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기자는 금연중이다

마지막으로 담배를 피운 게 2005년 추석이니까 현재 14년째 담배를 참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가끔 담배 생각이 난다. 담배를 끊기 어려운 이유는 그만큼 내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흡연자들은 알겠지만 담배는 팔방미인이다. 화가 났을 때 피워도 좋고 기분이 좋을 때 피우면 또 그것대로 좋다. 여기 저기 다 어울린다는 의미다.

짜장면을 먹었을 때, 술을 마셨을 때, 심심할 때, 머리가 복잡해서 정돈이 안 될 때도 담배의 도움을 받았다. 화장실에 다녀와도 꼭 담배와 함께 해야 개운하다는 사람,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한 대 피워야 된다는 사람도 있었다.

긴장을 풀어야 할 때도, 무언가 긴 프로젝트가 끝나서 모처럼 긴장이 탁 풀렸을때도 담배를 꺼냈던 기억도 난다.

담배에는 니코틴과 타르가 들어있다. 그래서 몸에도 나쁘다. 흡연자들도 다 안다.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왜 담배를 피울까. 아마 담배가 주는 만족감이 단순히 그 물질을 흡입하는 것 만으로 생기는게 아니어서인 것 같다.

담배를 피우는 것은 습관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름의 의식이기도 하다. 담배를 피우려면 라이터 부싯돌을 '틱틱' 돌려 불을 피우고, 바람 등지고 서서 손으로 불을 보호해 담배에 붙인 다음 깊게 빨아들이면서 본격적으로 태워야 한다. 그렇게 불을 피운 다음 깊게 들이마셨던 첫 연기를 밖으로 후~하고 내뿜을때 생기는 묘한 만족감과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담배를 피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담뱃불을 붙는 것 역시 중요하다. 흡연자들은 담뱃불을 서로 붙여주며 '썸'을 타기도 하고, 상사에게 아부도 하고, 친구와 우정도 되새긴다. 생면부지의 사이인데도 불을 붙여주거나 담배를 빌려주는 행위로 든든한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영화 <신세계>에서 최고의 대사로 꼽히는 장면도 "거기, 누구 담배 있으면 하나만 줘 봐" 아니던가. 그 과정에서 흡연자들은 담배가 삶의 한 부분이 된다. 그러다보면 라이터 수집욕이 생기기도 하고, 커피나 와인과 꼭 함께 하는 등의 특별한 취향이 생기기도 한다.

최근 전자담배가 이슈다. 기자는 전자담배를 보며 늘 궁금했다. 전자담배를 피우는 것이 진짜 담배와 똑같은 수준의 만족감을 줄까? 그러니까 ‘전자책에는 없는 종이책 특유의 질감’ 또는 ‘디지털 음원과는 다른 LP나 카세트테이프의 아날로그 감성’ 같은 것들이 아쉽지 않느냐는 궁금증이다.

국내 담배회사에서 마케팅 관계자이자 본인 역시 흡연가인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 세대는 담배에서 느끼는 아날로그 감성이나 추억이 있다. 영화 ‘비트’에서 정우성이 담배 물고 오토바이 타는 장면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요즘 젊은 친구들은 다르다. 담배에서 굳이 아날로그 감성을 찾지 않아도 되는 세대다. 편하게 피울 수 있는 전자담배를 확실히 더 선호한다. 언제가 될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전자담배가 기존 담배를 많이 대체할 것 같다. 실제로 담배회사도 전자담배 관련 사업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기자는 한때 잡지사에 몸 담은 적이 있다. 그곳의 상사들은 기자에게 항상 ‘앞으로 종이책의 시대가 가고 전자책으로 모두 대체될 것’이라고 했다. 한편에서는 ‘그래도 종이책 특유의 매력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했다. 전자책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할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나 다 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얼마나 많은 종이책이 사라질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앞으로 모든 담배가 사라지고 전부 전자담배를 들고 다니는 세상이 올까? 만일 그렇다면 불쾌한 냄새가 나지 않아 간접흡연의 폐혜가 줄어들고, 하루에 수억개씩 쌓이는 꽁초가 사라져 환경에도 좋을 것이다. 소비자들이 갖고 다니기도 편하고 라이터를 사지 않아도 되어서 편리할테다.

하지만 정말 바람을 등지고 라이터 불을 ‘틱틱’ 켠 다음 한 모금 쭉 들이마시는 전통적인 담배의 느낌, ‘야 불 있냐?’라는 말 사이에 숨은 흡연자들의 묘한 동질감 같은 것들이 모두 사라져도 상관없을까? "지금과 같은 형태의 담배가 카세트테이프처럼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도 상관 없느냐"는 질문이다. 흡연자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노파심에 한 마디 덧붙이자면, 이 기사는 담배광고가 아니다. 담배가 몸에 나쁘지 않으니 피우라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앞으로 담배가 나아갈 방향이 어디인지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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