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소비자 집단 피해자들 입증 못해 배상 못받아
가해기업 사과만 구체적인 손해배상 언급 회피…美,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적용
대륙계 법체계인 우리나라에서 전면적 적용 어려워…불균형으로 인한 과도한 처벌도 발생
지난 2018년 표창원 의원 외 9명 "징벌적 배상에 관한 법률안" 발의

 

지난 8월 가습기살균제참사 청문회에서 징벌적손해배상 구호를 부착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8월 가습기살균제참사 청문회에서 징벌적손해배상 구호를 부착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소비자경제신문 박은숙 기자]

# 아내가 숨이 안 쉬어진다고 해서 병원에 갔는데 폐가 너무 망가져 만성폐쇄성폐질환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때 응급병원비로 3000만 원을 받았고 그 후병원비와 폐 관련된 병원비를 받고 있다. 피해 입증되면 병원비가 삭감되는데 그것은 못 받고 있다.(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김씨)

# 대진메트리스에서 라돈이 검출돼 나라가 시끌벅적했었는데 지금은 조용해도 넘 조용해요. 피해자들만 속앓이하고 정부는 뒷짐만..., 회사는 없어지고 이대로 피해를 고스란히 떠 안아야 하는것 말이 되나요?(라돈 피해자 이 씨)

전문적 지식이 없는 소비자들은 피해를 입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이 입증하기 어려워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 때문에 현행 징벌적손해배상제도가 피해 소비자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하지 못하는 구조이고, 제품을 판매한 뒤 문제가 발생한 가해기업에 대해 더 엄격하게 처벌하거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강력한 법률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17년 제조물 개정한 "제조물 책임법" 법안 내용(사진=국회 제공)
지난 2017년 제조물 개정한 "제조물 책임법" 법안 내용(자료=국회)

2017년 제조물에 한해 개정한 "제조물 책임법" 법안이 통과되었지만, 이는 제조업자가 결함을 알고도 소비자의 생명과 신체의 중대한 손해가 발생했을 때 적용된다. 또 자동차관리법, 산업 안전 보건법 같은 데서 이 제도가 논의되거나 시행되고 있다.

이 법안은 제조자가 제조물의 결함을 알면서도 그에 대한 조치를 하지 않아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손해를 입는 것, 손해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 마지막으로 피해자가 피해를 증명해야 하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그 책임을 제조자한테 추적할 수 있다.

◇ 韓 소비자는 마루타 가해기업 책임회피…미국 법원, 징벌적손해배상 광범위하게 인정

미국에서도 모욕, 명예훼손 사건 등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운영하다가 제조물책임, 소비자보호에 확대 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였다. 현재 불법행위 법률분야에서 운영 중이며 46개 주에 도입됐다.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의 소비자들이 ‘베이비파우더’를 사용하다가 난소암 진단을 받은 뒤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미국법원으로부터 ‘베이비파우더’와 난소암의 관련성을 인정, 피고인 ‘베이비파우더’ 제작회사인 존슨앤드존슨이 원고 22명에게 총 46억9000만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미국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로 현재 또는 미래에 유사한 피해발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조사와 동종 기업들에게 스스로 문제에 대한 자각과 피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해외 사례를 들어 우리 국회에서도 '징벌적 배상에 관한 법률안'은 위법과 불공정한 행위를 효과적 예방을 위해 발의돼 있지만 2년째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 외 9명이 지난 2018년 발의한 '징벌적 배상에 관한 법률안'에는 고의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에게 징벌적 배상책임을 부과하고 유사한 붑법행위 재발 방지 목적으로 징벌적 배상소송 절차의 특례를 규정하고 있다.

또 고의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했을 경우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할 가해자는 전보배상 외에 피해자에게 징벌배상을 하도록 할 것과 그 배상액을 3배 이상 10배 이내로 명시했다.

뿐만 아니라 징벌적 배상책임을 미리 배제하거나 제한하는 약정은 효력 없도록 하는 것은 물론, 법원은 피해자의 신청이 있거나, 제출한 증거에 비추어 손해는 인정되나 손해액의 증명이 미흡하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직권으로 증거조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외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을 청구하는 사건을 국민참여 재판 대상사건으로 못박았다.

◇ 재계, 민·형사상 소송체계 등 법체계 조화 어렵다는 이유로 반대 

그러나 현행 징벌적 배상제도는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등 특정분야에서 시행하고 있고 민법과 특별법을 통한 전면 도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는 재계는 징벌적 배상제도의 전면 도입은 우리 나라의 민법상 손해배상원칙, 민·형사상 소송체계 등 법체계와 조화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법체계의 정합성 문제와 사회적 필요성, 국민의 공감대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17년 발의한 '징벌적 배상에 관한 법률안'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징벌적 배상제도는 불법행위가 일어나지 않았을 때보다 더 많은 우발이익을 얻게 할 여지가 있어 현실적으로 발생한 손해를 보상할 뿐 우발이익의 보유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민법의 손해배상에 따른 근본원칙과 제도가 상충한다는 이유로 반발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또 징벌적 배상제도는 영미법계의 보통법에 따라 인정돼 왔다. 그러나 대륙계 국가에서는 법체계상 전면적으로 받아들인 나라가 없다. 영미법계인 영국은 공무원의 억압적 행위 등 세가지 영역에서 인정돼 적용 중이다. 미국은 최근 입법과 판례를 통해 징벌적 배상제 적용을 제한하고 있는 추세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징벌적 배상을 손해배상의 원칙 하나로 전면도입하는 것은 위헌적 소지와 우리나라 법체계 부조화 등의 문제가 있기에 부적절하다"고 입장을 <소비자경제>에 보내왔다.

전경련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손해배상이 일부 분야에 도입돼 시행하고 있다. 영미법계와 다른 법체계로 된 우리나라의 법체계와 법질서의 정합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피해자에 부당이익을 부여해 남소의 우려가 있고 기업 활동 위축시킬수 있다. 공적집행이 충분히 강한 나라여서 불균형으로 인한 과도한 처벌도 발생할수 있다. 또 미국에도 이런 상황이 실제로 발생해 신중해야 한다"고 제도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는 지난 8월 소비자운동가 대회에서 징벌적손해배상제도를 촉구했다.(사진=소비자경제 제공)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는 지난 8월 소비자운동가 대회에서 징벌적손해배상제도를 촉구했다.(사진=소비자경제)

◇ 시민사회 "고의적 가해자에게 부과해야 할 징벌적손해배상제 도입해야"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 입법 문제는 지난 10년 사이 소비자들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했던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BMW자동차 화재사건 등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소비자단체협의를 중심으로 재발방지를 목적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특히 지난 8월에 열렸던 가습기살균제참사 청문회에서 기업들은 사과를 했지만 책임을 떠밀고 구체적인 배상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은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와 함께 지난 2018년 BMW 차량의 EGR쿨러 균열로 인한 냉각수 누수로 인한 EGR밸브 열림 고착이 되는 설계 결함을 소비자들에게 알리지 않아 은폐·축소한 BMW차량화재 사건, 골관절염치료제 인보사케이주사 사건 등이 실제로 소비자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박순장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소비자감시팀 팀장은 "그동안 기업들은 많은 대형 사건들로 인하여 수많은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았고 지금도 그 피해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대한 충분한 손해배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불법행위를 저지른 기업들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하거나 혐의 없음으로 사건이 끝나버리는 수준이어서 불법행위를 저지른 기업들은 아직도 이윤을 위한 기업 활동을 하고 있는 실정이고 소비자들은 계속 그 피해를 감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 역시 지난 8월 국회에서 열린 소비자운동가 대회에서 “우리 법원이 미국법원과 같이 과감하고 용기 있게 징벌적 손해배상을 고의성 가해자에에 부과하기 바란다. 사람 값이 비싼 사회가 선진사회”라고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의 당위성에 목소리를 높였다. 

해가 갈수록 집단적 소비자 피해 사례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데도 국회는 집단소송제와 징벌적손해배상제도 도입을 담은 이른바 '소비자3법'이 경제계 주체인 기업의 이해관계에 얽매여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입법안이 국민 대다수의 불이익을 예방하고 고의적인 피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민의를 대변해야 할 국회에서 유명무실한 현행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법률안 개정을 더 이상 외면해선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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