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만 아는’ 스마트폰 헐값 대방출?…타 통신사 ‘고객 뺏기’ 경쟁
불법보조금 근절, 장기소비자 실질적 혜택 마련 숙제
소비자 권익 실질적으로 증진하는 방안 마련해야

통신사 번호이동 소비자를 중심으로 다양한 할인 경쟁이 이뤄지는 가운데, 장기 가입자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진은 소비자들이 매장에서 최신형 스마트폰을 직접 사용해보는 장면으로, 기사 속 특정 내용과 관계없음. (사진=연합뉴스)
통신사 번호이동 소비자를 중심으로 다양한 할인 경쟁이 이뤄지는 가운데, 장기 가입자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진은 소비자들이 매장에서 최신형 스마트폰을 직접 사용해보는 장면으로, 기사 속 특정 내용과 관계없음. (사진=연합뉴스)

[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최근 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스마트폰 출고가 140만원 짜리를 42만원에 (구입)했다”는 댓글이 달렸다. 이 댓글을 게재한 네티즌은 “P모 사이트에서 좌표 받아 하루 날 잡아서 몇 곳 다녀보고 가장 저렴한 곳에서 구매하면 더 싸게 살 수 있다”고 자랑했다.

여기서 두가지 의문이 든다. 우선, 140만원짜리 스마트폰을 왜 누구는 제값 다 주고 사고, 누구는 42만원에 사는걸까? 두 번째로, 이런 큰 폭의 할인은 통신사 서비스를 오랫동안 꾸준히 사용해온 단골 소비자들에게 주어져야 하는 게 아닐까?

우선 대폭 할인된 가격 먼저 짚어보자. 댓글에 언급된 P사이트는 온라인에서 이미 유명한 곳이다. 이 사이트의 '구입개통수령' 게시판에는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구입한 후기와 관련 정보가 활발하게 공유된다. 휴대전화 판매업자가 광고글을 올리는 경우도 있으나 실제로 싸게 구매한 사람들의 후기가 많아 입소문이 많이 났다.

이곳에서는 매장명을 직접 언급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네티즌들은 초성만 언급하는 등 아는 사람들끼리만 알아보는 방식으로 관련 정보를 교환한다. 최근 이 사이트에는 “8만원 요금제로 6개월 사용하기로 하고 20만원을 받았다”는 글도 올라왔다.

해당 사이트에서는 ‘번이’ ‘현완’ ‘무부’ ‘빵집’ 같은 단어가 수시로 오간다. 처음 보는 사람은 글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번이는 ‘번호이동’의 약자고, 현완은 ‘현금완납’, 무부는 ‘(필수)부가서비스 없음’을 뜻한다. 빵집은 ‘할부원금 0원’이라는 의미다. 때로는 이런 단어들조차 ‘ㅂㅇ’ ‘ㅎㅇ’ ‘ㅁㅂ’ 등 초성만 쓰기도 한다. 통신사 SK를 ‘스크’로 바꿔 부르면서 ㅅㅋ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스마트폰 가격 차이는 실제 매우 크게 존재한다. 오프라인 휴대전화 판매점에서도 “번호이동으로 통신사를 변경하고 6개월간만 요금제를 유지하면 스마트폰을 공짜로 주고 ‘페이백’ 10만원을 주겠다”는 등의 호객행위가 이어진다. 휴대전화 매장이 밀집한 곳에서 이런 경우가 많다.

서울에서 휴대전화 판매점을 직접 운영해봤던 한 관계자는 <소비자경제>와의 통화에서 “통신사나 대리점에서 경쟁사에 판매 대수를 밀리지 않으려고 할인 마케팅을 벌이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가입자수가 적은 쪽에서 이런 전략을 많이 쓰고, 이 때문에 출고가격은 동등한데도 할인율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대다수의 소비자가 ‘다른 매장에 가봐도 똑같겠지’ 하는 마음에 대리점에서 액정필름 정도만 서비스로 받고 제값에 구매하지만, 밴드 등 온라인에서 발품을 팔면 가격할인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 “불법보조금 없애고 가계통신비 줄이기 위한 정책 필요”

이런 내용에 대해 업계에서 꾸준히 문제제기가 있었다. 소비자가 직접 발품 팔아 싼 구입처를 찾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할인 과정에서 지급되는 보조금이 불법인 경우도 있어서다. 

이에 대해 사단법인 민생경제정책연구소가 지난 9월 “새로운 단말기가 출시될 때마다 불법보조금 문제는 여전히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면서 문제를 제기하고 통신 3사를 방송통신위원회에 신고하며 단통법 위반행위를 단속하라고 촉구했다.

당시 연구소에서는, 지난 8월 21일 기준 현급완납 8만원에 갤럭시 노트10을 개통한 네티즌의 사례 등을 공개하면서 대책마련을 요구한 바 있다.

민생경제정책연구소 오승대 사무국장은 <소비자경제>와의 통화에서 “방통위에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는 회신을 받았으나 모니터링 결과와 대책에 대해서는 들은 바 없다”고 말하면서 “불법보조금 실태가 하나도 나아지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소는 ‘가계 통신비 인하’ 관점에서 이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 불법 보조금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합리적인 정책과 제도를 통해 가계 통신비를 줄여야 한다는 관점이다.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경쟁적인 할인에 나서는 이유는 고객을 더 확보하기 위해서다. 전국민 거의 모두가 이미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통신사 입장에서의 신규 매출은 ‘번호이동’ 뿐이다. 타 통신사 사용자를 자사 고객으로 유치하기 위해 번호이동을 중심으로 할인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

◇ 장기 소비자 혜택 상대적 미비 지적, 소비자 권익 증진 힘쓰자

문제는 이런 경쟁이 심해지면서 한 통신사를 오래 사용한 이른바 ‘충성고객’에 대한 혜택이나 서비스보다는 번호이동을 통한 ‘고객 뺏기 경쟁’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생긴다는 점이다.

새 스마트폰을 개통할 때 보통 ‘2년 약정’을 건다. 통신사들은 약정기간 2년을 채운 고객은 장기고객으로 분류한다. 통신사들은 이들에게 음성통화나 데이터를 제공한다. 통신사에 따라 세부 내용은 다소 차이가 있는데 대부분 큰 틀에서는 데이터 추가 제공 등으로 유사하다.

문제는 소비자들에게 쓸모가 있느냐다. 최근 스마트폰 요금제가 대부분 데이터 무제한에 음성통화 무료 기준으로 고액 요금제인 경우가 많아서 추가 데이터나 음성통화 제공이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무선 통신서비스 통계 현황에 따르면, 올 8월 기준 통신사 가입자의 81%가 LTE 고객이고 4%가 5G 고객이다. 통신사들은 대부분 LTE 요금제와 5G 요금제에 음성통화와 데이터를 많이 제공하고 있는 상태다. 데이터무제한 위주의 고가 요금제도 많다.

실제로 올해 8월 기준 번호이동자 숫자는 52만 3800여명으로 7월보다 6.7% 늘었다. 갤럭시 신제품이 연이어 출시되는 등 시장상황이 반영된 부분도 있지만 번호이동 관련 경쟁과 마케팅이 치열한 것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올해 6월 통신사를 변경하고 최신형 스마트폰을 구입한 한 소비자는 “통신사를 길게 유지해도 별다른 혜택이 없는 것 같아서 2~3년에 한번씩 번호이동을 한다. 가족할인으로 묶인 경우가 아니라면 번호이동이 훨씬 이익”이라고 말했다.

이 소비자의 배우자는 2011년 이후 8년 동안 한 통신사를 이용하고 있는데 “습관적으로 이용할 뿐, 장기 이용에 따른 혜택을 피부로 느끼지는 못한다. 멤버십 서비스가 아까워 번호이동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해봤는데, 다른 통신사를 가도 고액요금제를 이용하면 비슷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이달 중순 통신3사 CEO와의 오찬 간담회에서 "최근 통신시장이 혼탁해졌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소모적인 마케팅 과열경쟁을 지양하고 요금과 서비스 경쟁에 매진하는 등 이용자 권익 증진을 위해 힘써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통신사와 판매점이 고객 유치를 위한 과도한 경쟁에만 몰두하지 말고, 가계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서비스 또는 가격 정책을 내놓기를 소비자들은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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