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돋보기 #②김택진] 대한민국 원조 스타트업…판교밸리 이끄는 ‘형님 리더십’
[CEO돋보기 #②김택진] 대한민국 원조 스타트업…판교밸리 이끄는 ‘형님 리더십’
1세대 벤처기업가 겸 스타트업 리더이자 IT업계 마당발
실무경험 바탕으로 임직원들과 끝없이 소통, 또 소통
32세에 리니지 출시...‘큰형’리더십으로 20년 넘게 롱런 중
  • 이한 기자
  • 승인 2019.07.24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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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진 대표가 리니지M 서비스 1주년 미디어 간담회 'YEAR ONE'에서 키노트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는 소통에 능한 '형님 리더십'으로 엔씨소프트를 이끌었다. 사진은 리니지M 서비스 1주년 미디어 간담회 당시 모스 (사진=엔씨소프트 제공)

[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국내 주요기업 CEO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경영권을 승계받은 3~4세거나 자수성가한 1세대 벤처사업가, 또는 평사원으로 입사해 경영진까지 오른 ‘월급쟁이’ 출신 입지전적인 인물. 엔씨소프트 CEO 김택진은 테헤란밸리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1세대 국내 스타트업 기업가다. 90년대 후반 벤처붐과 IT업계의 중흥을 이끈 선구자다. 

최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우리나라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주요 기업인과 만났다. 손정의 회장과 만난 기업인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구광모 LG 회장 등 국내 대표 재벌가 3~4세 들이었다. 김택진은 테헤란밸리 출신 판교 기업인으로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모임에 참여했다.

업계에서는 손정의 회장이 AI 분야에 관심이 많고 김택진 대표도 평소 AI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터라 그 부분에서 정서적 교집합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같은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인연이 이어질 수는 없다. 거물간의 만남이 성사되려면 소위 '급'이 맞아야 한다. 김택진 대표가 국내 산업계에서 갖는 상징적 의미와 위치가 잘 드러난다.

◇ 테헤란 벤처붐 이끈 IT업계 마당발

김택진과 엔씨소프트의 역사는 대한민국 게임산업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엔씨소프트는 1997년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게임 제작사가 아니라 인터넷 기반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이었다. 이들은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와 제휴해 그룹웨어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인터넷 기반 PC통신 서비스 ‘넷츠고’도 제작한 바 있다.

김택진은 서울대학교 컴퓨터 연구회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1989년 이찬진 드림위즈 사장을 만나 ‘아래아한글’을 공동 개발한 이력이 있다. 이후 병역 특례로 현대전자 보스턴 연구개발센터에서 근무했다.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김택진을 두고 “주목할만한 젊은이”라고 평가했다는 일화도 있다.

현대전자를 퇴사한 김택진은 엔씨소프트를 창업했고 이때부터 게임으로 눈을 돌렸다. 사람들이 인터넷의 기능과 확장성에서 가능성을 볼 때 김택진은 게임이 주는 즐거움에 주목했다. 김택진 대표는 과거 서울대학교 강연에서, “사람들이 인터넷을 정보의 망으로만 생각할 때 나는 ‘엔터테인먼트의 망’으로 보았다”고 말한 적 있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놀 수 있는 즐거움과 문화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는 얘기다. 김택진 대표는 인터넷 게임이 하나의 플랫폼이 되는 것을 상상했다.

새로운 사업을 물색하던 김택진 대표는 현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대표를 만나 의기투합했고 두 사람은 리니지를 세상에 내놨다. 대한민국 온라인 게임 산업의 전성기를 연 리니지는 1998년 9월 상용화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성공을 통해 엔씨소프트의 폭발적 성장을 견인하게 된다. 리니지를 출시했을 때 김택진 대표의 나이는 고작 32세였다.

이러한 이력 덕분일까. 김택진은 국내 IT 및 게임 업계에서 대표적인 마당발로 통한다. 창업 이전부터 이어진 관계들도 깊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김정주 NXC(넥슨 지주사) 대표, 김범수 카카오 의장과는 서울대 공대 동문사이다. 김택진은 전자공학과 85학번으로, 컴퓨터공학과 86학번인 이해진 김정주의 1년 선배다. 산업공학과 86학번 김범수 의장과는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녔다.

이들이 1990년대 후반 테헤란로에서 일으킨 벤처 붐이 현재 대한민국 IT 게임 업계의 뿌리다. 이들이 테헤란로에 뿌린 씨와 판교에서 거둔 열매가 최근의 스타트업 생태계로 이어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IT업계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벤처열풍과 닷컴버블의 성공 및 실패 경험들이  지금의 IT 및 스타트업 환경의 뿌리가 됐다"고 말하며 "김택진 대표는 그 시대 한 가운데를 지나온 의미가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리니지2M 영상. (사진=오아름 기자)
리니지는 대한민국 게임사의 큰 이정표로 남았다. 사진은 리니지 2M 발표 당시 모습

◇ 32살 사장님 출신, 택진이 형의 ‘형님 리더십’

게임업계에서 김택진 대표를 부르는 별명 중 하나가 ‘택진이 형’이다. 그의 경영 스타일이 ‘형님 리더십’에 기반한 것을 긍정적으로 표현한 단어다. 김택진은 기업 CF에 익살맞은 모습으로 등장해 소비자와 만난 경험도 있고, 임직원들과 수평적으로 소통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 대표는 다른 게임사 창업주들과 달리 전문 경영인에게 CEO 자리를 넘기지 않고 현재까지 기업을 직접 진두지휘 중이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다른 1세대 벤처 기업가들이 의장 등의 직함과 함께 경영 일선에서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 달리, 김택진 대표는 여전히 최일선에서 프로젝트를 지휘한다”고 말했다.

엔씨소프트 한 고위 임원은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평소 대표와 굉장히 많은 논의 및 상의를 한다”고 언급했다. 이 임원은 ‘디스커션(discussion)’이라는 영어 단어를 사용했다. “대표이사와 이렇게 많은 디스커션을 하는 회사에서 일해본 경험이 과거에는 없었다”는 것이 그의 귀띔. 상명하복식 의제전달이 아니라 담당자가 의견을 내면 대표가 그에 대한 여러 코멘트를 덧붙이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의견을 수평적으로 주고받는다고 했다.

‘간부급 임원이니 CEO가 상대적으로 덜 어렵게 느껴져서 그런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직급이 평사원에 가까운 또 다른 엔씨소프트 관계자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이 관계자는 “상급자가 ‘나도 해봐서 다 안다’는 마인드를 가지면 자칫 독선으로 흐를 수 있는데, 김택진 대표는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준다”고 말했다.

수평적인 리더십은 회사의 성과로 이어졌다. 엔씨소프트의 2018년 매출은 1조 7151억 원, 영업이익은 6149억 원이다. 매출이 2017년 대비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5% 상승했다. 엔씨소프트의 올해 매출은 1조 8290억 원 규모로 예상된다. 신작 모바일게임, '리니지 2M'의 흥행과 높은 해외 성장성에 대한 기대감 덕이다.

김택진은 과거 리니지 게임과 엔씨소프트를 목성탐사선 보이져 1호에 비유한 바 있다. 목성과 토성을 탐사하기 위해 지구를 떠났지만 태양계 바깥까지 나아가 성간 여행에 진입한 것처럼, 리니지 역시 첫 출발 이후 긴 성과를 이어오고 있다는 평가였다. 이 발언을 한 것이 2015년 12월, 리니지 17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였는데, 그로부터 3년 반이 훌쩍 지난 지금도 리니지의 성공스토리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글로벌 게임을 서비스하고 창업 20년만에 프로야구단과 사내 대학까지 갖춘 거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 출발은 스타트업이었다. 앞으로는 모바일과 AI 등에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갈 계획이다. 새로운 도전을 앞둔 엔씨소프트와 김택진 대표의 성과와 향후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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