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최근 한 재계 인사가 사석에서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평소 국정감사를 앞두고는 적어도 한 달 길게는 두 달 전부터 의원실에서 요구하는 자료를 만드느라 바빴는데, 올해는 정치권이 조국 이슈에 신경을 쓰느라 그런 요구가 상대적으로 덜한 것 같다”는 얘기였다. 해당 인물의 개인적인 견해였으나, 최근 조국 장관을 둘러싸고 전해지는 이슈의 규모를 보면 왠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지금은 여의도를 떠난 한 전직 국회의원이, 과거 현역 의원 시절 기자에게 “나쁜 인지도라도 없는 것 보다는 낫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착한 것 같은데 누군지 잘 모르는 사람보다는 차라리 '나쁜놈’인 게 (정치인에게는) 더 나을 수도 있다”고 했다. 정치적 성공 확률을 높이려면 일단 인지도가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18대 대선이 끝난 직후, ‘합리적 성향의 보수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 정치권 인사에게 “대선 득표율이 51:49 정도로 나뉜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았다. 당시 그는 “성향이 나뉘는 국민들은 전 세계 어디에나 있다. 공고한 지지자들이 비슷한 수준으로 나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고 건강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사람들이 스스로 정립한 정치철학과 사상이념 등을 바탕으로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열렬히 지지하는 것은 건강한 정치활동이라는 얘기였다. 그는 결국 국회에 입성했고, 현재 현역이다.

국회의원을 두고 ‘민의를 대변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국민의 뜻을 바탕으로 활동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국민은 모두 소비자다. 경제적으로 부유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어떤 사안에 대해 보수적인 관점을 가졌든 아니면 진보적인 관점을 가졌든 간에 모든 국민은 소비자다. 그렇다면 “국회의원은 소비자의 뜻을 대변해야 한다”고 바꿔 말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국정감사가 한창이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일제히 여러 시선의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둘러싼 날 선 공방을 벌인다. 자신이 맡은 분야(위원회)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나, 꼼꼼한 감시가 요구된다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국정감사에 깊은 관심을 가질까? 밤새 개표방송을 맘졸이며 보던 사람들도 국정감사 소식을 꼼꼼하게 찾아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정치인들이 소비자의 삶을 나아지게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일하고 있다”는 믿음을 갖지 못해서 그런 것일 수 있다.

기자 생활을 하며 다양한 분야의 많은 사람을 만났다. 대통령 후보를 포함해 현역 국회의원들도 꽤 많이 만났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사례처럼 “국회의원은 인지도가 중요하다”라고 직접적으로 얘기한 정치인은 많지 않았다. 그 사람 한명 뿐이었다.

하지만 정치인과 함께 일하거나 그들 주변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그와 비슷한 얘기를 많이 했다. “표가 되지 않는 일에는 관심이 적다”거나 “지지자들이 좋아할 만한 얘기를 골라서 한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경우는 상대적으로 많았다.

여의도 생활을 오래 했던 한 인사는 “정치인 중에서 정치 9단 또는 노련한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은, ‘자신의 말이나 행동으로 지지자들을 빨리 결집시키는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여야를 막론하고’라는 수사를 많이들 사용하지만, 결국 소비자의 삶이라는 큰 가치보다는 지지자들의 평가, 또는 인지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현실을 꼬집은 얘기다.

국정감사 관련 문의가 상대적으로 덜한 이유가 조국 장관 관련 이슈가 뜨겁기 때문인 것 같다는 진단, 정치인들은 결국 지지자들의 선택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현실적 이유, 51:49로 팽팽히 나뉘는 정치적인 성향들...이런 배경이 결국 “정치가 정말 소비자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다시 한번 말하면, 국회는 민의를 대변하는 기관이다. 국민은 정치적 성향과 경제적 환경에 관계 없이 모두 소비자다. 어느 정당을 지지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소비자의 삶이 더 나아져야 한다는 문제가 국민에게는 더 중요하다. 2019년 국정감사에서는 그런 주제를 더 많이 논의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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