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최근 싸이월드가 문 닫을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소비자들이 혼란에 빠졌다.

기자도 ‘싸이월드’ 세대다. 다행히 그곳에 업로드했던 사진과 방명록은 이미 백업해 둔 상태여서 그 시절 추억을 모두 잃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쓸쓸하고 서운하다. ‘데이터’와 ‘기억’만 남았을 뿐, 친구들과 방명록 남기고 파도 타며 놀던 ‘공간’은 이제 없어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15일 오후 현재, 접속이 복구되는 등 일부 서비스가 개시됐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

내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던 대문 스킨과 미니미, 고르고 또 골라 신중하게 올려둔 노래들이 모두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친구들이 남겨놨던 일촌평도 며칠 동안 볼 수 없었다. 내 사진은 외장하드에 넣어뒀지만 싸이에 접속하지 않으면 친구들이 올려둔 사진을 볼 방법도 없다. 지금보다 덜 노련했고 아는 것이 적었던 시절, 하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씩씩하고 튼튼했던 시절, 그 시절의 나를 고스란히 기억할 여러 장치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렇게 비유하면 어떨까. 고향집 사진은 찍어놨고, 어릴 때 옆집 살던 친구와도 연락은 되는데, 그 집과 골목은 모두 재개발되어 사라진 느낌과 비슷한 것 같다.

물론 세상은 늘 변한다. 사라지고 또 새로 생긴다. 그게 자연스런 이치다. 하지만 무턱대고 아무렇게나 없애고 부술 순 없다. 정해진 절차와 합당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2004년에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지인이 있다. 그 지인의 가족들이 고인의 싸이월드 계정을 대신 운영했었다. 2000년대 후반 이후 싸이월드 자체가 예전만 못했으므로 최근까지 활발하게 운영되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그 지인의 생전 모습들, 그리고 지인의 주변 사람들이 그곳에 가끔 올려두었던 추모 메시지들을 이제는 볼 방법이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잊혀질 권리>라는 말이 있다. 만일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자신의 정보를 지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바람이 실현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다. 유럽에서는 실제 이 문제와 관련한 소송이 제기되어 판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스페인의 한 변호사가 과거 자신의 신문기사를 지워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현지 법원은 ‘신문기사 원문을 삭제하지는 않지만, 구글 검색화면에서는 링크를 지우라’고 판결했다.

혹시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인터넷에 남은 흔적이 지워지지 않기를 원한다면 말이다. 그 사람이 이미 세상을 떠나 인터넷에만 흔적이 남은 경우는 사실 매우 극단적인 예다. 하지만 자신의 흔적이 웹상의 그 자리에 고스란히 남아있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당신에게도 그런 인터넷 공간이 있지 않은가? 사연이 서린 공간 말이다 

싸이월드를 이용했던 소비자들은 “사진을 백업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중이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싸이월드측은 도메인 계약을 연장하는 등 관련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이번 사태가 우리에게 던진 물음이다. ‘이 공간의 주인이 누구냐’ 그리고 ‘이 공간에 쌓여있는 얘깃거리들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다뤄야 하는냐’라는 물음을 싸이는 던졌다.

싸이월드 대표는 프리챌 출신 사업가 전제완씨다. 그가 운영하는 회사가 자금난에 시달려 싸이월드가 문 닫을 위기에 처했다. 자금난에 시달린 근본적인 이유는 이렇다. 2000년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모바일로의 전환이 늦었고, 페북이나 트위터 등 글로벌 SNS에 밀렸기 때문이다. 이건 팩트다. 하지만 그건 기업의 논리고 자본의 논리다.

그 이면에 우리가 진짜로 주목해야 할 문제가 있다. 소비자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던 공간, 그 공간에 자발적으로 남겨놓은 삶의 흔적들을 우리 사회가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냐다. 사이트 운영이 어려워지면 그냥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는 것들일까? 그곳에서 맺은 사회적 ‘관계’들을 잘 이어가는 것은 그저 온전히 개인만의 몫일까?

‘사진이야 다운 받아놓으면 그만 아니냐?’고 쉽게 생각하지 말자. 중장년층 세대들이야 인터넷이 ‘원래 없었는데 90년대 후반에 생겨서 이제는 편하게 쓰는 도구’지만 젊은 세대들은 다르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인터넷이 있었다. 청년들에게 인터넷은 중장년층 세대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고향집 앞 골목길이나 놀이터, 학교 앞 문방구나 오락실만큼 매우 친숙하고 자연스러운 공간이다.

인터넷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지만, 이제 인류에게는 무척이나 밀접한 ‘공간’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인터넷을 ‘가상의 공간’으로 불렀지만 지금은 아니다.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커뮤니티에서 맺는 인연이 동네 친구만큼 소중하다.

따지고 보면, 사진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들의 요구는 “급하니까 최소한 사진만이라도 백업하게 해달라”는 거다. 그들의 진짜 속마음은 “싸이월드를 이렇게 보내는 게 너무 속상하다”고 외치는 중이다.

2019년 소비자들은 ‘웹상의 소중한 공간이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다’는 문제와 마주했다. 사실 과거에도 이런 일들은 있었다. 서비스를 종료하는 게임이나 포털이 예전에도 있었다. 실제로 국내에서 사라진 사이트가 이미 많다. 하지만 이번에는 규모가 매우 크고 사용도가 높았던 사이트에서 이슈가 생겼다. 어떻게 보면 관련 문제를 정식으로 논의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생겼을 때 그 공간에서 일어났던 일들과 거기서 맺었던 사회적인 관계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필요해졌다. 데이터를 백업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데이터의 이면에 담긴 여러 사연들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를 논해야 한다.

싸이월드가 2019년의 사회와 소비자에게 내놓은 숙제다. 

저작권자 © 소비자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