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기업의 사회적 가치, 과거의 사회 공헌 활동과는 근본부터 달라
경영 이익 쪼개서 나눠주는 ‘자선사업’에서 적극적으로 벗어나야
사회적 가치가 곧 경제 가치인 시대, 착한 일 잘 하면서 돈도 버는 기업 될까?

서울 종로구 SK본사 건물.(사진=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SK본사 건물.(사진=연합뉴스)

[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SK그룹의 최근 화두는 ‘사회적 가치’다. 기업의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에 사회적 가치 비율 높게 책정해 적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 많은 기업들이 사회공헌 활동을 내세운다. 그 와중에 SK는 자신들의 행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흐름일까?

SK그룹과 최태원 회장에 대한 최근 뉴스를 보면 대부분 ‘사회적 가치’라는 단어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최태원 회장의 최근 활동 소식도, 기업 의사결정기구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 관련 뉴스도 대부분 그와 관련된 주제다.

실제로 최 회장은 꾸준히 사회적 가치 전도사를 자처해왔다. 그는 틈만 나면 “사회적 가치가 포함된 경제적 가치는 선택이 아니라 기업 생존의 필수 요소”라고 강조한다. “제품과 서비스에 사회적 가치를 더하지 않고는 생존이 어려운 시대”라고도 말한다.

사실 기업의 사회공헌은 새롭거나 신선한 뉴스가 아니다. 어지간한 기업들은 하나 같이 사회공헌 관련 부서를 따로 두고 다양한 활동을 벌인다. 지금 당장 뉴스포털에 ‘사회공헌’ ‘지원사업’같은 단어만 검색해도 수천 건 이상의 기사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와중에서 SK가 굳이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 ‘착한 일’하는 데 ‘돈’ 쓰지 말고, 착한 일로 돈을 번다?

SK그룹은 2일 오전 종로 SK서린빌딩 수펙스홀에서 ‘SK의 사회적 가치 경영’이라는 주제로 미디어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SK수펙스추구협의회 정현천 SV추진팀장은 “앞으로 추구해야 할 기업의 사회적 가치는 기존 기업들이 진행하던 ‘사회공헌’과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이 있다”고 소개했다.

SK PR팀 하석 상무도 “사회적 가치는 SK그룹의 핵심 가치이고,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회공헌들과 SK가 말하는 사회적 가치 사이에는 차별점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SK측의 설명을 정리하면 이렇다. 기존 사회공헌은 기업 이익 일부를 떼어 자선활동 등에 사용하고 그것을 ‘비용’으로 처리했다. 인력이나 시간을 투자해 봉사활동 등에 투입하는 형식을 취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내가 많이 가졌으니까, 어려운 사람을 위해 은혜롭게 나눠준다’는 관점이다.

하지만 최근 SK그룹이 강조하는 ‘사회적 가치’는 다르다. 인류가 마주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고, 그 과정에서 과거에는 없었던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찾자는 취지다.

쉽게 말하면, 과거에는 ‘착한 일’을 하기 위해서 ‘일’ 하는데 필요한 비용이나 시간을 일부 나눠서 쪼개 썼다. 하지만 이제는 착한 일도 하고, 그 과정이나 결과를 통해 경제적인 가치도 추구하겠다는 의미다.

◇ 2019년의 사회 공헌, 과거의 사회 공헌과는 분명히 다르다

신선한 접근이지만 사실 완전히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과거의 기업에게도 그런 사례는 있었다. 사회가 마주한 숙제, 이를테면 배고픔이나 사회적 인프라 확보 등의 숙제를 해결하면서 그 과정을 기업화에 성공한 사례들이다. 먹거리를 대량생산하는 일, 집을 짓는 일 등도 과거에는 사회적인 숙제를 실천한 일이다.

이제 그 경향이 바뀌었다. 디지털 기술과 IT문화로 인해 세상이 바뀌었다. 인류는 하루생활권으로 묶였다. 정현천 팀장은 이에 대해 “페이스북이나 아마존, 애플 최근의 기업들은 ‘배고픔’ 등 과거의 숙제 대신 새로운 사회문제와 니즈에 대해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이라고 정의했다.

기업이 생존하고 발전하려면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굉장히 예민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뒤처지지 않는다. 과거 기업은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고 이익을 만들어 사회를 살찌우고 주주에게 배당하면서 기업의 책임을 다했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 생긴 사회적인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기업의 책임이라는 시선이다.

예전에는 사회적 과제를 인식하고 문제를 느끼는 사람,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고민을 해결하며 그 과정을 기업화하는 사람이 모두 달랐다. 아날로그 시대여서,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거나 소통하는 과정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기업화했고 왓슨이 증기기관을 구체화했지만, 이들은 사실 첫 발명자가 아니다. 기업화한 사람들이다. 솔루션을 제시한 사람들이 후대까지 기억되고 알려져 있다. 그걸 발명했거나 문제를 의식한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앞에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 사이클이 빠르다. 문제가 있으면 누군가 바로 해결해야 되고 선제적으로 바로 해결하지 않으면 뒤로 쳐진다. SK는 이 지점에서 사회적 가치를 통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고 한다.

정현천 팀장은 “사회적 가치를 얘기하는 것이 물론 좋은 일을 해보자는 취지지만 그것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이제는 기업의 이해관계자가 단순히 주주와 소비자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고, 거기에 좋은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관점으로 넓게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현실적 숙제, “예산과 자원을 어디에 먼저 투입할 것인가?”

정리하면, 회사의 예산과 자원을 투입하는데 있어 의사결정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다. SK는 자신들의 사회적 가치 실현이 이 지점에서 기존과 다르다고 말한다.

물론 모든 사업에는 배당되는 예산이 있고 그에 따른 효과 또는 효율을 계산해야 한다. 착한 일을 하면서 돈도 버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풀기 어려운 숙제다. 이 지점에서 ‘사회공헌 비용을 쓴다는 관점 대신 솔루션 개발 및 전파를 통해 미래 가능성을 찾는다는 관점으로 접근하자’는 것이 SK의 제안이다.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사례들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제작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발생 하는 폐수를 줄이기 위해 역량을 집중했다. 그 결과 새로운 솔루션을 도입해 매일 발생하는 폐수 양을 줄이고 결과적으로 처리 비용도 절감하는 효과를 얻었다.

해외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유통기업 월마트는 대량생산과 유통 과정을 통해 대규모의 자원파괴를 유발한다고 비판을 많이 받아왔다. 하지만 현재는 2030년까지 1기가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기가톤’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이를 통해 기업 이미지를 개선할 뿐 아니라 유통비용 절감 등을 통해 경제적 효과도 얻고 있다. 

공정무역에 관심 갖는 소비자, 탄소발생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겠다고 나서는 소비자들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 SK는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

SK수펙스추구협의회 강동수 SV추진팀 담당은 “그룹 내 16개사에 사회적 가치를 전담하는 조직들이 모두 생겼고 규모가 큰 회사는 30명, 작은 회사도 5명 이상 정도의 인력이 투입됐다”고 말했다. 정현천 SV추진팀장은 “직접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전담하는 조직 크기만 따져보면 그 정도 규모지만, 일반 사업 부서나 스태프 부서에서도 업무 비중의 상당 부분이 이 곳에 투입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SK수펙스추구협의회 정현천 SV추진팀장이, 서울 종로 SK서린빌딩에서 사회적 가치 추구 활동에 대한 배경과 향후 전망을 밝히는 모습
SK수펙스추구협의회 정현천 SV추진팀장이, 서울 종로 SK서린빌딩에서 사회적 가치 추구 활동에 대한 배경과 향후 전망을 밝히는 모습

 

◇ 좋은 영향과 긍정적인 변화, 꾸준히 지속될까?

<소비자경제>는 미디어포럼에 직접 참여해 ‘실제로 조직 구성원들이 사회적 가치 실현이라는 비전을 어느 정도나 공유하고 있는지’ ‘사회적 가치 추구를 내세우는 최태원 회장이 직원들에게 최근 강조한 가치는 무엇인지’ 질문했다.

SK는 이에 대해 “모든 조직이 이런 활동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고, 자신이 맡은 업무가 기존 일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처리하면서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 되게 만들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최태원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행복’을 화두로 제시한 바 있고, 직원들과 행복토크를 진행 중인데, 그 자리에서도 늘 사회적 가치를 통한 행복을 강조한다”고 밝혔다.

미디어포럼에서는 ‘기업들이 각자도생을 위해 무한경쟁에 나서는 시대에서,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해 다양한 협의를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느냐’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실제로 SK그룹 내 일부 계열사가 경쟁사와 치열한 소송전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상대보다 우위에 서려는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는 경우도 많지만,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 선의의 경쟁도 존재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사회적 가치 실현 움직임이 선의의 경쟁과 연결되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좋은 일’을 하겠다고 홍보하는 기업은 많다. 문제는 그 활동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꾸준히 미쳐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느냐다. SK그룹의 행보가 그런 경향에 힘을 실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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