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 따라 커피 맛과 향이 달라지듯 쌀도 그렇다
과자 성분표는 보면서, 쌀은 왜 브랜드만 보고 구매하나요?”

[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소비자경제에서는 ‘소비자와 적극 소통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고, 그 제품으로 대기업 위주의 판을 뒤흔든 CEO 스토리를 연재한다. 이른바 <소소하고 놀라운 CEO> 스토리이다. [편집자주]

'그림책을 파는 쌀가게' 동수상회 박동수 대표와 이은화 매니저
'그림책을 파는 쌀가게' 동수상회 박동수 대표와 이은화 매니저

원두 종류에 따라 커피 맛이 달라지듯, 밥맛도 쌀의 품종에 따라 질감과 향, 그리고 맛이 달라진다. 국내에서 재배되는 쌀 품종은 300여 가지에 이르지만, 대부분 혼합미라는 이름으로 섞여 유통되기 때문에 그 맛을 구분하기 어렵다. 동수상회는 국내에서 재배되는 단일품종 쌀 중 품질 좋은 제품을 엄선해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소량포장 판매하는 가게다. 매일 신선하고 맛있는 밥을 먹자는 취지다.

이곳은 디자이너 겸 문화기획자 출신 박동수씨가 대표, 전시기획자 출신 이은화씨가 매니저다. 디자인과 쌀, 얼핏 교집합이 없어 보이는 두 가지 아이템은 어떻게 연결된 걸까.

동수상회는 그냥 쌀 가게가 아니다. ‘그림책이 있는 쌀집’이다. 쌀만 파는 게 아니라 어른을 위한 동화책도 판다. 몸을 키우는 양식과 마음의 양식이 같은 공간에 있다는 취지다. “식문화와 예술을 결합한 사회적 상품을 팔겠다”는 원대한 포부도 있다. 이들 부부는 입맛 따라 쌀이 소비되지 못하고 규격화된 제품으로만 유통되는 문화를 바꾸고 싶어했다. 자신들이 생각한 그 가치를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어했다. 

이 신기한 쌀가게가 ‘소소하고 놀라운 CEO’의 두 번째 주인공이다.

‘창업’ 전 얘기부터 한번 해보자. 디자이너가 왜 쌀에 주목했나

먹는 것을 빼고 삶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식사는 누구나 하루에 세 번씩 경험하는 기본적인 삶의 요소다. 문화를 다뤄왔던 사람으로서, 예술과 먹거리를 한번 연결해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 지점에서 한국 밥상의 기본인 쌀에 주목했다.

단일품종 쌀을 소개하자는 생각은 어디서 시작된건가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쌀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곡종합처리장에서 정책적으로 쌀을 공급하니까 구조적으로 단일품종 쌀이 유통되기 어렵다. 소비자들에게 진정한 쌀 맛을 느끼게 해주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품종 얘기를 하는 이유는, 커피가 원두 종류 따라 맛이나 향이 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인가

그렇다. 다만 한 가지 전제할 것이 있다. 혼합미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이론적으로도 혼합미가 맛있다. 내가 본 문제의식은, 농사짓는 분들조차 자신이 어떤 품종을 짓는지 모르시는 경우가 있더라. 한 논에 4~5개 품종을 섞어 재배하고 수확 후에는 그대로 종합처리장 가서 모두 섞여버린다.

'모두 섞여버리는 것'에 어떤 문제가 있는건가

물론 혼합미도 맛있다. 다만 전제조건이 있다. 적당한 품종을 적절한 비율로 배합했을 때 맛있다. 하지만 단일품종은 쌀의 ‘온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지점은, 단일품종을 본인 취향 따라 2가지 이상 섞어 먹을 수도 있다. 각자의 취향이나 입맛 따라 쌀이 소비되지 못하고 규격화된 제품으로만 유통되는 문화를 바꿔보고 싶었다.

당신들도 한 사람의 소비자였는데, 시중에 유통되는 쌀에 대한 아쉬움이나 불만이 있었다는 의미일까

다양한 쌀을 먹어보고 내 입맛에 맞는 쌀을 찾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소비 패턴에서의 불만도 있었다. 쌀을 소비하는 습관을 생각해보자. 보통 20Kg짜리 하나 사서 몇 개월씩 먹다가 보관 잘못해서 벌레 생기고, 냉장 보관 해도 맛이 떨어지는 경험이 다들 있을거다. 우리도 거기서 문제의식을 느꼈다.

문제의식을 갖는 것과, 그것을 실제 창업으로 연결 하는 것은 굉장히 다른 얘기다. 용기와 기획력, 그리고 비용이 필요한 일이니까. 어떻게 그게 가능했나 

기본적으로 주변에 적당한 자원들이 갖춰져 있었다. 아버지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셨고, 인테리어와 디자인은 과거 일면서 쌓인 지인 네트워크가 있어 충분히 활용했다.

쌀 얘기를 조금 더 해보자. 일단 가장 궁금한 건, ‘단일품종 쌀이 혼합미와 비교했을 때 정말로 더 좋으냐’ 하는 부분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단일품종은 뭐가 좋은건가

모든 단일품종이 다 맛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본인 취향에 맞는 쌀을 골라 먹어보자는 취지다. 우리가 주목한 것은 삼광미다. 세 번 빛이 난다는 의미다. 처음 벼가 일 때, 도정할 때, 밥 지을 때 빛이 난다는 뜻이다. 삼광미로 밥을 하면 부드럽고 찰진 식감을 느낄 수 있다. 반대로 신동진이라는 품종도 있는데 이 쌀은 고들고들한 밥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유명한 볶음밥 맛집은 고슬고슬한 식감을 위해 대부분 신동진을 쓴다는 얘기도 있다. 소비자 스스로가 어떤 취향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취향에 맞는 쌀 소비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게 문제다.

이렇게 물어보자. 소비자들이 ‘좋은 쌀’을 어떻게 고를 수 있나

손님이 매장에 와서 ‘뭐가 좋아요?’라고 묻는다. 그러면 우리는 취향이 어떠한지 물어본다. 고들한 밥을 좋아하는지, 잡곡이 좋은지, 요즘은 향이 나는 쌀도 많은데 그런 건 어떤지 물어본다. 그런 취향에 따라 추천한다.

자신의 취향을 쌀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예를 들면 녹미나 적미 같은 쌀들이 있다. 현미의 일종인데 식감이 좋다는 사람도 있고 거칠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부드러운 밥맛에 익숙한 소비자들에게는 추천하지 않고 잡곡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추천한다. 골든퀸3호라는 품종도 있다. 이 쌀은 밥을 지으면 누룽지향이 난다. 골든퀸을 삼광과 섞으면 향과 찰기를 느끼는 밥이 되는 식이다.

내가 어떤 스타일의 밥을 좋아하는지 생각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맞다. 그 다음에는 쌀을 살 때 꼭 뒷면을 보는 게 좋다. 과자 하나, 음료수 하나를 살 때도 성분표를 보는데 쌀은 그냥 브랜드만 보고 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합리적인 소비, 똑똑한 소비를 외치는 사람이 많은데 쌀도 그런 소비가 필요하다.

‘그림책을 파는 쌀집’이라는 콘셉트도 인상적이다. 두 아이템의 조화는 어떻게 구상했나

쌀은 양식이고 책은 ‘마음의 양식’이어서 둘을 엮어봤다(웃음). 쌀은 누구나 쉽게 접한다. 그림책도 쉽다. 다만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도 많다. 우리 어른들이 마음의 양식까지 같이 채워보자는 의도였다. 앞으로는 이 공간에서 예술가와 작가들이 소비자들, 동네 직장인들과 만나는 프로그램도 기획할 예정이다.

디자이너, 문화기획자, 전시기획자로 일한 경험이 아이템 구상에 도움이 됐을 것 같다

쌀을 식재료로만 보지 않았다. 산지에서 양심적인 농부를 찾아 그 사람이 생산한 쌀을 도시의 소비자에게 잘 연결해주는 것으로만 그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이미 많다. 우리는 쌀이 하나의 문화가 될 수 있다고 상상했다. 농부들을 계속 만나고 다양한 사람들과 관련 논의를 해보고 싶다. 그 과정을 거쳐 우리는 현대인의 취향에 맞고 품질도 좋은 쌀을 공급하고, 소비자들은 자기 취향에 맞는 쌀을 고르는 눈이 키워지길 바란다.

실제 판매가 잘 이뤄지는지도 궁금하다. 사업은 비용이 들고, 이윤이 남아야 하니까

올해 1월에 오픈했고 온라인 판매도 하고 있지 않아서 판매량이 많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신 단골들이 늘어가는 추세다. 쌀에 대해 고민하고 맛에 대해 생각하면서 밥상을 차려본 경험을 한 소비자들이 다시 찾아오는 것이다. 이 토대 위에 앞으로 온라인으로 확장하면 고객이 좀 더 많아질 수 있다고 기대한다.

소비자들이 당신들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새로운 의견을 건의했거나 그것이 실제로 적용된 사례도 있나

우리는 1인가구, 핵가족 키워드에 주목해 소량포장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사이즈가 작아서 불만인 소비자들도 많더라. 좋은 쌀을 사려는 사람은 요리를 많이 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은 적은 양은 불편하다고 여긴다. 2Kg이나 4Kg 쌀을 출시해달라는 의견이 있다. 소량 포장을 원하는 사람은 즉석밥을 선호하는 소비자와 일치한다. 이 부분에 대한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우리의 숙제다.

2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커피 시장은 자판기와 캔커피 위주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커피 취향이 존재한다. 쌀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바로 그게 우리의 지향점이다. 물론 시간이 걸릴거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런 시대가 열릴거라고 기대한다. 품종별로 쌀을 파는 곳들이 과거와 비교하면 많이 생겼다 몇가지 품종 중 하나를 골라서 식사를 주문할 수 있는 식당도 생기는 추세다. 소비자들에게 묻고 싶다. 와인은 소믈리에에게 묻고 커피도 바리스타 추천을 받으면서 쌀은 왜 습관적으로 구매하는가? 덧붙이자면, ‘식사하는 것’에 얽혀있는 긴 과정이 있다. 식자재를 고르고 만들어서 여럿이 함께 먹는 과정을 사람들이 즐겼으면 좋겠다.

동수상회는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두 가지 방향성을 생각하고 있다. 하나는 쌀을 중심으로 제품군을 넓혀가는 것이다. 쌀과자가 될 수도 있고 쌀과 같은 식재료를 파는 것이 하나다. 또 하나는 그림책을 통해 문화 사업을 꿈꾸는 것처럼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거점으로서의 역할이다. 공유주방을 운영한다든지 다양한 방법을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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