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송목의 경영전략] 무엇을 챙기고 무엇부터 버릴 것인가?
[최송목의 경영전략] 무엇을 챙기고 무엇부터 버릴 것인가?
  • 최송목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
  • 승인 2019.09.23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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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경제신문 최송목 칼럼] 이문열의 삼국지에 철수의 명장면이 나온다. 유비가 죽고 제갈공명이 4번째 출정 길에 올랐을 때 일이다. 사마의의 계략에 넘어간 후주 유선이 제갈공명을 호출했다. 하는 수 없이 군대를 물리게 된 제갈공명은 다섯 길로 군대를 나누어 위험을 분산하고, 매일 솥 아궁이 수를 늘리는 방법으로 적의 판단을 흐림으로써 병력 손실 없이 무사히 퇴각할 수 있었다. 시대가 바뀌어도 개념은 같다. 망해가는 사업의 철수에서도 이 같은 지혜와 전략이 그대로 유효하다.

사업은 언제든지 망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내키지 않는 선택이지만 사장은 이런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비상 시나리오를 생각해 두어야 한다. 이것은 시간을 가지고 침착하게 대비하는 게 좋다. 망하는데 무슨 시간적인 여유가 있겠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필자의 과거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분명 시간은 있었는데 당황하고 감정이 앞서서 좀 더 이성적으로 사업정리를 못 했던 아쉬움이 있다. 본능적 이기심에 흔들리는 마음과 합법과 불법 간의 갈등 등이다.

요즈음 사업하는 사장님들이 아우성친다. 중앙일보 보도로는 골드만삭스가 지난 8월 15일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대로 낮춰 잡은 데 이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등 국내외 기관도 잇따라 부정적 전망을 했다. 국고채 장단기 금리 차는 11년 만에 최소치를 기록했다. 실업률 추이로 경기 침체 여부를 판단하는 '삼 지표'(Sahm Recession Indicator)의 기준에 따르면 한국 경제가 현재 침체에 접어들었을 가능성은 40%로 지난 1년 새 4배 가까이 높아졌다. 가파르게 하강하고 있는 침체 국면에서 망하는 회사도 점차 늘고 있다.

회사가 망해갈 때 사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처리의 우선순위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챙길 것인가의 우선순위에서 최우선은 역시 직원과 투자자다. 직원들의 생계를 걱정하고 회사 존재의 근간인 투자자의 손실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실무적으로 직원들에게는 체당금이나 실업급여 등을 챙겨 주는 것이고 투자자들에게는 폐업 설득의 소통이 될 것이다.

이것은 배가 침몰할 때 끝까지 남아 배와 운명을 같이하거나 맨 마지막으로 빠져나오는 선장과 같은 처신이다. 실제 실전에서는 무척 괴롭고 실행하기 어려운 성자 같은 선택임은 틀림없다. 나눠주라고 돈이 금고에 가지런히 준비된 것도 아니고, 쫓기는 마당에 그런 마음의 여유가 과연 가당키나 한 걸까? 단순히 원론적 도덕적 측면만으로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추후 재기를 염두에 두고 장차 주변의 도움을 받기 위한 폐업 후 미래전략이기도 하다. 한 번 사업하고 말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 이미지훈련과 내공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는 평소 생각해 두지 않으면 갑자기 닥쳤을 때 쉽게 실행할 수 없는 일들이다.

회사가 망하면 직원들은 다른 직장을 찾아 취업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사장은 회사가 망하면 그 후속으로 해야 할 뒤치다꺼리가 많다. 밀린 세금, 건물임대료, 공공기관체납금, 채무자 무마, 미수금, 미납금 처리 등 아이로니컬하게도 사업 흥할 때 보다 망할 때 해야 할 일이 더 많다. 또 개인적으로도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다. 생계가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회사와 거의 같은 항목으로 여러 가지 복잡한 일과 구차한 일들이 벌어지고 그 중압감이 어마어마하다. 이 모두 당연히 신명 나지 않는 일들이다

망해갈 때 사장이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해야 할 우선은 가족을 지키는 일이다. 전쟁에서 군대가 철수할 때 가족 부녀자부터 먼저 피신시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장도 가장이다.

사장 가족들도 가장 한 사람만 바라보고 있는데 회사가 망하면 당장 생계를 위협받게 된다. 한국에서 사업하다가 망하면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구조 속에 있다. 근로자는 직장에서 나오면 국가가 실업급여, 재취업알선 등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만, 사업자인 사장은 망하면 국가가 특별히 보호해주거나 최소생계를 위한 별도의 조치나 로드맵이 없다.

오히려 더 가혹하다. 회생, 파산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은행, 금융기관 채무 등은 탕감시켜주지만 세금은 감면이나 탕감 대상이 아니다. 세금을 체납하면 법정납부기한 경과한 달 3%의 가산금이 부과되며, 세금체납액이 100만 원 이상인 경우 1일 0.025%의 추가가산금(월 0.75%)이 부과된다. 따라서 초기체납 가산금 3%를 제외하고도 매년 9.125%의 가산금이 붙는 것이다. 현행 시중금리가 2%대인 걸 고려하면 지나치게 높은 금리다. 사업도산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동안의 성실납부로 국가기여도 높았던 사업자가 일거에 불성실납세자 내지는 범죄자 취급당하는 것이다. 또한 건강보험료도 회사가 망한 것을 바로 반영해서 고지서가 발부되는 것이 아니라 전년도 기준으로 부과된다. 특히 갑작스러운 폐업의 경우 경황이 없는 사이에 여러 가지 고지서 폭탄을 떠안게 되는 것이다. 건물 등이 강제 경매되는 경우에도 비슷하다. 해당 건에 대한 양도세가 바로 원천징수 되는 것이 아니라 사후 별건으로 부과되어 2년쯤 뒤에 고지되는 바람에 재기 의욕 상실과 실패 고통을 가중하고 있다.

운이 좋아 이런 불행을 겪지 않는 사장들도 가끔 있지만, 사업하다 보면 반드시 망하는 국면에 이를 수 있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한 번 망하는 파도에 휩싸이다 보면 그 흐름을 바꿔놓기가 쉽지 않다. 대개는 망연자실하여 우선순위 없이 모든 것을 쉽사리 포기하거나 허둥대는 바람에 실리를 놓치게 된다. 망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어쩔 수 없이 망하는 길에 들어섰다면 차분히 일을 처리하는 것 또한 사장 몫이다. 무엇을 챙기고 무엇부터 버릴 것인가? 망하는 와중에도 경영이 필요하며 손실을 줄이는 실리는 있다.

<칼럼니스트=최송목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 '사장의 품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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