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가 패키지 여행상품 부실 우려 높아
고객 홍보용 미끼상품, 일부 '불손한' 의도의 여행상품도 존재
소비자와 여행사 모두 울상...정부와 업계 포괄적인 해결책 필요

해외여행객이 늘어나는 만큼 저가항공을 비롯한 항공 전체의 지연·결항 분쟁도 늘어나는 상황이다. (사진=소비자경제)
초저가 패키지 여행상품에 대한 부실 우려가 여전하다. 사진 속 항공기 및 항공사는 기사 특정 내용과 관계 없음. (사진=소비자경제)

[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29만원으로 동남아 3박4일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놀라운 ‘가성비’에 솔깃해 당장 여행상품을 구매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의심을 해볼 수 있다. “그 가격에 전부 다 가능하다고? 옵션 덕지덕지 붙는 거 아냐?” 초저가 패키지 여행상품을 보는 소비자들의 현실적인 시선이다.

‘여행의 취향’이 어떠하느냐와 별개로, 패키지 여행이 가진 매력은 있다. 부모님을 모시고 다닐 때 하루 종일 대중교통 전전하지 않고 여행사에서 짜준 일정 따라 버스 타고 다니면 편리하다. 어린 아이들 데리고 갈 때 복잡하게 스케줄을 짜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패키지 여행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존재한다. 옵션 강요, 쇼핑 강매,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선택 관광, 취소하기 어려운 현지 스케줄 등이다. 헝가리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 사고를 두고 “유람선 탑승 일정을 취소하면 현지 가이드에게 금전적인 손해가 생겨서 섣불리 취소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 '가성비' 따져봐야 하겠지만 싼게 '비지떡'

모든 패키지 여행이 문제인 건 아니다. 업계에서는 초저가 패키지 상품들이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소비자가 여행 상품을 결제하면 국내여행사-현지여행사-가이드가 그걸 나눠 가져야 하는데 애초 상품 가격이 너무 저렴하면 현지여행사와 가이드에게 돌아가는 몫이 적다. 그러다 보니 현지에서 무리하게 소비자들을 상대로 매출을 올리려고 애쓰게 되는 게 문제다.

서울시 관광협회 국외여행업위원회 정해진 위원장은 “서울시 관광협회 회원사가 3000여 곳에 달하는데 요즘 회원사들이 모두 어렵다. 그 이유는 바로 홈쇼핑 등에서 파는 29만 90000원짜리 여행 상품들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해당 상품들은 대부분 미끼상품”이라고 정의했다. “질 좋은 여행상품이 적당한 가격에 제공되어야 하는데, 여행사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제 살 깎아먹기 경쟁에 돌입한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여행업을 오래 영위한 전문 여행사가 아닌 곳에서 파는 여행상품도 문제다. 정 위원장은 이에 대해 “빠른 시간에 매출을 올리고 상장을 통해 주식 차액을 노리는 사람들에게는 초저가 여행상품이 매우 매력적인 매출”이라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홈쇼핑에 초저가 여행상품을 올려놓으면 억단위 매출이 하루 만에 만들어지기도 한다. 불손한 의도를 가지고 여행상품을 파는 사람들을 가려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사실 패키지 여행 시장 규모는 꾸준히 축소되고 있다. 과거에는 해외여행 시장의 40~50%정도를 패키지여행이 담당했으나 지금은 전체 해외여행 시장에서 패키지여행 매출은 약 17% 내외 수준이다. 여행 소비자들이 패키지에 대한 신뢰와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미 오래전부터 퍼져왔던 부정적인 인식과, 해외여행 경험이 쌓이면서 이제는 자유로운 여행을 원하는 추세가 더해져서 생긴 현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소비자경제>와의 통화에서 “초저가 패키지 상품의 최소한 절반 정도가 소비자에게 권하기 어려운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 역시 “초저가 패키지 여행상품을 홈쇼핑이나 인터넷 등에 한 번 올려놓으면 매출이 2억원, 기본적으로 1억원 이상은 올라간다”고 귀띔하면서 “짜깁기한 여행상품으로 매출을 올리고 주식시장 상장을 노리는 ‘기업장사꾼’들이 여행시장을 노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패키지 여행 규모 매년 감소 추세...'질 좋은' 여행 상품 옥석 골라야

초저가 패키지 여행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자는 여행 소비자다. 여기에 패키지 상품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연결되면서 여행사들도 함께 피해를 입는다. 정해진 위원장은 “선진국일수록 패키지 여행 선호도는 매년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며 앞으로 우리나라 여행시장에서도 패키지 시장 규모는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질 좋은’ 여행 상품만 남기고 나머지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정 위원장은 “정당한 요금을 내고 좋은 서비스를 받는 상품, 가성비를 만족 시키면서도 터무니없이 싸지는 않은 내실 있는 상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6일 국회에서 열렸던 패키지여행 관련 토론회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 관광기반과 최현승 과장이 “안전문제나 소비자 만족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품질인증제도 등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내놨다.

패키지 여행 비율이 줄고 자유여행이 늘어나는 것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시장의 공통적인 추세다. 일본 여행시장도 과거 지금의 우리나라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일본은 대형 여행사들과 소규모 여행사들이 각각 주요 취급 상품을 차별화하는 등 여러 방안을 마련했고 지금은 약 7천개 정도의 여행사가 각자 안정적인 방식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모든 일정을 ‘풀 패키지’로 구성하지 않고 유동적인 프로그램으로 상품을 만드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외국 사례를 보면, 짧은 기간 동안 여러 나라를 방문하는 패키지보다는 일주일에 도시 2개 정도만 방문하고 오전은 프로그램, 오후에는 자유시간 등으로 큰 틀에서의 동선만 짜주는 패키지들이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국내 여행사에서도 위와 같은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초저가 패키지 여행에 대한 규제 등 제도적 장치 마련도 필요하다. 국내 여행사와 현지 여행사에 불공정한 거래관행이나 소위 ‘갑을’문화가 존재하지는 않는지, 여행 프로그램이 최초 계약 내용과 부합하게 운영되는지 등을 꼼꼼하게 체크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울러, 패키지 여행 상품의 수익구조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도 필요하다.

대다수의 소비자들에게 해외여행은 중요한 연례행사다. 모처럼 시간을 내어 가까운 사람들과 소중한 추억을 쌓아야 할 귀한 경험이다. 내실 있는 여행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업계와 정부, 관련 기관의 순조로운 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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