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 '게임중독' 질병 등재 이슈를 보면서...

[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기자는 오락실 세대다.

중학생 시절로 기억한다. 오락실에 가면 400원만 넣으면 9회말까지 즐길 수 있는 야구게임이 있었다. 매일 들락날락하며 친구랑 200원씩 나눠 내고 떡볶이 내기를 했다.

그때의 긴장감은 마치 한국시리즈 7차전과 맞먹었다. 떡볶이 값도 중요했지만, 게임에서 지면 친구의 놀림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락에서 지면, 다음 대결에서 승패가 뒤바뀌기 전까지 친구는 계속 기자를 놀려 먹었다.

그래서 혼신의 힘을 다해 친구와 싸웠다. 이기면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친구 돈으로 먹는 떡복이는 세상 어떤 음식보다 맛있었다. 나 역시 친구를 몇 시간이고 놀려댔다.

그때는 몰랐다. 동네 오락실에서 친구와 보낸 시간, 그 시간이 내게 그리워질 이유가 승리의 환호 때문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나는 게임 속 캐릭터들의 홈런이나 삼진을 다시 보고 싶지 않다. 똑같이 재현된 게임을 다시 해봤는데 ‘그 시절 그 느낌’도 안 났다. 그저 친구들과 보낸 그 시절이 그리울 뿐이다.

친구와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떠드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그때는 몰랐다. 단 돈 몇 푼에 그렇게 신나게 놀 기회가 앞으로 별로 없을 거라는 사실도 몰랐다. 인생의 무게를 더 많이 느낄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400원짜리 야구의 짜릿한 승리가 인생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사실 그것은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세계보건기구가 게임중독을 공식 질병으로 인정하겠다고 밝혀 이슈다.

게임이 나쁜 게 아니다. 물론, 게임에 심하게 중독돼 일상생활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다면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그 지점에서 살펴볼 문제도 게임 자체가 아니라 중독여부다. 그 대상이 게임이어서 중독됐는지, 중독자가 심리적인 의존 대상으로 우연히 게임을 선택했는지도 꼼꼼히 따져볼 일이다. 지금 PC방에서 친구들과 몇 시간씩 ‘롤’에 몰두하는 청소년들도 아마 20년쯤 지나면 기자와 같은 생각을 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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