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안전성 미흡” VS 건설사 “기술발전의 산물…감수해야”
‘타다’와 택시업계 갈등양상 건설업계로 번져…기득권 수호 싸움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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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경제신문 임준혁 기자] 지난 3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소속 대형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이 무기한 파업에 들어가면서 전국 건설현장의 대형 타워크레인 2500여대(민주노총 1500대, 한국노총 1000대)가 일제히 멈춰섰다. 업계에서는 기술혁신이 부른 또다른 ‘밥그릇 싸움’으로 보고 있다.

무인(소형) 타워크레인은 전문 조종사가 필요 없고 장비 운영비도 적게 들어 도심 속 상가건물, 오피스텔, 다세대주택 등의 건설현장을 빠르게 잠식하는 상황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5년 272대였던 소형타워크레인(등록기준)은 지난해 1826대로 5배 이상 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난해 말 4457대였던 대형 유인(有人) 타워크레인은 올 5월 4385대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양대 노총은 무인 타워크레인은 안전사고 위험이 높아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며 파업에 들어갔지만, 무인 타워크레인이라는 기술진화에 일자리 위협을 느낀 기존 노동자들의 반발이 이번 파업의 근본 원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외형상 이번 파업의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노조는 파업의 명분으로 무인 크레인의 낮은 안전성을 꼽는다. 건설현장에서 무거운 자재를 들어 올리는데 사용하는 장비인 타워크레인은 3톤을 기준으로 소형과 대형으로 구분된다.

소형은 조종석이 따로 없고 리모콘으로 조종하기 때문에 무인 타워크레인으로 불린다. 대형 크레인은 국가자격검정시험(필기, 실기)을 거쳐야 하지만, 무인타워크레인은 20시간 교육만 이수하면 조종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대형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은 안전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타워크레인 노조 관계자는 “20시간 교육만 이수하면 발급되는 부실한 조종자격제도, 적정하중 불법조작, 정부의 관리감독 미흡 등 소형 타워크레인은 건설현장의 시한폭탄”이라며 “휘거나 부서진 타워크레인을 즉각 해체하지 않고 땜질식 처방으로 재활용하는 등 정부의 관리·감독 부재가 만연하다”고 밝혔다.

실제 최근 1~2년 사이 소형 타워크레인이 하중을 견디지 못해 휘어진 사고가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2일 서울 청담동 어퍼하우스 신축공사현장에서 소형 타워크레인이 작업 중 자재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럭핑집이 앞으로 추락했다. 제작비를 절감하기 위해 저가로 제작해 사용하다 발생한 사고다.

또 다른 이유는 건설주들의 이른바 ‘노조 포비아(공포증)’다. 한 중소 건설사 관계자는 “대부분 노조 소속인 대형 타워크레인 조종사들과 마찰이라도 빚으면 정해진 공기를 맞추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런 노조 리스크를 피하고자 상당수가 비노조원인 소형 타워크레인 조종사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안전문제와 노조리스크 등 두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첫날 파업에 양대 노총 소속 조합원 2300명(민주노총 1500명, 한국노총 800명)이 모두 참가할 정도로 파업이 추동력을 얻은 근본 원인은 기술 혁신에 따른 기존 노동자들의 불안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타다’와 택시업계의 갈등처럼 대형 크레인과 소형 크레인 간의 갈등 역시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의 등장에 따라 발생한 갈등”이라며 “급속한 속도로 기술·서비스 혁신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이 탑승해 직접 조종하는 대형 크레인과 리모콘으로 조종하는 무인 크레인 간 갈등은 앞으로 다른 분야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재계에서는 이번 파업이 혁신의 흐름을 거스른다는 주장을 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소형 타워크레인은 안전성과 경제성, 인력의 유연성 측면에서 장점이 많아 자연스럽게 활용되고 있다”며 “조종사가 크레인에 탑승하지 않아 오히려 지상의 공사현장 주변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있고, 사고 시 인명 피해도 줄일 수 있다. 노조의 이번 파업은 산업발전 측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기득권 지키기”라고 주장했다.

일선 건설사들도 경총의 입장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중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우리 회사의 15개 현장 중 12개 현장이 타워크레인 중단으로 인한 공사 타격을 받고 있다. 현재 가동 중인 크레인의 70%가 노조원들에 의해 점거된 것으로 파악됐다”며 “며칠 정도는 크레인이 필요 없는 다른 공정을 진행하면서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지만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공사 지연과 이에 따른 입주 지연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그는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건설현장에서는 리스크(안전사고의 위험성)가 도사리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기술 진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무인 소형 타워크레인의 등장과 같은 기술의 진보를 막을 수 없는 만큼, 일자리를 잃어버린다는 생각에 무조건 파업에 나서지 말고 다른 직종으로의 전업이나 훈련 강화 등의 노력을 기울이는 게 옳다”고 덧붙였다.

이번 파업과 관련 정부는 사태를 수습하는 데 제 역할을 하기는커녕, 문제의 원인을 일부 제공했자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무인 타워크레인 퇴출과 노조원 고용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의 강경한 주장에 끌려다녔고, 건설기계 관리를 담당하는 국토교통부는 뒤늦게 관련 법을 손보겠다고 나섰다. 무인 타워크레인이 건설현장에 빠르게 확산되며 크레인 붕괴 사고 문제가 발생하는데도 부처들이 손발을 맞추지 못한 것이다.

정부는 타워크레인 관련 사고의 주된 원인을 오래된 장비와 관리 소홀로 보고, 20년이 넘은 낡은 타워크레인은 면밀히 점검하겠다고 했다.

반면 타워크레인 조종사 노조는 위험도가 높아 숙련자가 담당해야 하는 타워크레인을 경험이 적고 의무교육만 이수한 비숙련 인력이 조종하면서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라며, 건설현장에서 무인 소형 타워크레인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건설기계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용호 의원(무소속)은 ▲타워크레인을 분류하거나 제작하는 기준이 없고 ▲소형 타워크레인 조종사 자격을 부여하는 기준이 지나치게 낮으며 ▲타워크레인 등록기준 간소화로 현장 관리가 부족한 3가지가 가장 큰 문제라며,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주무 부처인 국토부의 건설산업과 관계자는 “민주노총, 한국노총을 비롯해 기계 제작사, 수입업체, 검사기관, 교통안전공단, 안전관리원, 크레인협회,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지난 3월, 4월 두 차례에 걸쳐 소형 무인 타워크레인 안전 대책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며 “이 밖에도 크레인 개별임대사업자, 제작사 관계자와의 면담을 통해 나온 건의사항 등을 바탕으로 이달 말까지 추가안전 개선방안(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실무자도 “(무인 타워크레인의)건설기계 안전기준 충족 및 등록·승인에 있어 관계 법령에 따라 탈 없이 이뤄지고 있다”며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무인 타워크레인의 안전기준 및 등록·승인에 손을 놓고 있다는 노조 및 일부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소비자경제>와의 통화를 통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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