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신문 칼럼] ‘여기 들어오는 자들이여! 모든 희망을 버려라“ 단테가 신곡에서 지옥을 묘사한 말이다. 지옥이란 ’희망‘이 없는 곳이다. 우리는 희망이 없으면 하루도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늘 희망을 추구한다.

1863년 1월 영국에서 최초로 지하철을 설계할 당시, 객실 창문을 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한다. 달아 놔 봤자 보이지도 않는 창문을 왜 다느냐는 것이 쟁점이었다. 결론은 창문을 내기로 했다.

그 이유인즉 실제로 터널 속에서는 콘크리트 벽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창문 너머 보이지 않는 바깥 풍경을 상상으로 보기를 원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도 지하철을 타면 가끔 창밖을 바라본다. 딱히 뭘 집어서 보고자 보는 게 아니라 멍하게 바라본다. 풍경이 아니라 창밖 저 너머의 보이지 않는 뭔가를 상상하는 것이다. 만약 지하철 창문이 없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희망도 이와 같아서 보이지 않는 창 너머 뭔가를 바라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CEO/리더는 직원들이 낙담에 빠졌을 때 힘들 때, 다들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말할 때 희망을 만들어가야 하는 사람이다. 희망도 키우면 자라는 화초 같은 것이다. 처음에는 가냘픈 새싹으로 시작하지만, 정성 들여 가꾸다 보면 차츰 굵고 단단한 줄기와 푸르른 잎사귀를 드러낸다.

희망의 시작은 먼저, 아주 작은 희망, 별로 큰 힘 들이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실현 가능성 100%의 보잘것없는 목표부터 출발한다. 처음부터 욕심만 앞서서, 과거 화려했던 시절을 못 잊어 실현 가능성 희박한 큰 희망과 큰 포부를 들이대지 말라는 것이다. 아주 작고 달성하기 쉬운 ‘보잘것없는’ 목표들을 그것도 단기간에 추진하는 것이다.

당연히 쉽게 달성될 터이고, 달성률 또한 100%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보잘것없는 ‘달성’이라도 달성은 달성이다. 다소 유치한 방법 같지만 실제로 이렇게 한두 개의 목표 달성이 이루어지고 쌓이다 보면 자신감에도 탄력이 붙기 시작한다. 특히 아주 크게 실망했을 때, 크게 좌절하여 실의에 빠졌을 때 아주 효과적이다. 헬스 운동할 때 바벨 무게를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하여 점차 무게를 늘려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두 번째는 여러 개의 희망을 동시에 키워 나가 는 것이다. 한 개가 아니라 작은 희망과 목표 여러 개를 동시에 추진한다.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을 하는 것이다. 점차 목표달성이나 성공 횟수가 늘어나고 그 목표달성이 넝쿨째 이루어지다 보면 자신감도 배가되고 무엇보다 ‘성공습관’이 몸에 관성으로 자리 잡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동안 작지만 많은 성공은 그 이후 한 두 개가 설령 실패하더라도 그 감각이 둔해져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점차 사라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런 작은 성공들이 무의미해질 즈음 그다음은 목표의 크기와 난이도를 한 단계씩 높여가는 것이다.

세 번째는 희망의 시간 길이를 짧게 잡는 것이다. 단기적인 목표 달성에 치중하라는 것이다. 단계별로 목표를 수립하되 쉽게 달성 가능한 구체적이고 단기적인 목표를 설정하여 몇 번 반복 달성해 봄으로써 짧은 시간 내에 자신감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너무 장기적이고 추상적인 큰 목표는 쉬 지치게 되고 열정을 지속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넷째, 막연한 희망, 바램은 그림의 떡이다. 꿈으로만 그려놓고 손에 잡히지 않으면 공염불에 불과하다. 희망을 현실화하는 것이 계획이다. 계획이란 미래를 현재로 가져와서 미래에 관해 '지금'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미래의 현재化다. 이에 대해 제이 새밋은 그의 저서 ‘부의 추월이 일어나는 파괴적 혁신’에서 희망 목표를 이루려면 데드라인을 정해야 한다고 했다.

전체로서의 목표를 구성하는 작은 조각들이 각각 무엇인지 분석하고, 데드라인에서 출발해 거꾸로 하나하나 우선순위 단계를 역순으로 스케줄을 작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너무나 쉽게 빠질 수 있는 많은 순간적인 만족과 쾌락들에 둘러싸여 있다. 목표를 이루려면 이런 순간의 만족과 쾌락들을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루거나 포기해야 한다. 그 계획에 들어갈 핵심내용은 자신의 열망, 우선순위, 자원, 데드라인 등이다. 이것을 하나하나 종이에 써 가면서 수정 보완 다듬어 가는 것이 희망 가꾸기 계획이다.

우리는 흔히 '태양이 뜬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태양은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다. 태양은 뜨는 게 아니라 고정되어 있으며 사실은 우리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 태양은 늘 그 자리 그대로 있다. 지구는 매일 엄청난 속도로 자전과 공전을 반복하고 있다. 그 자전과 공전 때문에 4계절이 있고 매일 태양이 뜨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결국 우리가 매일 아침 맞이하는 태양은 우리가 만든 생각이며 내 시각 중심의 편견이 가져온 결과다. 희망도 태양과 같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간혹 태양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때는 태양이 구름에 가려져 있을 때이며 내가 보지 못한 때이다. 태양은 늘 그 자리에서 우리를 비추고 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 희망도 살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포기'라는 말은 이 세상에 존재할 필요가 없는 단어다.

칼럼니스트 = 최송목 (‘사장의 품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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