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 가정의학과 전문의연세휴가정의학과원장문정해

[소비자경제신문 칼럼] 저는 성선설(性線說)을 믿습니다. 이중나선형 구조의 DNA를 가진 인간은 본성에 따라 선(line)을 긋고 때로 그 선을 넘어섭니다. 선율을 즐기듯 선 위에서 묘한 긴장관계를 즐기기도 하고, 과감히 선을 지워 보는 일탈을 시도하였다가 대내외적인 압력에 직면하여 결국 지웠던 그 선 자국 그대로 복원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 유아시기에는 부모나 보호자가 그어 놓은 선을 이리저리 넘나들며 짜릿함을 만끽하기도 합니다. 어린이집에서 집과는 다른 선의 범위와 의미에 다소 놀라다가, 이번엔 친구들이 저마다 긋는 선의 다양성과 가변성에 더욱 놀라지만 곧 놀라운 창의성으로 융화를 배웁니다. 이러한 능력을 전문용어로는 ‘눈치’ 라 합니다.

인생의 축소판인 스포츠에서도 선(line)은 중요합니다.

축구에서 수비라인을 올리면 실점할 위험은 높아지지만, 이제야 비로소 좁은 공간에서 상대와 경합하며 오프사이드 없이 라인을 기가 막히게 타고 넘는 창의력이 발휘됩니다. 

농구에서 스몰-라인업을 들고 나오는 팀은 강력한 센터를 둔 팀에 고전할 수는 있어도, 빨라진 공격의 속도와 현란한 패스워크가 경기에 색다른 묘미를 제공해 줍니다.

야구, 배구, 테니스, 양궁 등 눈에 보이는 선이 존재하는 스포츠에서는 물론이고, 골프처럼 눈에 보이는 선이 없는 경기에서도, 적정한 선을 지키는 것은 거의 예술의 경지로 요청됩니다.

부정적인 선(line) 또한 존재합니다. 우리 한국인은 분단된 조국의 휴전선 하나로도 가슴 아픈데, 각종 미묘한 선(line)이 지역과 계층을 나누고 이제는 소위 ‘인싸’(insider)와 ‘아싸’(outsider)를 구분하여 인간소외를 조장하며, 급기야 ‘기생충’ 이란 단어의 의미까지 묘하게 사회문화적으로 확대하였습니다.

의학에서도 부정적인 선(line)이 난무합니다. 과학이 ‘비과학적’인 종교의 자리를 완전히 대체하였다고 섣불리 단정 짓는 것은, 종교를 맹신한 나머지 과학을 ‘형이하학’이라 평가절하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돌봄이나 치료는 환자의 장기 생존율(Survival Rate) 향상에 미치는 영향이 구체적으로 계량화 되지 못하여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환자와 그 가족의 삶의 질(QOL)에 유익이 있다면 그 의미를 재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 계량화 될 수 없는 것들에 의료진은 오히려 더 주목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만일 모두가 빠르고 강력한 치료만을 원하게 되면, 환자에 대한 돌봄이나 배려가 없는 채로, 항생제 및 스테로이드 남용이나 과잉진료 등의 오프사이드만 반복될 지도 모릅니다. 예수회 사제로 평생을 발달장애우와 함께 하며 섬긴 헨리 나우웬도 ‘돌봄의 영성’ 이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돌봄이 없고 치료만 있으면 신속한 변화에 집착하게 되고 그러면 조급해져 서로의 짐을 나눌 수 없으며, 그럴 마음도 없어집니다.

최근 대형병원 집중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동네병원 입장에서는 급감한 환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무리해서 빠른 치료에만 집중하게 될 유인이 있습니다. 수익이 나지 않는 통합적인 전인치료와 돌봄은 사라지고, 단기치료에만 급급하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의료영역에서의 선이 잘 조정되기를 기대합니다.

현명하신 의료소비자들께서 빠른 치료결과보다 진정한 돌봄이 있는 병원을 긴 호흡으로 선택하고 계신 현상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이제 각 지역의 주치의들이 비록 스몰라인업일지라도, 라인을 올리고, 오프사이드 없이, 삶과 죽음의 묘한 긴장관계 속에서 환자와 가족의 존엄성과 삶의 질을 지키는 데 소명의식을 가지고 더욱 최선을 다하여 섬길 때, 모두가 함께 비로소 선(線)을 넘어서 선(善)을 이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선은 태생적으로 점과 점을 이어주는 데서 시작하여, 면과 입체를 넘어, 새로운 차원을 경험하게 하여 주는 데 그 존재의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칼럼니스트= 연세휴가정의학과 원장 문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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