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신문 최송목 칼럼] 바다 위 하늘을 날아다니던 새가 순간 시속 96km로 폭격기처럼 바닷속으로 정어리 떼를 습격한다. 아프리카 케이프타운 서쪽 해안의 작은 섬 버드 아일랜드에 서식 중인 황금 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케이프가넷(Cape gannet)이라는 이름의 바닷새다.

정어리 떼는 물속 돌고래들의 위협에만 정신을 쏟고 있다가 물 밖으로 부터의 갑작스러운 습격에 속절없이 당하고 만다. 바닷속 삶이 전부인 정어리로서는 수면위 하늘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다. 자기와는 무관하다고 여겨 온 예측 불허의 공간으로부터 침입을 받은 것이다.

경영에서도 이런 예측불허의 리스크들이 있다.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고 대책 수립이 가능하다. 예컨대,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본과의 경제전쟁 국면 같은 것이다.

지난달 1일 반도체 제조 공정에 필수적인 3개 품목에 대한 수입규제 조치,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 등은 평소 대일본 관련하여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사항들이다.

평소 당연한 일들이 비정상 일들이 되니까 사업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평소 공기의 중요성이나 리스크를 모르고 지내다가 중국발 미세먼지 소동이 일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도시 전체가 순식간에 7∼8m 높이 재로 덮여 버렸다. 수년전 그 베수비오 화산 폭발 당시의 유물들을 둘러본 적이 있다. 마치 영화 필름이 돌아가다가 순간 멈춤 상태인 듯했다. 이런 갑작스러운 위기에도 사전 신호는 있었다.

당시 2만 명의 폼페이 시민은 몇 번의 경고를 설마 하면서 무시했었다고 한다. 결국 가진 것 없는 노예들은 피난을 떠났지만, 마지막 남은 2,000여 명의 돈, 권력, 명예로 배부른 귀족들과 상인들은 마지막까지 저택을 지키다가 모든 것을 잃었다. 인간의 욕심이 위험 신호를 가린 것이다.

이미 경고된 위험은 더는 위험이 아니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건 준비된 자들의 경우에만 그렇다. ‘위험하지 않은’ 따위의 수식어가 붙는 위험은 없다. 위험은 분명 위험하다. 위험은 항상 징조가 있게 마련이고 예고가 있다. 화산 폭발의 경우, 폭발 1주일 전에는 구름 모양이 달라지고, 동물들이 공포에 떨며, 곤충들이 이동을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조직이 무너지기 전에도 이런 징조가 나타난다. 이를테면, 이직률이 높아지고, 핵심 간부가 퇴사하고, 직원들의 불만도가 높아지면서, 사기가 낮아지고, 긴장도가 떨어져 사소한 사고가 잦아지고, 출퇴근이나 청소 상태가 불량해진다.

이런 위험을 피하는 최상의 방법은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지만, 피할 수 없는 위험이라면 이를 ‘위험 상태’에 두고 관리해야 한다. 공사 현장을 지나는 마음으로 우회하든지, 조심해서 지나가든지 하면서 그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물론 무성한 소문과 공포로만 끝난 사례도 있다. Y2K, 광우병 사건 등이다. 한때 온 나라가 시끌벅적했지만,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 위험에 대비하는 습관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119 화재 신고를 받고,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해서 출동을 결정하는 의사결정 구조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무조건 출동해야 한다. 막연한 낙관과 방심은 엄청난 재앙을 가져온다.

특히 사장 개인의 주관적이고 근거 없는 낙관은 회사와 가족들을 갑작스러운 쓰나미로 몰아넣을 수 있다. 낙하산은 평소에 준비하고 점검하는 것이다. 이번 일본사태는 케이프가넷이 정어리 떼를 습격하는 정도에 비할 바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과거 50년간 지속하여 온 경제성장의 관성과 이웃나라에 대한 믿음에 방심한 탓이 컸을 것이다. 한 번 날아오른 비행기는 반드시 땅 위로 내려와야 한다. 추락할 것인가? 착륙할 것인가? 부디 무성한 논란과 준비로만 끝나기를 기대해 본다.

<칼럼니스트 = 최송목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 (‘사장의 품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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