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는 ‘싸구려’ 취급, 국내 시장에서는 명절 효자상품
CJ 스팸 연간 매출 4조원, 60%가 명절 선물세트로 팔려
호불호 적고 보관 쉬우며 가성비도 높아 반찬 선물로 인기

추석 선물세트로 '스팸' 인기가 높다. 호불호가 덜하고 가성비가 좋아서 부담이 덜하다는 평가다. 스팸 매출의 60%가 명절 선물세트다.
추석 선물세트로 '스팸' 인기가 높다. 호불호가 덜하고 가성비가 좋아서 부담이 덜하다는 평가다. 스팸 매출의 60%가 명절 선물세트다.

[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언제부터인가 스팸 선물세트가 명절 때마다 기본 ‘잇템’이 됐다. 

스팸은 국내 시장에서 연간 4조원 매출을 올렸다. 그 매출 비중의 60%가 모두 명절에 팔려 나갔다. 외국에선 스팸은 글자 그대로 싸구려 깡통햄으로 취급 받지만 국내에선 언제부터인가 명절마다 스테디셀러가 된지 오래다. 

전자메일 중 받고 싶지 않은 광고성 메일이나 거부하고 싶은 메일을 통상적으로 '스팸메일'이라고 부른다. 최근 방영된 TV예능프로그램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는 영국 청년들이 부대찌개에 들어간 깡통햄을 보고 “이걸 왜 돈 주고 사먹느냐”며 깜짝 놀라는 장면이 나왔다. 외국에서 ‘스팸’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해외에서는 ‘스팸’을 싸구려 햄으로 취급한다. BBC는 2013년 '스팸은 왜 한국에서 고급 음식일까’라는 의문을 던진 적이 있고 뉴욕타임스는 2014년에 '스팸과 사랑에 빠진 한국'이라는 칼럼을 실었다. LA타임즈는 “신선한 육류가 넘쳐나는 한국에서 왜 스팸이 인기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칼럼도 게재되기도 했다. 스팸의 인기가 이해 안 간다는 인식이다. 한국의 스팸 인식은 왜 햄의 본고장 사람들과 다른 것일까?

◇ 호볼호 적고 보관도 쉬운 ‘만능’ 선물세트

기자는 며칠 전 스팸6호 선물세트를 받았다. 기분이 좋았다. 추석을 앞두고 지인들에게 여러 선물을 받았지만 스팸이 가장 괜찮았다. 받은 선물 중에 스팸이 ‘최고급’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기자와 기자 가족들의 ‘보편적인 만족도’가 높다는 의미다.

선물로 들어온 바디워시는 품질이 좋아 보였으나 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올리브유도 받았지만 우리집은 카놀라유와 아보카도 오일을 쓴다. 백화점 상품권도 받았는데, 아쉽게도 기자는 다른 백화점을 주로 간다. 집에서 걸어서 5분만 가면 주거래 백화점이 있는데 상품권 받은 백화점은 지하철로 2정거장 떨어져 있어서다. 파라솔이 부럽지 않은 커다란 우산은 폭우에도 거뜬해 보였지만, 이미 트렁크에 비슷한 크기 우산이 3개나 있다.

스팸은 그런 ‘호불호’가 없다. 그냥 프라이팬에 적당히 구워 밥에 올려 먹기만 하면 된다. 요리 실력이 형편 없어도 스팸은 구워먹을 수 있다. 깡통햄을 즐겨 먹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 맛이 싫다는 사람은 드물다. 어제는 스팸을 잘게 부숴 고기와 함께 자작하게 끓여 ‘짜글이’를 만들어 먹었다. 인기 요리사 겸 방송인 백종원이 공개해서 유명해진 레시피다.

활용도 높은 반찬이라는 점도 매력적. 유통기한은 무려 2022년 2월까지고, 부피가 작아 보관하기 쉬운데다 냉장고에 넣지 않아도 된다. CJ는 2002년 인기 배우 김원희를 모델로 내세우면서 ‘따끈한 밥에 스팸 한 조각’이라는 카피로 소비자를 공략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스팸은 반찬에 최적화됐다. 미국 오리지널 스팸보다 짠맛이 덜한 자체 레시피로 국내 공장에서 만든다. (기자는 아직도 뉴욕 마트에서 사먹었던 스팸의 충격적인 짠맛을 잊을 수 없다)

◇ 연 매출 4조원 효자 스팸, 매출 60%는 명절 선물

국내 시장에서 스팸 누적 매출액은 2018년 기준 4조원을 넘었다. 200g 캔 기준 약 12억개 규모다. 산술적으로 따지면 모든 한국 사람은 1년에 스팸을 24개씩 먹는 셈이다. 다이어트를 하거나, 가공육을 줄이려는 마음에 스팸을 안 먹는 사람도 있을거다. 그러면 나머지 ‘보통사람’들은 24개보다 더 먹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닐슨코리아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0년 6300억원이던 가공식품 선물세트 시장 규모는 지난해 1조 2000억원으로 늘었다. 8년만에 두배 가까이 성장한 것인데, 가공식품 선호도 1위는 스팸이었다.

스팸 매출의 60%는 명절 선물세트다. 명절마다 스팸은 한우나 자연산 송이버섯 같은 고급 선물들과 함께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진열되어 있다. CJ는 올해 추석 선물세트를 710만 세트 준비했다. 지난해보다 9% 늘어난 숫자다.

추석을 앞둔 9일, 롯데백화점 잠실점 선물세트 판매 직원은 “여러개를 한꺼번에 구매하거나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스팸을 많이 산다”고 말했다. 잠실역 근처 빌라 밀집지역 중소형 마트에서도 선물세트 주력 상품은 스팸이었다. 송파구 삼전동의 한 마트 관계자는 “선물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손님들이 동네 마트에서 급하게 사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 고민 없이 구매하는 세트가 주로 스팸 등 깡통햄”이라고 말했다.

◇ 소비자 "가성비 좋고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기도 편리하다"

이곳에서 선물세트를 고르던 한 소비자는 “수십만원대의 고급 선물도 식성이나 취향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데 스팸은 2~6만원 내외로 편하게 주고받을 수 있으니 가성비가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소비자는 외국계 텍스리펀드 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는 “회사에서 명절 선물세트를 다양하게 받아 봤지만 만족도가 늘 제각각이었다. 취향에 맞지 않는 욕실용품, 안 좋아하는 먹거리를 받아 쌓아만 놓느니 차라리 스팸을 받는 게 가장 깔끔하고 호불호가 덜했다”고 말했다. 이 소비자는 “다이어트 하느라 햄을 먹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도 스팸은 호불호가 덜하니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선물하기 좋았다”고 덧붙였다.

국내 식료품 업계에서 ‘밥반찬’으로 확실히 이미지메이킹 된 스팸은, 호불호가 상대적으로 덜하고 보관이 쉬운 등의 장점을 내세워 명절 대표 인기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기사를 읽은 당신도 지금 주위를 한번 둘러보자. 아마 스팸 선물세트가 하나쯤은 있을테니까,

마지막으로, 기자가 ‘추석이니까 스팸을 취재하겠다’고 했을 때 경제 담당 이승리 기자가 했던 얘기를 소개하며 기사를 마친다.

"좋은 주제네요. 주는 사람은 가격 부담 없어 좋고 받는 사람은 맛있어서 좋잖아요. 스팸 구워서 밥 위에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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