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기자는 먹는 걸 좋아한다.

버는 돈의 대부분을 먹고 마시는데 쓴다. 유행하는 먹거리에도 관심이 많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도레도레’ 무지개 케이크도, 몇 년 전 가로수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아사이 보울’도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줄 서기 전에 가서 먹어보았다. 요즘 SNS에 인증 열풍이 부는 흑당라떼나 에그드랍, 대만샌드위치도 몇 달 전에 이미 다 먹어봤다.

기자가 미국과 일본에 여행 가서 가장 부지런히 찾아간 곳은 (지금은 국내에 상륙했지만) 우리나라에 매장이 없는 인기 카페 ‘블루보틀’이었다. (역시 그 시절에는 없었던) ‘쉑쉑버거’를 먹고 인증샷을 SNS에 업로드할때 기분이 너무 좋았던 기억도 난다. 도쿄 하라주쿠에 갈 때마다 늘 먹던 디저트 ‘자쿠자쿠’가 롯데월드타워에 매장을 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미리 먹어봤다는 뿌듯함'과, '나만 아는 브랜드가 널리 알려지는 게 괜히 싫어서' 복잡하고 묘한 감정이 들었다. 기자가 수개월 전에 이미 가봤던 식당이 ‘1박 2일’에 맛집으로 소개될 때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이 얘기를 굳이 길게 하는 이유가 뭐냐면, 유행하는 먹거리에 이토록 관심 많은 기자가 아직도 못 먹어본 게 있어서다. 바로 KFC ‘닭껍질튀김’이다. 이미 먹어본 지인이 고생담(?)은 들려줬다. 매장 오픈 후 20분 지나 줄을 섰는데 대기번호가 796번이었고,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튀김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닭껍질튀김은 2800원짜리 사이드 메뉴에 불과한데, 도대체 왜 이렇게 인기일까.

시작은 이랬다. 이 제품은 KFC코리아에서 ‘치맥’관련 사이드메뉴로 구상하고 출시 일정을 저울질하던 제품이었다. 그 와중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출시된 동명 제품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고, KFC 고객센터에 출시 요청 글이 올라오는 등 소비자들의 요구가 이어졌다. 결국 6개 매장에만 한정 오픈했다.

닭껍질튀김 인기 이면에는 최근 산업계 전반을 관통하는 몇 가지 키워드가 관찰된다. ‘소비자와의 소통’ ‘인기제품의 현지화’ 그리고 ‘한정판 마케팅’과 ‘온라인 바이럴’ 이다.

출시 과정을 짚어보자. 해외에서 제품을 이미 맛본 소비자들이 본사에 제품 출시를 요구했고 KFC가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고객센터 게시판에 출시 요청 글이 300여건, 출시 관련 문의전화가 200여 통 걸려왔다고 한다. KFC는 고객의 요청을 받아들여 제품 출시를 서둘렀다. 기업이 개발해 소비자에게 소개한 게 아니라, 소비자가 요청해 기업이 내놓은 것에 가깝다.

인도네시아 현지 닭껍질튀김은 고유의 향신료를 쓴다. 그러나 국내 출시 제품은 이 향신료 대신 ‘오리지널 치킨’베이스 양념을 그대로 적용했다. 소비자들은 “외국에서 먹은 맛과는 다르지만 기름지고 고소해서 중독성이 있다”고 호평했다. 해외 인기 제품이라는 사실만 믿고 그 맛 그대로 출시했으면 지금의 열풍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6개 매장에서만 오픈한 것도 눈길을 끈다. KFC는 소비자들의 반응을 미리 살피는 ‘팝업스토어’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제품 공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져 물량 공급이 충분하지 않아 전국매장으로 확대하기는 어렵다’는 설명도 덧붙인 바 있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 또는 정해진 장소에서만 구매할 수 있다’는 전략은 B2C 마케팅의 오랜 기법 중 하나다. 6개 매장에서만 팔기 때문에, 900개 내외로만 팔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더욱 애타는 마음으로 기꺼이 줄을 서고 지갑을 열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닭껍질튀김을 ‘득템’한 소비자들은 곧바로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로 향한다. 그들은 남보다 먼저,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는 걸 인증하고 ‘좋아요’를 받는다. 실제로 포털사이트 네이버에는 닭껍질튀김 후기가 수십페이지를 넘고 유튜브 역시 마찬가지다. 블루보틀과 쉑쉑버거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고 뿌듯해했던 기자처럼, 요즘 소비자들은 자신의 소비가 다른 사람과 차별화된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바이럴’에 나선다. 기업이 돈 들여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소비자들이 알아서 입소문을 내주는 것이다.

선풍적인 인기 덕분에 KFC는 27일부터 판매점을 19곳으로 늘리기로 했다. 혹시, 앞으로 또 늘어나지 않을까? 마케팅 전문가들이나 외식업계 담당자들은 “아마 그럴 것”이라는 대답을 내놨다. 닭껍질튀김은 2019년 6월 현재 산업과 마케팅, 소비심리의 주요 키워드를 모두 보여주는 상징적인 제품이 됐다.

그런데, 당신은 닭껍질튀김을 먹어보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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