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신문 칼럼] "어둠속의 대화(Dialogue in the dark)"라는 체험전시가 있다. 시각을 제거한 완전한 어둠속에서 100분간 시각이외의 감각만으로 이색적인 세상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1988년 독일에서 시작된 이후 29년간 유럽, 아시아, 미국 등 전 세계 160여 도시에서 950만 명 이상이 관람한 전시다. 시각은 우리가 사물을 판단하는 중요 감각 기관임에는 틀림없지만, 역설적으로 그 시각을 배제시키면 평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는 발상이 이 전시의 출발점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으로 인해 상상을 방해 받고 살아왔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각 사물에 대해서는 입체로 바라보고 있지만 생각은 선형 중심의 사고에 갇혀 있다. 바깥세상을 볼 수 있는 통로가 눈으로만 한정되어 있고 그 눈높이도 대개는 2차원 시계(視界)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물리, 화학을 가미하면 혼돈은 더욱 가중된다. 수많은 형태와 크기로 바꿀 수도 있으며, 그 각각이 고유의 파장과 색과 빛을 가진다. 그것들은 끊임없이 섞이고, 충돌하고, 합해지면서 찬란한 총천연색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보이는 것들은 ‘원소주기율표’를 벗어나지 못한다.

시야를 넓혀 공간을 입체화하여 보자. 여기 한가롭게 풀을 뜯는 토끼와 일 없이 하늘을 날고 있는 매가 있다. 이 둘은 엄청난 거리와 공간의 차이로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가 토끼를 덮치는 순간 사냥자와 먹잇감의 관계가 이루어진다. 약자의 방심과 강자의 기회포착이 만들어 낸 상황이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듯한 둘 사이에 하나의 상황으로 금방 상관관계가 형성된다. 요즈음처럼 융복합의 복잡계에서는 언제든지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들도 들판의 토끼나 매의 입장이 될 수 있다.

이런 드러나지 않는 관련성을 보는 능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믿는 능력에서 나온다. 눈이 아니라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역사적인 과학자, 전설적인 혁신가들은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고, 맡을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맛볼 수 없는 것들을 믿었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해법을 믿었다. 다니엘R.카스트로는 그의 저서 ‘히든솔루션’에서 이것을 방금 타고 온 자동차 키가 보이지는 않지만 집 안 어딘가에 분명히 있음을 아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키가 없었다면 집까지 차를 몰고 올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므로 집에 키가 있다고 확실히 알기 때문에 찾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바로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믿음과 상상력이다.

한편 판단도구로써 눈의 기능은 앞으로 계속 지속될 것인가? 예컨대 눈앞에 보이는 현대자동차가 분명 자동차로 규정되어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바퀴를 달고 굴러다닌다고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그 경쟁상대도 더 이상 벤츠나 아우디, 도요타같은 동종 자동차산업이 아닐 것이 거의 확실해지고 있다. 이제는 삼성전자, 애플, 보잉사, 구글과 같은 전혀 다른 이업종들과 비교하고 벤치마킹하는 시대가 되었다. 한마디로 눈앞에 보이는 외관만으로 그 종을 규정할 수 없는, 구분이 모호한 다차원이 공존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눈은 더 이상 우리의 판단도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다.

그렇다면 향후 무엇이 지금까지의 눈을 대신하고 보완하면서 사고의 폭을 넓혀 줄 것인가? 역설적이게도 눈을 버려야 한다. 눈을 감아야 한다. 그래야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볼 수 있는 다차원의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지도자는 가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고, 때로는 금방 현장으로 돌아올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해외휴가를 떠나기도 하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 최송목 (‘사장의 품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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