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소비자 마음 사로잡은 디즈니와 나이키
과거의 여성상 탈피 2019년 新여성 모습 제시

여성을 꽃이 아니라 권투선수로 묘사한 나이키 동영상 광고 (사진=유튜브 캡쳐)
여성을 꽃이 아니라 권투선수로 묘사한 나이키 동영상 광고 (사진=유튜브 캡쳐)

 

[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광고나 마케팅 업계에는 매년 유행하는 키워드가 있다. 최근에는 ‘욜로’나 ‘워라밸’ 또는 ‘소확행’이나 ‘가심비’라는 단어가 핫이슈였다. 올해의 키워드는 ‘나나랜드’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소비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최근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마케팅 키워드가 하나 있다. 바로 ‘여심’이다.

여성 소비자를 공략하는 시도는 사실 새로운 경향이라고 보기 어렵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던 30년 전 광고 카피도 여심을 공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심을 공략하는 방법이 달라졌다는 거다. 요즘 기업들은 여성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려고 할까. 디즈니와 나이키가 그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왕자만 기다리던 공주에서 벗어나 주체적 여성으로 변신

“내가 왜 당신에게 나를 증명해야 하지?”
영화 <캡틴 마블> 주인공 여성이 자신의 스승에게 던진 대사다. 더 이상 남자의 눈에 드는 방식으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영화 속 여성 캐릭터가 남성 스승에게 던진 이 메시지는 과연 단편적인 장면이거나 우연의 일치일까. 그렇지 않다.

디즈니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이 커다란 변화를 맞고 있다. 왜 디즈니를 콕 짚어 얘기하는지는 잠시 후에 따로 언급하겠다. 요즘 가장 핫한 영화 중 하나인 <알라딘>을 보자. 공주 쟈스민은 영화 속에서 아버지의 나라를 노리는 악역 신하에게 당당하게 맞선다. 결국 쟈스민은 술탄이 된다. 그런데 이 장면은 원작 애니메이션에는 없었다. 원작에서는 알라딘과 지니가 위기에 빠진 공주를 구해준다. 하지만 쟈스민이 스스로의 힘을 믿으며 신하와 맞서려는 장면은 실사 영화에서는 하이라이트 장면이 됐다. 

<토이스토리4>에 등장하는 캐릭터 보핍도 주목하자. 보핍은 영화 속에서 주인의 품을 떠나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캐릭터다. 주인에게 헌신적인 우디에게도 ‘타인에게 종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라’고 제안한다. 허리 꽉 죄는 원피스를 입었던 전작의 여성 캐릭터와 달리 보핍은 편안한 바지에 소위 ‘탈코르셋’ 복장으로 요즘의 여심을 대변한다. 보핍 캐릭터 스틸컷이 공개됐을때, 온라인 여성 관련 동호회 게시판 등에는 "디즈니가 시대의 변화를 정말 잘 읽었다"는 칭찬글이 쏟아졌다. 디즈니가 인수한 마블은, 지난 2018년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여성 히어로 이름을 영화 제목에 넣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앤트맨과 와스프)

이쯤 되면 노린 거다. 전통적인 ‘디즈니 공주 스타일 여주인공’ 캐릭터의 적극적인 변화다. 과거 잘생긴 왕자에게 은혜 입고 구원 받았던 신데렐라나 라푼젤, 남자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인어공주, 주인공 여자친구에 불과했던 쟈스민이 전통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이야기의 중심에 선 것. 누군가의 여자가 되는 것으로서 해피엔딩을 묘사했던 디즈니식 스토리텔링에 큰 변화가 생겼다.

영화계에서는 올해 개봉 예정인 <라이온킹> 실사판 영화에서도 암사자가 중요한 역을 맡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특히 세계적인 팝스타 비욘세가 암사자 닐라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만큼 비중이 적잖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알리딘'의 공주 쟈스민은 원작의 여성상과 비교해 훨씬 더 주체적이고 강인한 캐릭터로 성장했다 (사진=네이버 무비 '알라딘' 스틸컷)
'알리딘'의 공주 쟈스민은 원작의 여성상과 비교해 훨씬 더 주체적이고 강인한 캐릭터로 성장했다 (사진=네이버 무비 '알라딘' 스틸컷)


“네가 원하는 것을 바꾸지 마, 세상을 바꿔버려”

주체적인 여성을 광고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글로벌 기업이 또 있다. 나이키다.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 편에서 나이키는 여성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꿨다. 과격한 운동 등에 열중하는 여성의 모습을 전통적인 과거의 여성상과 빠르게 교차 편집한 동영상 광고다. 부엌에서 냄비에 물을 팔팔 끓이던 여성이, 알고 보니 요리를 하는 게 아니라 태권도용 마우스피스를 삶고 있는 장면이 광고의 백미였다.

이 광고를 기획한 나이키코리아 브랜트 허스트 상무는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스스로의 삶을 살고자 하는 젊은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규범, 기대치 등 크고 작은 장벽에 부딪힌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하면서 “한국 젊은 여성들은 자신들이 이미 위대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나이키는 이 고정관념을 광고로 깨트렸다. 마이클 조던 등 세계적인 남성 스포츠 스타를 앞세웠던 과거와 비교하면 분명한 차별화가 느껴지는 광고다.  

디즈니의 스토리텔링과 나이키의 광고는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숫자로 정량화 할 수는 없으나, 일단 여성 소비자들의 여론은 좋다. 원작 알라딘을 여러 번 보고 최근 실사영화도 봤다는 한 여성 관객은 “원작의 술탄은 카리스마 없는 주책바가지, 쟈스민은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알라딘의 구원을 받는 여자였다”고 전제하면서 “실사영화 속 술탄은 근엄하고 당당한데, 자스민은 결국 그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 후대 술탄이 되는 모습이 짜릿했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 관객은 "토이스토리4도 보핍 캐릭터에 주목해서 보고 싶다"는 의견을 밝혔다.

나이키는 최근 국가대표 여자축구선수 지소연을 모델로 “네가 원하는 것을 바꾸지 마, 세상을 바꿔버려”라는 카피의 대형 광고판을 강남 한복판에 세웠다. 이 광고는 아름다운 여성의 외모를 부각시키고 “예쁘면 DA야”라는 카피를 얹은 모 성형외과 광고와 대비되면서 화제가 됐다. 트위터 등을 통해 해당 광고사진들이 공유되자 네티즌들은 일제히 나이키의 마케팅을 칭찬하고 해당 성형외과 광고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최근 사회적으로 일고 있는 ‘젠더 이슈’와 맞물려 나이키의 광고는 많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광고에서 소비되는 여성의 이미지에 대해 소비자들이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과거에도 ‘여심’을 공략하는 마케팅은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묘사되는 이미지는 남성에게 예쁨 받거나, 가족을 위해 헌신하거나, 사랑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심을 자극하는 방법이 바뀌었다. 기업은 주체적으로 삶을 이끌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여성의 모습으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앞서 언급한 '나나랜드'와 '여심'을 조합하면 결국 한 문장이 된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사는 여성' 디즈니와 나이키는 그 이미지를 앞세워 소비자와의 접점을 늘려가고 있다.  

최근 인터넷에서 이슈였던 사진. 나이키와 한 성형외과 광고의 메시지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최근 인터넷에서 이슈였던 사진. 나이키와 한 성형외과 광고의 메시지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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