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과 의리의 리더십, 적극적인 M&A에도 '사람'먼저 챙겨
소비자와 고객은 수익기반 아니라 생존기반
세 아들에게 경영권 승계, '왕자의 난' 피할 수 있을까

김승연 회장은 30세에 그룹 총수가 되어 굵직한 인수합병 중심으로 기업을 키워왔다. 사진은 지난 2017년 12월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비즈니스포럼에 참석했던 모습 (사진=연합뉴스)
김승연 회장은 30세에 그룹 총수가 되어 굵직한 인수합병 중심으로 기업을 키워왔다. 사진은 지난 2017년 12월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비즈니스포럼에 참석했던 모습 (사진=연합뉴스)

[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김승연 회장은 서른살에 경영 최일선에 뛰어들어 승승장구한 CEO다. 그는 의리와 신용을 경영 모토로 삼아 적극적인 M&A 와중에도 직원들의 일자리를 보장해왔다. ‘소비자를 생존기반으로 삼아 100조 매출을 달성하겠다’는 새로운 약속도 했다. 그의 다짐은 실현될 수 있을까?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리더십과 경영스타일 얘기를 하려면 1981년으로 돌아가서 시간 순서대로 짚어보는 게 좋다. 1962년생인 김승연 회장은 한국 나이 기준 30살에 부친 고 김종희 한국화약 회장이 갑작스레 별세해 회사를 물려받았다.

현재 LG 구광모 회장이 한국 나이로 42세인데 재계에서 가장 젊은 CEO라는 점을 감안하면, 서른살에 기업을 이끌게 된 김승연 회장이 그 당시 어떤 리더십으로 회사를 키워왔는지 주목해보게 된다.

◇ 서른살 초보 CEO, 적극적인 인수합병으로 몸집 키우다

김승연 회장은 적극적인 인수합병을 통한 몸집 불리기 전략으로 그룹을 키웠다. 취임 1년 만에 한양화학(한화케미칼)과 한국다우케미칼을 인수해 석유화학사업에 진출했다. 이듬해에는 미국 정유회사 유니언오일로부터 경인에너지 지분을 넘겨 받았다. 이것은 한화에너지의 시초다.

1985년에는 현재 한화호텔&리조트 전신 정아그룹을 인수했고 1986년에는 한화갤러리아의 전신인 한양유통을 계열사에 편입시켰다. 이 시즌에는 빙그레 이글스 야구단도 창단했다. 이 구단이 지금의 한화이글스다.

1990년에는 경향신문을 인수했고, 이후 90년대에는 해외진출에도 눈을 돌렸다. 1993년 아테네은행을 인수하고, 1996년에는 헝가리에서도 은행을 사들였다. 은행들은 IMF 외환위기때 구조조정을 거쳤다.

1990년대 중반 IMF 외환 위기로 기업 구조조정이 진행될 때는 한화 바스프우레탄, 한화에너지, 한화자동차부품 등의 회사를 매각했다. 당시 유화사업 맞교환 등의 다양한 구조조정으로 외신에서 ‘구조조정의 마술사’란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쉽게 말하면 ‘사고파는데 능한’ 스타일이다.

2000년대에도 몸집 불리기는 계속됐다. 동양백화점 인수와 2002년 대한생명보험인수가 이어졌고 이 회사가 각각 한화타임월드와 한화생명이 됐다. 2002년 6월에는 푸르덴셜투자증권과 자산운용을 인수했다.

한화그룹의 미래전략사업 중 하나가 바로 태양광 사업인데, 이 사업 역시 중국 솔라펀파워홀딩스 지분을 인수한 것이다. 삼성그룹 방산·화학 계열사(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테크윈, 한화토탈 등)도 인수했다. 당시 김 회장은 “한화를 한국의 록히드마틴으로 키우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최근 한화그룹을 둘러싼 핫이슈 중 하나도 바로 인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달 초 미국 항공 엔진 부품 업체 이닥(EDAC)을 인수했다. 투자 금액은 3억 달러로 우리 돈 기준 3500억원 규모다.

한화는 현재 인수합병시장 최대 매물로 꼽히는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의 유력 후보군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지난 9월 3일 오후 마감된 예비입찰에는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여전히 인수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린다.

앞서 한화는 롯데카드 인수전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가 포기한 바 있는데, 재계에서는 이를 두고 “1조원 규모의 롯데카드 인수를 포기하고 그 돈을 실탄 삼아 아시아나 인수에 나설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한화는 계열사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항공기 엔진과 부품을 만들며 10대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항공 관련 산업을 영위하고 있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매콜리프 버지니아 주지사를 만나 양측의 경제 및 외교 협력에 대해 논의했다.
김승연 회장의 리더십은 신의와 의리로 요약된다. 사진은 김 회장이 매콜리프 버지니아 주지사와 만나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

◇ 신의와 의리가 돈 보다 중요한 CEO

기업의 인수합병이라면 흔히 ‘과감한 구조조정’을 먼저 떠올린다. 이익에 기여하지 못하는 조직이나 사람은 곧바로 잘라내는 모습이 상상된다. 하지만 김승연 회장 스타일은 그것과 다르다.

재계에서 김승연 회장을 일컫는 키워드는 ‘의리’다. 김승연 회장은 매년 신년사에서 ‘신의’ ‘신용’ 그리고 ‘의리’같은 단어들을 강조한다.

말로만 강조하는 게 아니다. 기업을 인수합병할 때도 그랬다. 적잖은 기업들이 회사를 매각하고 이익을 남기는데만 관심을 두었으나 김 회장은 회사를 매각하거나 인수할 때 ‘고용승계’를 중요하게 여겼다.

한가지 예를 살펴보자. 1997년 자회사 한화에너지 지분을 현대정유에 매각한 적이 있다. 당시 김 회장은 매각 대금을 줄이더라도 직원을 해고하지 말고 100% 고용승계를 지켜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직원들은 고용승계가 안정적으로 이뤄졌다.

삼성으로부터 방위사업 및 석유화학 부문을 인수할때도 한화는 삼성 직원들을 안정적으로 고용승계했다. 이런 역사 덕분인지,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들이 사석에서 ‘한화에 매각되면 구조조정이 없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나눴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해외 공사현장 직원들이 생선회를 먹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광어회 600인분을 비행기로 공수했다거나, 호텔이 리모델링으로 3개월간 문을 닫을 때 공사기간 동안 직원 모두에게 유급휴가를 줬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국내 유명 포털사이트 블로그에는 “김보성도 울고 갈 의리로 인수합병”이라는 제목의 한화그룹 관련 경제뉴스도 등록되어 있다. 김보성은 ‘으리’라는 유행어로 유명한 배우로 연예가의 대표적인 ‘의리인’으로 통한다.

김 회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도 “장수는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지만 기업은 신용을 걸어야 합니다. 이익을 남기기에 앞서 고객과 의리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 소비자는 수익기반이 아니라 생존기반

의리의 김회장이 최근 내세우는 또 하나의 가치가 있다. 바로 ‘소비자’다. 김승연회장은 10월 10일 그룹 창립 67주년 기념사에서 “새 시대로 나아갈 발상과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고 말하면서 “초심의 도전과 혁신” 그리고 “소비자”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김 회장은 “한화의 존재 이유와 이윤 추구 방식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소비자와 고객, 협력업체는 우리의 수익기반이 아닌 생존기반”이라고 강조했다.

내일을 위한 투자와 고용계획도 이와 같은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하며 이를 통해 사회 구성원 공동의 번영을 이루자는 것이 김 회장의 주문이다. 실제로 한화그룹은 창립 67주년을 맞아 한 달동안 전국에서 대규모 사회공헌 활동을 진행한다.

사실 모든 기업과 CEO들이 소비자에 관한 좋은 얘기들을 많이 한다.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입모아 얘기한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실제로 그렇게 느끼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김승연 회장은 실제 소비자들과 소통하고 그들에게 귀를 열었던 사례가 있다.

한화그룹은 화약이나 방위산업 등을 주로 진행하느라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소비재 생산은 드물다. 하지만 한화가 운영하는 프로야구단 한화이글스에서 김회장이 직접 소비자의 의견을 중시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김승연 회장은 한화이글스 구단주다. 1999년 한화이글스가 우승했을 때, 선수들과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관중석에서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한화이글스 프랜차이즈 출신 코치 아내가 급성 백혈병으로 입원하자 수술비를 지원하고 직접 문병도 갔다.

한화이글스가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일부 팬들이 온라인에서 특정인을 거론하며 감독으로 선임하라는 여론을 조성한 바 있다. 당시 팬들의 여론을 감안해 직접 감독 영입에 나선 것이 김승연 회장이었다.

현역 스타플레이어 김태균 선수가 일본에 진출해 있을 때, 잠실 야구장을 찾아 선수단을 격려한 다음 팬들을 향해 “태균이 꼭 잡아올게”라고 약속하며 주먹을 불끈 쥐어보인 다음 이듬해 정말로 한화이글스에 복귀시킨 사례도 있다.

재계 및 스포츠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김승연 회장은 야구에 대한 조예 자체가 깊지는 않다고 한다. 하지만 야구단에 대한 애정이 깊고, 팬들과 소통하려는 의지는 매우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회장과 소비자가 직접 소통한 사례들이다. 

지난해 10월,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야구게임을 관람하는 김승연 회장과 부인 서영민씨 모습. 김승연 회장은 야구팬 소비자들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인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0월,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야구게임을 관람하는 김승연 회장과 부인 서영민씨 모습. 김승연 회장은 야구팬 소비자들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인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연합뉴스)

◇ 세 아들에게 경영권 승계, ‘왕자의 난’ 없이 조용히 이뤄질까

김승연 회장은 한화그룹 67주년을 맞아 “2023년까지 매출 100조원 달성”이라는 청사진을 내놨다. 1981년 회사를 물려받았을 때 연간 매출 1조원 규모였음을 감안하면 수치상 100배의 성장세다.

실제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 체제 아래서 성장을 거듭해왔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방위산업과 태양광사업 등 새롭게 판을 짠 사업구조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는 일이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출범 후 지배구조 변경 등을 통해 방산 사업에 힘을 주는 모양새다. 태양광사업도 김 회장의 장남 김동관 전무가 각별히 살피고 있다.

김승연 회장의 또 다른 숙제는 경영권 승계 문제다. 김 회장은 아들이 셋이다. 장남은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차남은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 삼남은 김동선 전 한화건설 차장이다.

재계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장남에게 태양광과 방위산업, 차남에게 금융, 삼남에게는 건설 및 백화점 사업을 물려줄 것으로 관측되어 왔다.

(왼쪽부터)김승연  회장, 1남 동관 전무, 2남 동원 상무, 3남 동선 씨. (사진=한화)
(왼쪽부터)김승연 회장, 장남 동장관 전무, 차남 동원 상무, 삼남 동선 씨. (사진=한화)

일각에서는 한화그룹이 롯데카드 인수전에서 발을 뺀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차남의 금융사업 규모가 커지면, 장남의 사업에 비해 힘이 더 실리게 되어 후계구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해석이다.

재계는 한화가 면세점 사업에서 철수한 것이 삼남 김동선 전 차장 문제와 얽혀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김 전 차장은 2017년 술집 폭행사건으로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린 후 계열사에서 물러난 바 있다.

한화그룹의 후계구도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가 있다. 김승연 회장 본인이 동생인 김호연 빙그레 회장과 치열한 다툼을 벌인 적이 있어서다. 선친 김종희 창업주가 갑자기 타계하면서 상속에 관한 명확한 유언이 없어 경영분쟁이 벌어진 바 있다.

김호연 회장이 김승연 회장을 상대로 재산권 분할 소송을 제기했고 두 사람은 수년간 여러차례 법정다툼을 벌인 바 있다. 이후 할머니 장례식때 만나 재산분할에 극적으로 합의하고 상호 소송을 모두 취하했다. 현재 두 사람은 공식적으로 화해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한화그룹은 생활용품 등 소비재 제품 생산이 드물어 소비자들의 일상 속 뉴스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러나 화약과 방위산업 등 국가 기반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업을 다수 영위하고 있고, 태양광 등 미래 필수사업에도 주력하는 기업이다.

김승연 회장은 30세에 회사를 맡아 38년 동안 기업의 몸집을 공격적으로 키우면서도 신의와 의리를 앞세워 온 경영자다. 그가 자신의 약속대로 소비자와 고객을 생존기반으로 삼으며 2023년 매출 100조 목표를 지켜낼지, 그리고 자신이 키워온 거대 기업을 세 아들에게 뒷말없이 잘 승계할 것인지 재계의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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