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고백하자면, ‘일본 여행 많이 가본 사람’ 순서로 줄 세우면 기자는 아마 대한민국 상위 1% 안쪽에 포함될거다.

기자는 일본 지하철 교통카드와 프랜차이즈 커피숍 충전식 선불카드를 가지고 있다. 평소 자주 오갔기 때문에 그걸 사서 다니는 게 이익이었다. 신주쿠에서 오다이바에 가려면 뭘 타야 가장 빠른지, 시부야나 긴자에서 가장 핫한 식당이 어딘지, 도쿄 한복판에서 한국식 떡볶이나 핫도그가 먹고 싶으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빠삭했다. 한국 관광객이 아무도 안 찾아왔을 것이 분명한 뒷골목 맛집들도 수십개쯤 이름을 댈 수 있다.

부끄럽다. 후회하고 반성한다.

현대사에 관심 많다고 자부했으면서 징용공 문제에 관해서는 관심이 덜했다. 건강을 생각할 나이라며 ‘깡소주’ 대신 맥주를 마셨지만, 후쿠시마 농산물이 어디로 어떻게 유통되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3.1절 즈음에는 독립운동에 관한 기획기사를 쓰고, 8.15 즈음에는 기업들이 소비자의 애국심을 어떻게 마케팅에 활용하는지 조사했으면서 일본 제품에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기자는 ‘정치적 이슈를 경제 논리로 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에 어중이 떠중이 죄다 나서서 한마디씩 거드는 것도 사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 것을 빼앗겠다고 달려드는 사람 앞에서 가만히 앉아 그걸 빼앗기는 건 싫다. ‘우리 편’에게 린치를 가하는 상대방을 가만히 두고 보는 것도 싫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없는데 그 과거를 애써 먼저 용서할 마음도, 강해 보이는 상대에게는 굽신대면서 이길 것 같은 상대에게는 뻣뻣하게 구는 오만함에 지레 굴복할 마음도 없다.

이런 마음을 이제야 느끼고 깨달았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부끄럽고 조상들에게 죄스러울 뿐이다.

일본에 가지 않겠다. 시부야에서 규카츠 먹는 대신 평창 가서 한우를 굽겠다. 모토마치에서 차슈라멘 먹는 대신 군산 가서 해물짬뽕을 먹을거다. 산토리 하이볼에 쯔쿠네 먹던 습관을 버리고 이번 휴가 때는 광주에 가서 상추튀김에 소맥을 마실거다. 오키나와 아이스림? 필요없다. 제주도 가서 한라봉라떼를 먹는 게 더 좋다.

“한국인들의 불매운동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일본 기업인의 발언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잘못봤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수백만명이 광장에 모여 폭발한 게 ‘한국인’이다. 3.1운동도 4.19도 5.18과 서울의 봄도, 그리고 2002월드컵도 모두 그랬다. 효순이와 미선이를 추모할 때도, 대통령을 탄핵할 때도 그랬다. 리더의 명령에 물불 안 가리고 복종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실현하려는 ‘한국인’ 개개인이 스스로 들불처럼 들고 일어선거다.

역사적으로 그래 본 경험이 없는 일본은 아마 이해 못할거다. 소비자의 자발적인 의지와 힘이 모이면 그 폭발력이 얼마나 단단하고 무서운지 말이다. 기자는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싸움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익명 뒤에 숨을 마음도 없다. 그러므로, 생각 없이 일본 여행 다니던 나의 과거를 반성하고 ‘기해왜란’에 참전한다.

국내 산업의 약점을 노려 경제적 공격을 먼저 감행해놓고 “한국인의 불매운동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며 조롱한 오만함에 대한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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