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신문 칼럼] “나는 이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다. 그 돈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내 모든 친구와 공유하고 있는 원칙을 버릴 수 없다.”

장 폴 사르트르가 1945년 2차 대전이 끝나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 ordre national de la Légion d’honneur) 거부에 이어 1964년 노벨문학상도 거부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강의를 잘 듣지도 않았고, 단벌옷에 슬리퍼를 끌고 다녔으며, 학생들과 교수들을 멸시했지만, 장학금으로 공부했고 수석으로 졸업했다. 작가인 시몬 드 보부아르와 계약 결혼했고, 서로의 자유를 위해 자식을 갖지 않았다. 사유재산제를 반대했던 그는 호텔에서 자고, 식당에서 식사하고, 카페에서 일했다. 이 시대에 자유로운 영혼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장 폴 사르트르만큼 자기 생각과 의지를 현실에서 몸소 실천한 이는 드물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ISO9001, ISO14001 등 국제표준이 홍수를 이루고 있고 “oo 소비자대상”, “oo 품질경영대상” 등 각종 상이 난무하고 있다. 대기업,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금융기관, 공공기관 구분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조직의 건물입구에 들어서면 눈에 띄는 것이 이런 표준과 상패들이다. 사회가 발전단계를 넘어 어느 정도 안정화, 수성(守城)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징표다. 양에서 질의 단계로 한 단계 성장하고 수준을 높여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이런 표준들은 짜 맞추어 놓은 이론 박스에 불과하다. 일부 회사는 그 표준을 지키려고 ‘인증’을 받기보다는 단지 금융기관 융자받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하거나, 벤처기업등록 등 회사의 신분상승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나 단계로만 인식하는 경우도 간혹 발생한다. 표준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규격을 강화하고 포상하는 분위기로 흐르다 보면 창조와 혁신의 자리에 울타리를 지키려는 모범생들로 가득 메워지고, 모방이 대세로 자리 잡아 갈 것이다.

회사입장에서 보면, 이런 각종 상과 표준은 회사의 안정화를 의미하기도 하고, 품질 또는 조직이 일정 수준에 도달했다는 성공의 징표가 됨으로써, 다음 단계로 도약을 위한 징검다리가 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일반 소비자들도 그런 상이 제품의 보증서가 되는 양 긍정적인 시선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상 과정이 문서 검증만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제품이나 회사의 실체와는 다소 다르게 포장되거나 괴리가 발생할 수도 있다. 형식과 허세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비단 기술 IT 분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인문, 사회, 철학 분야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한마디로 기존에 복종하는 “시들어 가는 사회” 분위기다. 각종 상이 난무하고 허례 표준을 추종하는 이런 체제에서는 "발 빠른 모방자"들이나 영악한 마케터들이 세간의 눈을 잠깐 속이고 혁신가인 양 취급받고 득세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무슨 표준, 무슨 상을 받으려는 자들로만 가득 찬 분위기에서는 새로운 시도자, 창조자, 혁신가들은 아웃사이더 또는 조직 부적응자로 분류되는 경우도 생긴다. 비즈니스 세계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정석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정석을 발판으로 정석 너머를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울타리 안과 울타리 밖은 생각도 다르고 세상도 다르듯, 상을 만드는 사람과 받으려는 사람은 생각 구조가 다르다. 생각의 출발점이 다르고 가는 방향도 다르다. 보통사람들은 주어진 규칙과 표준을 지키는 데 온 힘을 쏟지만, 창조자, 혁신 리더들은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 가는 데 아이디어와 열정을 쏟는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세계적인 표준들은 모두 혁신가들이 만들어 놓은 작품들이다. 나아가 혁신가들은 추종자들의 모방을 제어보다는 방치와 적극적 장려를 통하여 표준이라는 시스템으로 끌어들이고 도구화함으로써 강자로 부상하곤 한다. 또 그들은 추종자들이 표준에 복종하도록 표준을 관리하고 자기 위상을 위협받으면 언제든지 표준의 일부 원칙을 조정하고 바꾼다. 이것이 비즈니스에서 표준의 실체이고 본질이다.

세상은 표준과 혁신이 반복하고 뒤섞여 흘러가는 거대한 강물이다. 뭔가 혁신적이고 획기적인 게 나타나면 따라 하기와 모방을 하게 되고, 모방한 혁신이 주류를 이루게 되면 표준으로 자리를 잡고, 다시 개선과 혁신이 반복되는 순환과정이다. 혁신과 창조는 안정이 필요하고, 모방과 표준은 혁신을 향한다.

이처럼 표준과 혁신은 알고 보면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과 반목과 협조와 배척을 반복하는 관계다. 기존 틀을 유지하려는 사람들도, 그 틀을 깨려는 사람들도 다 같이 표준과 혁신에 대한 상호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결국 안정을 추구하는 수성(守城)의 시대에는 규칙의 순응과 표준이 훌륭한 덕목이 되고, 지금처럼 거대한 붕괴와 기회가 동시에 소용돌이치는 시대에는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이 환영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장은 어떻게 모방과 표준을 바라볼 것인가? 표준은 정석의 또 다른 표현이다. 어떤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것은 그 정석을 가장 완벽하게 모방하고 가장 잘 순응했다는 징표다. 한 분야의 선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정석의 단계를 어느 정도 익힐 필요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선두유지를 위해서는 지금의 정석을 뛰어넘어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가야 한다. 정석은 뒤따르는 추종자들의 추격을 방해하고 길들이기 위한 일종의 허들 같은 것이다.

따라서 2등이 1등을 추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의 울타리 밖을 넘보는 것이다. 맨 날 1등의 뒤통수만 바라보거나 상 탈 궁리만 하다 보면 상 주는 자의 의도를 읽을 수 없다. 주어진 울타리 내 시선으로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바로 ‘그 산업’ 너머를 바라보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 상을 타는 자로 머물 것인가, 주는 자가 될 것인가? 장 폴 사르트르가 창의시대 사장들에게 던지는 화두다.
 

칼럼니스트 =  최송목 (‘사장의 품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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