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자율주행차 시대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 밝혀
자율주행업체 앱티브와 합작회사 설립하고 본격 개발 나설 계획
자동차가 스스로 하늘 날고, 운전자는 승객처럼 즐기는 시대 본격화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현대차그룹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수소전기차 넥쏘 앞에서 포즈를 취한 정의선 부회장과, 자율주행 전문기업 오로라 그리스 엄슨 사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자율주행차 시대에 관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사진은 지난해 수소전기차 넥쏘 앞에서 포즈를 취한 정의선 부회장과, 자율주행 전문기업 오로라 그리스 엄슨 사장 (사진=연합뉴스)

[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이 자율주행차 시대에 대한 청사진을 밝혔다. 자동차가 스스로 날아다니는 시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현대차그룹은 세계적인 자율주행 SW기업과 합작회사 설립 계약도 맺었다. 자동차가 세상의 빛을 본지 140여년 만에, 인류는 운전자가 ‘승객’으로 바뀌는 시대를 마주하고 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23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에서 특파원 간담회를 열고 ‘5년 내 자율주행차 본격 양산’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정 수석부회장은 “자율주행 기술을 오는 2022년말 완성차에 장착해 시범 운행에 돌입하고 2024년에는 본격적으로 양산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5년 후에는 자동차가 스스로 주행하는 시대가 온다는 얘기다.

‘자율 주행 자동차’는 운전자의 도움 없이 자동으로 운행하는 차를 뜻한다. 업계와 소비자들의 기대치는 높다. 차량 통행이 적고 폭이 넓은 도로를 직선으로 오랫동안 혼자 주행한다고 해서 그 기대치를 모두 만족시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운전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상상한다.

기업들의 눈높이도 거기에 맞춰져 있다. 완성차 기업뿐만 아니라 굴지의 IT 및 통신 기업들이 자율주행차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들 역시 장애물을 피하고 목적지에 가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다. 꽉 막힌 도로에서 벗어나 하늘을 나는 차, 운전자를 집 앞에 내려주고 스스로 주차장에 찾아가는 차, 주차된 상태에서 스스로 상태를 점검하면서 스스로 연료를 보충하거나 정비하는 차까지 연구 중이다.

◇ 자율주행 시대 운전자? "기차나 비행기의 승객처럼 즐길 것"

이날 정 수석부회장은 "실제로 소비자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는 수준이라면, 보수적으로 보면 2030년쯤 자율주행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도와 같은 시장은 조금 느릴 것이고, 미 캘리포니아 같은 곳은 빠른데 우리나라는 중간쯤 될 것"이라는 분석도 덧붙였다.

자율주행 시스템을 위해서는 많은 양의 전력이 필요하므로 현재의 배터리 전기차보다는 수소전기차가 자율주행에 적격일 수 있다다. 실제로 그는 “"장거리를 운행할 수 있는 수소전기차는 자율주행에 적격인 플랫폼”이라며 “자율주행차와 수소전기차는 서로 맞물려 개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현대자동차는 수소전기차 시장에서 꾸준히 성과를 내고 있다.

그의 발언 중 흥미로운 지점은 자율주행 시대에는 운전자가 어떤 모습일지에 관해서 얘기할 때였다. 정 수석부회장은 “기차나 비행기에서 승객들이 무엇을 하는지 생각해보면 좋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그는 “(전면 유리) 모니터보다 증강현실을 이용 하는게 더 편한 방법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통적인 개념의 운전자(Driver)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율주행을 즐긴다는 청사진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드라이빙 에어플라인’이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비행 자동차가 레벨5 자율주행차보다 먼저 상용화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레벨5는 운전자의 개입 전혀 없이 AI만으로 완전히 자율주행하는 단계를 뜻한다.

이날 그는 "성능뿐만 아니라 원가 측면에서도 만족스러워야 한다"면서 "우리가 개발한 소프트웨어 솔루션이 뛰어나다면 다른 완성차 메이커들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보였다. 자동차 제품과 기술서비스를 융합한 회사로 도약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현대자동차는 그 동안 자율주행차 관련 눈에 띄는 성과들을 내왔다. 2017년 CES에서 아이오닉 기반의 자율주행차가 라스베이거스 도심 주야 자율주행 시연에 성공하면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지난해 2월에는 넥쏘와 제네시스 G80에 자율주행 4단계 수준의 기술들을 탑재, 서울-평창 간 190km 고속도로에서 성공리에 자율주행을 시연했다. 8월에는 화물 운송용 대형 트레일러로 의왕-인천간 약 40km 구간 자율주행 기술 구현에 성공하며 관련 기술을 선보인 바 있다.

크로아티아 전기차 업체 리막 오토모빌리와 협력 계약을 체결한 현대차그룹 정의선 수석부회장.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현대자동차는 글로벌 기업들과 폭넓은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크로아티아 전기차 업체 리막 오토모빌리와 협력 계약을 체결하던 당시의 모습.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 현대차, 세계 최고 수준 자율주행 기술 회사와 합작회사 설립

정의선이 뉴욕을 찾은 이유는 자율주행 업체 앱티브(ATIV)와의 합작회사 설립 본계약을 위해서다. 현대차그룹과 앱티브는 40억 달러(약 4조7천800억원) 가치의 합작법인(조인트벤처)를 세우고 지분을 50%씩 나눠 갖는다.

앱티브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력을 보유한 업체다. 인지시스템,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컴퓨팅 플랫폼, 데이터 및 배전 등 다양한 모빌리티 솔루션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 2015년과 2017년 자율주행 유망 스타트업으로 꼽히던 ‘오토마티카와 ‘누토노미’를 각각 인수해 자율주행 개발 역량을 꾸준히 끌어올렸다.

현재 보스톤의 자율주행사업부를 중심으로 피츠버그, 산타모니카, 싱가포르 등 주요 거점에서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싱가포르와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로보택시 시범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신설 합작법인은 2022년까지 완성차 업체 및 로보택시 사업자 등에 공급할 자율주행 플랫폼 개발을 완료하고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기존 앱티브의 자율주행 연구거점 외에도 추가로 국내에도 자율주행 연구 거점을 마련함으로써 세계적인 자율주행 기술력이 국내에 확산되는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측은 이에 대해 “단순 협업의 틀을 넘어 합작법인 설립이라는 최적의 공동개발 방식을 택함으로서 자율주행 업계에 지각변동을 예고한 것”이라고 자평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우리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비즈니스를 하기 때문에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앱티브사는 안전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앱티브사와 하나하나 함께 만들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 자율주행 핵심은 소프투웨어 솔루션, 현대차가 미래를 바꾼다

자율주행 기술의 핵심은 크게 3가지다. 인지와 판단, 그리고 제어다. 쉽게 예를 들어 보자. 앞에 장애물이 있고 옆차선은 안전하다는 것을 ‘인지’하면, 옆차선으로 옮기자는 ‘판단’을 내리고 그 방향으로 ‘핸들을 꺾어야’ 한다. 이 3가지 과정이 이뤄지려면 각종 하드웨어와 연계해 통합 제어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솔루션이 필수다. 운전자의 두뇌를 대신할 프로그램 말이다.

자동차 업계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자율주행 기술의 복잡성과 고난이도를 고려할 때 다양한 정보와 부품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탄탄한 소프트웨어 기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구글 등 IT기업들이 자율주행 개발에 뛰어든 이유도 소프트웨어 분야에서의 자신감 덕분이었다. 

앱티브가 자율주행용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선두권 업체이면서도 지금까지 글로벌 자동차 업체로부터 지분 투자 등 적극적인 협업 구도를 갖추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최상의 파트너를 확보한 셈이다.

현대차는 앱티브와의 자율주행 합작회사 설립 이후에도 기존에 협업하고 있는 글로벌 업체들과의 파트너십을 지속 유지하는 등 글로벌 기술 변화 트렌드에 공격적으로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현대차는 자율주행차 ‘두뇌’ 역할을 하는 인공지능 기반 통합 제어기와 센서 개발을 위해 미국 인텔 및 엔비디아와 협력하는 한편, 중국 바이두가 주도하고 있는 자율주행차 개발 프로젝트 ‘아폴로’에도 참여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여왔다.

6월에는 미국 자율주행기술 전문 기업 ‘오로라(Autora)’에 투자하고 자율주행 기술 고도화를 위한 협력을 이어왔다. 현대모비스도 7월 러시아 최대 IT기업 얀덱스와 공동 개발한 자율주행 플랫폼을 공개하고, 러시아 전역에서 로보택시를 시범 운영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운전자가 승객처럼 즐기는 시대. 현대자동차가 그리는 미래 모습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면 소비자들의 삶도 크게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소비자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