한 대형 세단’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운 광고다.

비슷한 시기에 이런 광고도 나왔다.

일본 최고의 세단은
조용하다고 합니다
편안하다고 합니다
부드럽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랜저는 타보셨습니까?

그랜저는 ‘부의 상징’이었다. 80년대 소위 ‘각그랜저’ 시절부터 그랬다. 체어맨과 에쿠스, 제네시스가 흥하고 벤츠와 아우디가 고급 대형 세단으로 VIP고객을 유혹할때도 그랜저의 위상은 흔들리지 않았다. 국내 준대형 세단의 전설이자 역사가 바로 그랜저다.

1986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국내 대형 승용차 수요는 대부분 그랜저였다. 1992년 등장한 2세대는 '각'을 버리고 좀 더 부드러워졌으나 중후한 멋은 변함 없었다. 2005년에 등장한 4세대 TG도 '성공한 아빠'의 로망을 추구했다. 2011년 5세대 HG는 '웅장한 활공'을 의미하는 그랜드 글라이드가 콘셉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디자인이 직선이냐 아니면 곡선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랜저'가 담고 있는 가치와 브랜드 네임밸류 얘기다. 그랜저는 럭셔리 세단으로 사장님이 타는 차였고 부자들만 몰 수 있었으며 어지간한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쳐다보기는 좀 어려운 이미지가 있었다.

그런데 그랜저가 변했다.

위상이 흔들렸다는 얘기가 아니고 앞서 얘기한 ‘이미지’가 바뀌었다는 얘기다.

최근 기사들을 검색하면 바로 그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아빠차 그랜저가 ‘오빠차’로 바뀌었다는 제목이 쏟아졌다. 오빠차는 아마 인크레더블과 타블로가 부른 노래 ‘오빠 차 뽑았다 널, 데리러가~♬’ 가사에서 따온 얘기일거다. 어쨌든 젊어졌다는 얘기다.

기자의 지인이 몇 년 전 승용차를 알아봤다. 업무상 점잖은 자리에 자주 가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하는 직업이어서 중후한 세단을 원했다. 그런데 당시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네 나이에 그랜저는 너무 고루해 보이니까 K7을 사라”고 추천했단다. 사실 기자도 그렇게 추천했다. 그 지인이 어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때 그랜저 안 사길 잘했네, 이번에 바꿔야겠어”

돌아보면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사장차’였던 그랜저는 이미 4,5세대에서도 젊어지고 세련됐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오빠차’ 얘기는 3년전 출시된 6세대에서도 나왔다. 최근 공식판매에 들어간 6세대 부분변경 모델에서 그것이 더욱 구체화했을 뿐이다. 다만, 변화의 발걸음이 굉장히 크고 빨라졌다.

현대차측은 “그릴과 헤드램프가 일체형으로 된 전면부 디자인을 현대차 양산차로는 처음 적용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 제네바 모터쇼에서 콘셉트카 ‘르 필 루즈’를 공개할 때 일체형 전면부 디자인을 처음 선보인 바 있다. 과감한 새 시도는 보통 기성세대가 아니라 젊은세대 타겟 제품들이 주로 시도하는데 그랜저는 그런 변화를 택했다.

상업적으로는 어떨까. 새 그랜저는 사전계약 첫날 예약은 1만 7천대를 넘었다. 2016년 11월 출시한 6세대 그랜저 역대 최다 첫날 예약 기록을 깼다.

제품을 만들어 파는 기업들은 모두 “미래의 잠재고객을 어떻게 사로잡을지” 고민한다. 업종에 따라 그 고객은 10대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30대가 되기도 한다. 현대자동차는 그랜저를 통해 미래세대 고객의 마음을 확실하게 잡았다.

성공한 삶의 표본으로 어깨 힘 딱 주며 자랑하던 차, 웅장하고 거대한 초고급 세단에서, 콘셉트카에만 적용됐던 미래형 디자인을 과감하게 적용한 ‘오빠차’로의 변신 덕이다.

여전히 그랜저는 크고 좋은차다. 국내 완성차 브랜드 세단 중에서는 최고 수준의 네임밸류와 소비자 충성도를 가졌다는 점도 여전하다. 하지만 그 가치를 승계하면서도 폭넓은 변화로 소비자층을 넓혔다.

변해야 산다. 세상에, 그랜저도 저렇게 열심히 변하는데 혁신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남는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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