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수급 당장은 ‘OK’, 사우디 높은 의존도는 ‘변수’
수일내 기름값 오를 가능성 제기, 국제유가 전망 엇갈려
타 업계 반사이익 기대도...기름대란 방어 장기 과제로 남아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시설이 피격돼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 16일 위성에서도 선명하게 보인다. (사진=미국 인공위성 이미지업체 플래닛랩스 제공/AFP=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시설이 피격돼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 16일 위성에서도 선명하게 보인다. (사진=미국 인공위성 이미지업체 플래닛랩스 제공/AFP=연합뉴스)

[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 주요 석유 시설과 유전이 드론 공격을 받아 가동이 중단되면서 국제 유가가 급등했다. 우리나라 원유수입 30%를 차지하는 사우디가 원유 생산에 차질을 빚으면서 정부와 정유업계는 총력 대응에 나섰다.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석유 시설 두 곳이 드론 테러로 파괴돼 가동이 중단됐다. 원유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정부와 정유업계는 물론이고 기름값에 민감한 소비자들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사우디발 기름값 이슈는 단순히 기업이 파는 물건값 문제가 아니다. 사우디와 우리나라 두 국가만의 문제도 아니다. 미국과 이란 등 국제 정세가 복잡하게 얽힌 건이다. 안보자원으로서 석유가 가진 중요성, 미국과 중동이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전 세계적인 변수로 떠오를 개연성이 크다.

싱가포르거래소에서 브렌트유 선물 가격이 춤을 췄고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에너지 공급 안정을 위해 전략비축유 방출에 승인했고,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세계 원유 시장은 현재로선 재고가 충분해 공급이 잘 이뤄질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정부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국내 석유수급 및 소비자 가격 등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정부가 상황을 점검하고 신속히 대응하라”고 지시했고 산업통상자원부는 석유수급과 유가 동향을 점검하기 위한 긴급 회의를 열었다.

◇ 원유 수급 당장은 ‘OK’, 사우디 높은 의존도는 ‘변수’

현재 국내 원유도입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큰 차질이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수급 차질 가능성이 있다. 국제 유가의 단기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문제다.

사우디산 원유는 대부분 최대 20년 장기계약 형태로 도입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사우디산 원유의 86.9%가 장기계약으로 도입됐는데, 장기계약의 경우 계약상 물량이 확보돼 있는 형태다.

사우디 정부 역시 자체 비축유로 수급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단기적으로 큰 차질은 없을 것으로 산업부는 보고 있다. 국내 정유사들도 “단기적으로 원유 선적 물량이나 일정에 아직 큰 차질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사우디는 우리나라 제1위 원유수입국이다. 산자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 원유수입의 28.95%가 사우디를 통해 이뤄진다. 한 매체에서는 대한석유공사와 정유업계 자료를 바탕으로 ‘지난해 사우디 원유 수입 비중이 31%를 넘는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숫자상 일부 차이가 있으나 두 자료 모두 ‘원유는 사우디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결론으로 연결된다. 그러므로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에 대비해 수급 차질 여부 및 유가 변동성에 대해 면밀하게 점검해야 한다.

산자부는 16일 오후 에너지자원실장 주재로 회의를 열고 “정부는 국제 유가가 국내 시장과 소비자 가격 등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신속히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필요시 정유업계와 협력해 기타 산유국으로부터의 대체물량 확보에 주력하는 한편, 국제유가 변동이 가져올 수 있는 국내 석유가격 변동도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한다는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석유산업과 신유철 사무관은 <소비자경제>와의 통화에서 “다른 산유국과 장기적인 규모의 원유수급 계약을 체결하려 한다면 그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일부 필요한 물량을 선물시장에서 바로 구매하는 것은 복잡한 과정이나 절차가 필요하지 않으므로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 수일내 기름값 오를 가능성 제기, 국제유가 전망 엇갈려

소비자들이 맞닥뜨린 문제는 역시 ‘기름값’이다. 최근 유류세 환원 조치 이후 기름값이 올랐는데 이번 사태로 가격이 더 올라가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 주유소에는 ‘기름값이 또 오르냐?’고 묻는 소비자들이 늘었다.

사단법인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휘발유 가격은 지난 8월 내내 1493원 선으로 유지되다가 9월 첫째주에 1516원으로 뛰었다. 국제원유 가격이 통상 2주 정도 시차를 두고 국내 가격에 반영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더 오를 가능성도 제기된다. 유류세 환원분이 아직 덜 반영된 곳도 있으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수일내 기름값이 오르는 곳도 생길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이 일시적인 변수인지, 아니면 장기적으로 기름값을 올리는 요인이 될지다. 업계에서는 ‘단기적인 영향은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가격 상승 요인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삼성증권 심혜진 연구원은 “생산 차질 물량인 570만 배럴은 사우디 총 생산의 약 58%를 차지하며, 글로벌 총 공급의 약 5%로, 이와 유사한 수준의 공급 차질이 발생한 사례는 최근에 없었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생산 차질 물량 규모가 크지만, 단기에 수습될 가능성이 있고 일정 부분 대응 여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단기 상승 요인에 그칠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유진투자증권 황성현 연구원은 “글로벌 공급 생산 차질로 단기 유가 상승은 불가피할 전망이지만 4분기 미국 원유 공급 추가를 반영하면 장기적으로는 하향 안정화가 예상된다”는 전망을 내놨다. 아울러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감산규모 확대 여부에 따라 장기 유가 방향성이 결정되겠지만 큰 변화가 없다면 국제유가는 결국 박스권에서 횡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장 공급을 채우더라도 장기적인 변수가 여전하다는 시선도 있다. 사우디의 공급량 자체보다는 지정학적 위치와 국제 정세가 근본적인 문제라는 의견이다. 글로벌 원유 수유가 약화 추세고, 트럼프가 미국 전략비축유 방출을 승인한 이상 공급 부족 우려는 제한적이지만,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이번 일을 계기로 악화될 우려가 제기되는 등 국제 정세에서의 변수가 산적해있다는 지적이다.

하나금융투자 전규연 연구원은 “공급 차질 우려는 해소되더라도 지정학적 리스크는 유지될 공산이 크다”고 밝히면서 “WTI 가격이 배럴당 65달러 수준으로 상승하고 변동성 확대가 동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WTI는 세계 3대 유종 중 하나로 꼽히는 서부텍사스유로 16일(현지시각) 62.90달러에 장을 마감한 바 있다. 이는 전날보다 8.05달러 뛴 금액이다.

이낙연 총리는 17일 사우디아라비아 원유시설 파괴로 유가 급등 우려와 관련해 "안팎으로 어려운 우리 경제에 부담이 가중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런 일이 없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겠다"고 밝혔다.
이낙연 총리는 17일 사우디아라비아 원유시설 파괴로 유가 급등 우려와 관련해 "안팎으로 어려운 우리 경제에 부담이 가중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런 일이 없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겠다"고 밝혔다.(사진=연합뉴스)

 

◇ 타 업계 반사이익 기대도 제기, 기름대란 방어가 장기적 숙제

증권가 일각에서는 이번 이슈를 다른 각도에서 분석하는 보고서들도 내놨다. ‘석유’에 변수가 생기면서 국내 일부 산업이 반사이익을 얻거나 대체에너지 산업에는 일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시선이다.  

메리츠종금증권 노우호 연구원은 “이번 사건으로 사우디 동부와 서부지역으로 원유, 천연가스를 공급하던 정유사들이 가동 중단된 상황이어서 해당 부지 원재료 조달량도 16~50% 감소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2018년 연말 기준 해당 지역의 에틸렌 생산규모는 1660만톤으로 글로벌 생산규모 대비 10.4%다.

이외에도 프로필렌 620만톤, 부타디엔 18.3만톤 규모다. 각각 글로벌 생산규모 대비 5.8%와 1.5%로 역시 비중이 크다. 노우호 연구원은 “사우디 생산차질에 따른 국내 NCC 반사수혜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NCC는 석유화학 기초원료인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을 생산하는 설비다.

이베스트증권 양형모 연구원은 대체 에너지 수요가 증가할 신재생 관련 업계는 긍정적일 수 있다고 봤다. 아울러 LNG선 발주 등으로 조선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양 연구원은 “수요처 입장에서는 미국산 LNG가 중동산 LNG에 비해 가격이 안정적이고 수급이 유연하다는 장점이 부각되므로 북미 LNG투자 증가를 견인해 LNG선 발주 증가 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러한 상황에도 원유 공급 자체가 막힐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기름값을 포함한 국내 경제에는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고 부정적인 영향이 짧게 끝나도록 관리해야 할 숙제가 생긴 측면도 있다. 사우디발 원유수급 비상이 유가 폭등이라는 쓰나미로 번지지 않도록 정부의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1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사우디의 원유생산 차질과 관련해 "세계 하루 원유 공급량의 5%에 생산 차질이 생겼고, 국제유가도 불안정해졌다"며 "우리는 국제에너지기구(IEA) 기준 173일분의 비축유를 갖고 있어 당장 원유 수급에 차질은 없다"면서도 우리 경제 미칠 악영향에 대비할 것을 주문했다. 

아울러 산업통상자원부와 석유공사 등 관련 부처와 기관에는 유가 동향과 진행 상황에 대해 업계에 정확하게 알려줄 것과 비축유 적기방출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상황에 대해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소비자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