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후 동료들과 빈손으로 창업, 20년 만에 바이오 업계 신화로 등극
청년 세대 위한 통 큰 투자 약속, 최근 주식 하락으로 아쉬운 평가도
내년 연말 이후 소유와 경영 분리 약속, ‘서정진의 시간’ 마무리는?

셀트리온그룹 서정진 회장이 사업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셀트리온그룹)
올해 초 기자간담회에서 셀트리온그룹 서정진 회장이 사업 전략을 발표하던 당시의 모습. (사진=셀트리온그룹)

[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을 읽는 키워드는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자수성가로 바이오 신화를 쓴 입지전적인 인물, 후배 세대를 위한 통 큰 행보와 최근 주식시장에서의 아쉬움에 대한 엇갈린 평가, 그리고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는 약속이다. 국내 부자 순위 2위로 올라선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의 경영 행보를 짚어봤다. 

대한민국 최고 ‘부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다. 지분 가치 위주로 따져본 것이어서 실제 보유한 재산 규모 일체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이견은 없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도 올 여름 발표한 ‘2019년 한국의 50대 부자’ 명단에서 이건희 회장이 168억 달러의 재산을 보유했다며 1위로 꼽았다.

눈여겨볼 지점은 2위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대한민국 No.2 부자다. 포브스는 서정진 회장의 재산이 지난해보다 32.7% 줄어든 74억 달러라고 추산했지만, 줄어든 규모에도 불구하고 2위는 2위는 그의 몫이었다. 해당 조사에서 2018년 2위로 뛰어오른 후 2년 연속 2위다.

서 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국내 5대 기업 거물급 CEO를 모두 제쳤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김정주 NXC대표, 김범수 카카오 의장 등 요즘 소위 ‘핫’한 K뷰티 및 IT업계 CEO들도 모두 제친 순위다. ‘서정진 신화’는 어떻게 씌였을까

◇ 자수성가로 쓴 바이오 신화

서정진 회장을 얘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키워드는 ‘자수성가’다. 지금 국내 재계를 이끄는 CEO들은 가업을 물려받은 재벌가 3~4세, 그리고 테헤란밸리에서 신화를 쓴 IT업계 리더군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서정진 회장은 이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독특한 사례다.

그는 삼성전기와 대우자동차에서 일했다. 당시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서정진 회장을 보고 “당장 우리 회사로 출근하라”며 임원직을 맡겼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당시 그의 나이 34세였다. 이후 IMF 외환위기가 닥치고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경영혁신을 담당한 임원으로서 책임을 지고 회사를 나왔다.

이후 동료들과 함께 작은 월세 사무실을 얻어 창업했다. ‘바이오 산업이 유망할 것’이라는 판단 만으로 덜컥 뛰어든 사업이었다. 창업 멤버 중에는 생물학 전공자도 없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도전이었다.

서정진은 셀트리온을 바이오시밀러(의약품 복제약)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키웠고, 바이어시밀러 해외 판매를 목적으로 세운 셀트리온 헬스케어를 통해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창업 초기, 해외 40여개 국을 직접 돌아다니며 바이오 관련 연구자들을 직접 만나는 등 치열하게 노력한 결과다.

◇ “후배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투자한다”

서정진 회장의 최근 이슈는 ‘투자’다 그는 지난 5월 ‘2030년까지 40조원을 투자하고 1만명을 고용하겠다’는 당찬 계획을 밝혔다. 바이오 산업 경쟁력 강화를 통해 국내 경제를 든든히 받치겠다는 포부인데, 이 자리에서 그는 “후배들에게 용광로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대한민국을 물려주고 싶다”는 것이 서정진 회장의 각오다.

서정진 회장이 통 큰 투자를 결심한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장기적인 산업 위기를 타개할 힘이 필요하다는 판단과, 기업인이자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희망을 물려주기 위해서다.

부하직원들과 십시일반 5천만원을 모아 창업한 후 우여곡절 끝에 회사를 키운 탓일까. 그는 자신의 고생담을 통해 후배들의 아픔을 돌아보는 눈을 키웠다. 이러한 그의 발언을 되새겨 보면 이렇다. 

“미래에 어떤 산업이 발전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멋도 모르고 바이오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얼마나 힘든 길인지 모르고 시작했죠. 고생을 10년 했습니다. 오랫동안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었더니 드디어 물이 차기 시작하더군요. 그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서정진 회장은 본인의 기업가 생활을 회상하며 ”처음에는 망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일했다“고 회상했다. 돈을 벌고, 더 많이 쓰려는 욕심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것이 기업가의 궁극적인 의미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망하지 않고 돈을 벌었다면 그 다음에는 애국자가 되어야 하고 상생도 해야하며 다음 세대도 생각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당시 그는 ”우리 다음 세대들이 '당신들의 세대는 무엇을 했느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그 지점에서 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이를 두고 국내 바이오제약 산업 리딩 기업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보여주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서정진 회장의 이 날 발표에는 언론과 재계의 큰 관심이 쏠렸다,
서정진 회장은 지난 5월 수십조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밝혔다. 당시 서 회장의 계획에 언론과 재계의 큰 관심이 모였다.

◇ 위기와 조정 겪은 바이오 산업, 반전 신화 쓸까?

성공스토리에 비해 최근 주식시장에서의 성과는 다소 아쉽다는 평가다. 셀트리온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바이오 시장의 하락세가 이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18년 초순까지만 해도 바이오 업계는 주식시장에서 대세 상승장으로 통했다. 하지만 이후 하락세와 조정 등을 거쳤다

셀트리온 주가는 9월 10일 장마감 기준 16만 5000원이다. 한때 30만 원을 넘나들던 것을 생각하면 낙폭이 컸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서정진 회장이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혔을 때 일부 투자자들은 ‘주가 부양에 더 신경 써야 하는 것 아니냐’며 볼멘 소리를 내놓기도 했다. 청년 소비자와 후배 기업가들이 내놓은 환호가 있었으나, 한편에서는 개미 투자자들의 아쉬움도 두드러졌던 부분이다.

그러나 증권사에서는 여전히 ‘장기적으로 볼 때 긍정적’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이베스트증권 최석원 연구원은 ”지난 2분기는 당초 기대를 소폭 하회하는 수익성을 보여줬지만 3분기와 4분기에는 전사 공장 가동률 개선과 기존 램시마보다 단가가 높은 제품 매출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실적의 방향성은 우상향 추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화투자증권 신재훈 연구원은 셀트리온헬스케어에 대해 전망하면서 ”하반기에는 기존제품의 성장과 미국 트룩시마 및 허쥬마 신규매출 발생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삼성증권 서근희 연구원도 ”예상된 악재는 대부분 주가에 선반영됐고 미국 바이오 시밀러 매출 확대 전망으로 기존 바이오시밀러 외에 추가 제품 포트폴리오 확대로 실적이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정진 회장은 최근 한 컨퍼런스에서 "한국 바이오산업은 거저 이뤄진 것이 아니다. 바이오업계에 사기꾼들만 잔뜩 있는 줄 아는데 과학자들 가운데 사기를 치려는 사람은 없다. 다만 자기 확신과 현실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위기를 딛고 재도약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 1년여 남은 ‘서정진의 시간’ 효과적인 마무리 위한 노력들

서 회장은 “2020년 말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는 올해 1월 4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위와 같은 뜻을 밝혔다. 자식에게 지분은 물려주지만, 그룹 경영은 전문가에게 맡기겠다는 것.

그는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은퇴에 앞서 셀트리온을 글로벌 종합바이오제약회사로 만들기 위한 5단계 로드맵을 공개했다. 1단계가 <자체 기술력 확보>고 이후 <의약품 개발역량 확보와 제품 라인업> <상업화와 글로벌 임상 진행> <생산기지 다원화>를 각각 거쳐 5단계 <글로벌 세일즈 마케팅 네트워크 구축>으로 이어진다.

서정진 회장은 현재 셀트리온이 3단계에서 4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이며 향후 2년 동안 해외 생산 다변화 및 글로벌 직판 체제를 구축등에 도전한 다음 2020년 말에 미련없이 물러나겠다고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은퇴 이후 계획은 미처 세우지 못했지만 우선 잠을 많이 잘 것이고 두 번째로는 TV예능 '도시어부'에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1년 3개월여 남은 ‘서정진의 시간’이 계획대로 마무리될 것인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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