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와 정면충돌, 고강도 비상경영...달라진 LG 배경엔 구광모 스타일?
개인 인품과 기업내 지배구조는 'OK', 첫 1년 경영성과는 ‘글쎄’
주력 계열사 실적개선, 소비자와의 향후 소통 문제 등이 해결 과제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정기 사장단과 임원 인사에서 그간 전통적으로 이어져오던 내부 승진에서 벗어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사진=LG)
구광모 LG회장이 여러 모로 '달라진' 스타일의 경영 행보를 보이고 있다. LG는 최근 임원 인사에서 순혈주의를 타파하며 안정보다 변화를 꾀했고, 경쟁사와의 관계에서는 다툼도 불사하며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LG)

[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최근 LG그룹의 달라진 행보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장면’ 세 가지가 있다.

그 변화가 긍정적인지 아니면 부정적인지에 대한 판단은 엇갈리지만, ‘LG가 예전의 그 LG가 아니다’라는 평가 만큼은 공통적이다.

#scene 01 “니들이 8K를 알어?”

LG전자가 “삼성 TV는 진짜 8K가 아니다”며 선제공격을 날렸다. 공식석상에서는 주로 ‘경쟁사’라는 단어를 쓰는데 고위 임원이 ‘삼성’이름을 콕 짚어 비판의 화살을 날렸다. 말하자면 ‘저격’한 셈인데, 평소 국내 재계 분위기를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LG전자는 한발 더 나아가 기자들을 불러 기술설명회를 열면서 삼성전자 제품을 분해해 전시해놓고 직설적인 어조로 품질 비판에 나섰다. LG전자는 19일 '공정거래위원회에 삼성전자의 표시광고법 위반행위에 대한 신고서를 제출했다'고 밝히는 등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scene 02 “우리가 고발장을 제출한 이유는요...”

LG화학은 최근 기술인재 유출 등을 주장하며 SK이노베이션과 소송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이례적으로 수사 안내문을 언론에 배포했다. 사회적으로 관심이 큰 사안의 경우 수사 관련 상황 등이 언론에 보도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소송 당사자 대기업이 상대측에 관한 내용을 기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알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 보통의 경우 ‘수사중인 사안이므로 할 말이 없고 재판에서 명백히 밝혀질 것’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게 일반적이다.

#scene 03 “고강도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합니다”

LG디스플레이는 실적 악화를 이유로 정기인사 전에 수장을 교체했다. 이와 더불어 희망퇴직도 진행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관련 입장을 정리해 기자들에게 전자메일을 돌렸다. 해당 이메일에는 “고강도의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기업이 대내외 경영변수를 앞세워 위기감을 표현하는 것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하지만 계열사 수장을 전격 교체하고 희망퇴직을 받는 것은 적어도 LG에게는 매우 이례적인 모습이다.

◇ “재계의 범생이가 싸움닭으로 변했다?”

재계의 ‘모범생’ 이미지이자 기업의 첫 번째 가치가 ‘인화’라고 여겨왔던 LG가 최근 잇따라 이례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경쟁사와 날선 대결을 벌이고 실적이 부진한 계열사 경영진을 전격 교체하는 모습은 과거의 그들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풍경들이다.

최근 LG전자는 삼성전자와,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과 정면 충돌하고 있다. 언론은 물론이고 공식석상에서도 매우 ‘센’ 수위의 직설화법이 오갔다. 각자의 입장이 있고 양사의 주장이 서로 엇갈리는 부분도 있으니 현 시점에서 제3자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LG가 과거와 다르다’는 것이다. 한 언론에서는 ‘재계의 범생이가 싸움닭으로 변했다’고 평가했다.

9월 17일자로 수장을 교체한 LG디스플레이 소식도 재계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움직임으로 본다. 표면적인 이유는 분명하다. LG는 “한상범 부회장이 실적악화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사의를 수용하고 LG화학 사장 출신 정호영을 새 수장에 선임했다"는 것이 LG측 발표다.

LG디스플레이의 최근 성과가 아쉬웠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LG그룹에서 수장이 연말 정기인사 전에 바뀐 건 2010년 9월 LG전자 남용 전 부회장 이후 9년만이다. CEO가 바뀌자마자 희망퇴직 신청까지 받고 있다. ‘어려워도 인화로 끌고 간다’ ‘좋은게 좋은 것’이라던 기존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17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열린 '디스플레이 기술설명회'에서 LG전자측 관계자가 8K QLED TV와 4K OLED TV의 화질을 비교하는 모습. 최근 LG전자의 공격적인 행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사진=연합뉴스)
17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열린 '디스플레이 기술설명회'에서 LG전자측 관계자가 8K QLED TV와 4K OLED TV의 화질을 비교하는 모습. 최근 LG전자의 공격적인 행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사진=연합뉴스)

◇ 구광모 회장 체제 1년...인화 대신 실리, 안정 보다 변화

모범생 이미지던 LG가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는데는 취임 1년차를 넘긴 구광모 회장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복수의 재계 관계자들은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은 당연히 ‘회장님’ 의중이 반영될 수 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구광모 회장이 싸움닭이라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다만, 최근 LG가 실리를 중시하며 체질 개선 등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분명하다. 실적이 부진하다고 판단되거나 방향성이 맞지 않는다고 결론 내린 사업은 과감하게 정리하는 행보도 있다. 좋게 말하면 ‘선택과 집중’이고 다른 단어로 표현하면 ‘매우 공격적이고 거침없다’는 분위기도 읽힌다.

구 회장은 취임 직후 미국 3M출신 신학철 부회장을 LG화학 최고 경영자로 영입했다. 이후 지난해 11월 인사에서는 한국타이어 연구개발본부장 출신을 자동차부품팀장으로 영입했고, 보쉬코리아 영업총괄 출신을 LG전자 자동차부품 사업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인재육성을 담당할 임원으로는 이베이코리아 인사부문장 출신을 데려왔다. 경영전략팀장도 외부인사로 채웠다.

LG는 안정적인 내부승진 위주의 ‘순혈주의’ 문화가 적잖게 남아 있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구회장이 외부 인재를 대거 영입하면서 그런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룹 지주사인 LG의 권영수 부회장도 소위 ‘전투력’이 강한 인물로 꼽히는데 LG유플러스에서 근무하던 권 부회장은 구광모 회장이 취임 후 지주사로 불러들였다. 재계에서는 이들이 현재 LG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고 본다.

LG측은 LG화학의 소송제기가 ‘핵심기술과 지식재산권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조치’고, LG전자의 8K 기술 설명회는 ‘소비자에게 올바른 제품 정보를 알리기 위함’이며, LG디스플레이 인사는 ‘책임경영 및 비상경영체제 차원’이라는 입장이다. 경영자의 성향 등과 연관짓는 확대해석은 경계하는 모습이다.

◇ 주요 대기업 첫 4세 회장, 인품과 지배구조 평가는 긍정적

구 회장의 평소 인품이나 기업 내 지배구조 등은 일단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구 회장은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친아버지는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으로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의 첫째 동생이다 구본무 전 회장이 2004년 양자로 입적해 후계를 맡겼다. 구 회장은 2006년 LG전자 대리로 입사했고 일반사원과 같이 과장 근무연한을 모두 채우고 차장으로 승진했다.

부장 시절이던 2014년 LG전자 창원 공장에서 3개월 동안 현장체험을 했다. 2017년에는 임원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할 것이라는 세간의 예측을 깨트리고 상무 직함을 유지하기도 했다. 구자경 명예회장이 공장에서 현장 노동자들과 같이 근무했고 구본무 회장이 과장으로 입사해 20년 동안 경영수업을 받았던 것과 비슷한 길이다.

학창시절 검소하고 부잣집 아들 티를 내지 않아 그를 LG전자 대리점 아들로 아는 친구들이 많았다고 한다. 상무로 일할 때도 직장 선후배들과 야구장을 같이 다니는 등 격의 없이 지내는 등 평판이 좋았다. 선대 회장은 평소 그에게 “엘리베이터에서 직원들을 만나면 먼저 인사해라.”고 당부했다고 알려져 있다.

지배구조도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LG그룹은 2003년 국내 대기업집단 중 최초로 지주사 체제로 전환해 안착시킨 이래 국내 대기업 그룹 중 가장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보유하고 있다. 그룹 지주회사인 (주)LG의 지분율을 보면, 구광모 회장은 본인 15% 정도를 비롯해 가족과 친척 지분까지 합치면 46%를 넘어 비교적 안정적인 구조다.

구광모 회장은 국내 주요 대기업 중 첫 4세 경영인이다. 국내 주요 대기업의 세대교체가 최근 완료된 가운데, 1978년생 구 회장은 그 중에서도 가장 젊은 나이다. 사진은 올해 1월 2일 중소기업중앙회 그랜드홀에서 열린 2019 기해년 신년회에서 국내 주요 기업 총수들이 만나 얘기를 나누는 장면 (사진=연합뉴스)
구광모 회장은 국내 주요 대기업 중 첫 4세 경영인이다. 국내 주요 대기업의 세대교체가 최근 완료된 가운데, 1978년생 구 회장은 그 중에서도 가장 젊은 나이다. 사진은 올해 1월 2일 중소기업중앙회 그랜드홀에서 열린 2019 기해년 신년회에서 국내 주요 기업 총수들이 만나 얘기를 나누는 장면 (사진=연합뉴스)

◇ 전자 디스플레이 실적 악화 속, 취임 첫해 성적표는 ‘물음표’

그렇다면 경영 성과는 어떨까. 구광모 회장이 국내 굴지의 대기업 CEO인 만큼 그에 대한 평가는 경영 관련 성적표를 통해 가릴 수 밖에 없다

기업의 행보에서 안정과 도전 중 무엇이 더 필요하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성향이나 상황에 따라 갈릴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한 성과가 어떠했느냐는 부분이다. LG는 국내 주요 대기업중 최초로 4세 경영체제를 구축한 셈이어서 특히 재계의 관심이 쏠린다.

구광모 체제 이후 ‘과감한 행보’나 ‘혁신적인 변화’ 등을 감안하더라도 최근 LG그룹에는 악재가 많았다. LG전자와 LG디스플레의 악화된 실적이 우선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건조기 사태 로 인해 촉발된 해당 소비자들의 불만도 여전히 화약고다.

LG전자 주가는 지난달 초부터 한달여간 6만원 안팎을 오가고 있다. 9월 초순 이후 일부 회복돼 20일 오후 1시 현재 6만 5000원을 기록하고 있지만 지난 6월 12일 기준 장중 최고가 8만 3400원을 찍었던 것을 감안하면 기세가 한풀 꺾인 모양새다.

스마트폰 사업과 TV사업의 부진이 실적 원인으로 꼽힌다. LG전자는 올 2분기 매출 15조 6292억원, 영업이익 6523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1% 늘었고 전분기와 비교해도 4.8% 늘었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에 비해 15.4% 줄었다. 전분기와 비교하면 27.6% 감소했다. TV등 홈 가전의 영업이익이 줄고 스마트폰의 적자가 더해진 결과다.

LG디스플레이 주가는 지난 4월11일 장중 2만2 200원으로 신고가를 기록한 뒤 곤두박질치면서 불과 4개월만인 지난달 7일 1만 2550원으로 신저가를 찍었다. 최근 다소 회복됐지만 20일 오후 1시 현재 1만 4750원으로 아직은 저점에서 더 가깝다.

LG디스플레이는 올해 2분기 연결 기준 영업손실 3687억원, 매출 5조3534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영업손실은 61.6% 늘었으며 매출은 5% 감소했다. 이번 실적은 지난 1분기 영업손실 1320억원, 매출 5조 8788억원 보다 악화됐다. LG디스플레이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 이상 매년 조단위 영업이익을 기록했던 주력 계열사임을 감안하면 이 부분은 구 회장과 LG그룹에게 아픈 평가가 될 수 밖에 없다.

◇ 주력 계열사 실적 개선 및 소비자 소통 강화 숙제로 남아

LG그룹에 대한 증권가 투자전문가들의 의견은 비교적 긍정적이다. IBK 투자증권 김장원 연구원은 16일자 보고서에서 “사업이 유사한 기업은 합치고 사업을 분할하여 지분을 일부 매각하는 등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계열사 지배구조 변화와 주력 자회사 실적 부진으로 금년 실적이 지난해보다 못하지만, 내년에는 기저효과를 예상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주요 계열사들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유안타증권 이재윤 연구원은 18일 보고서에서 LG전자에 대해 “가전사업은 후발업체들의 경쟁에도 불구하고 고가형 가전 시장에서의 리더십 유지한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실적우려는 완화되는 국면”이라고 밝혔다.

대신증권 박강호 연구원도 LG전자에 대해 “프리미엄 가전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했고 신성장 제품군 추가로 경쟁사대비 높은 성장률과 수익성을 실현했다”며 긍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하이투자증권 정원석 연구원은 LG디스플레이에 대해 “수익성이 악화된 LCD TV 사업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OLED 기업으로 변화하는 과정이며 LCD TV 패널 출하량 감소에 불구하고 외형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전망했다.

치열한 소송전을 진행중인 LG화학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있다. 현대차투자증권 강동진 연구원은 16일 “소형전지 대폭 개선 및 ESS(에너지저장시스템) 화재 영향 완화, 자동차용 배터리 수익성 개선이 전망된다”면서 “4분기에는 자동차 전지 수율 상승으로 추가 개선이 전망된다”고 밝혔다.

구 회장은 앞으로 미래 사업 육성을 위해 집중적으로 투자를 확대할 예정이다. 아울러 성과주의와 책임경영에 대한 중요성도 더욱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취임 2년차를 맞아 그의 스타일이 LG그룹의 방향성에 더욱 깊은 역할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올해 연말 인사 등에서 ‘구광모식 경영’이 더 두드러질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다만 주력 계열사들의 실적 개선 문제, 건조기 관련 불만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소비자들과의 소통문제 등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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