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前 부장 총괄 사업 무산 손실 줄이려 비리
법무·감사팀 비리혐의 적발...근본책 마련 시급

[소비자경제신문 임준혁 기자] 대기업 감사팀이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법무팀이 가동되고 있으나 간부급 비리는 걸러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굵직한 사기 사건 하나를 마무리했다. 현대중공업이 전 회전기영업부 부장 김모씨(57)와 발주처 A사 대표 등을 상대로 149억5000만원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이 김 씨에게 손해액 전부를 회사(현대중공업)에 지급하라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2010년 5월 시작된 이 사건은 9년 만인 지난 2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면서 마무리됐다.

사건의 발단은 실적이었다. 법조계 등의 말을 종합하면 김 전 부장은 2010년 5월 아직 사업 인허가를 받지 않았던 한솔제지 장항공장 소각발전설비 공사를 수주한 후 매출실적을 단기간에 올리기 위해 하도급업체에 약 422억원의 자재대금을 선지급하고, 도급사로부터는 현금이 아닌 어음으로 공사비를 받았다. 하지만 윗선 보고나 내부 결제절차는 지켜지지 않았다.

문제는 해당 계약이 파기되면서 발생했다. 해당 공사는 2011년 9월 관할 관청인 서천군으로부터 인허가를 받지 못한 채 좌초됐다. 어음은 휴지 조각이 됐고, 현대중공업은 하청업체에 미리 지급했던 자재대금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현대중공업 측은 자재대금을 빨리 수금할 것을 압박했고, 설상가상 도급사는 자금여력이 없고 은행대출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급기야 김 전 부장은 손실금액을 ‘0원’으로 만들기 위해 회사 몰래 총 430억원의 대출을 실행, 이중 280억5000만원은 자재대금이고 나머지 149억5000만원은 과입금된 것처럼 허위보고했다. 결국 현대중공업은 도급사에 149억5000만원을 반환하고도, 이 금액을 다시 은행에 갚아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현대중공업 법무팀은 김 전 부장의 ‘간 큰 행동’을 포착, 혐의가 명백하다고 판단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김 전 부장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배임)·사문서위조·위조사문서행사·배임수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총 5년 6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현대중공업은 이와 별도로 김 전 부장과 도급사 및 이 회사 대표에게 반환한 돈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모든 잘못의 시발점인 김 전 부장에게만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 사건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 사건은 예고된 범죄이고 향후 유사한 방식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팀 감시시스템이 가동 중이지만 간부급의 경우 대처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현대건설 한 직원이 법원에 예치한 회사 공탁금 64억원을 자신이 챙겨 경찰에 체포됐다. 해당 직원은 법무팀 소속 대리급 사원으로, 임직원의 비위 여부를 챙겨봐야 하는 위치에 있음에도 이 직원은 3년간 공탁금을 횡령해 유흥비로 탕진한 것이다. 

이는 법무팀을 강화하는 추세인 대기업마저도 ‘똑똑한 악마’의 부정한 짓을 막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국내 기업들은 법무팀이나 감사팀이란 조직을 구성해 내부 직원들의 비리 여부 등을 감찰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평소 이같은 사태를 미연에 예방하기 위해 내부적인 시스템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회사 내에 윤리경영팀이나 컴플라이언스(compliance·준법감시) 기능을 하는 상시 조직을 만들어 요직에 있는 임직원들의 비리 사항 등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 김 전 부장의 사건 역시 업무 행동에 수상함을 포착해 법무감사팀에서 내부 적발된 사건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이와 관련 “팀장이라는 전권을 맡긴 것을 악용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것이므로 법무팀에서 고발 후 묵과할 수 없었다”라며 “개인이 양심을 속여 이같은 비상식적인 행동을 한 것이므로 회사 차원에서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주주 피해와 관련 해당 관계자는 "우리는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며 “내부 고발로 법의 심판을 받은 상태인 만큼 법원의 판정대로 김씨한테 150억원을 받아내면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직원관리가 허술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김 씨처럼 일정 직급 이상의 직원에게 아무리 감시의 눈초리로 본다 해도 본인이 악의를 품은 이상 적극적인 대처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미 지난 사안이다”라며 말을 아꼈다.

관련업계 관계자는 “법무, 감사팀 등의 기능을 강화해 주주에게 해를 주지 않는 윤리경영 개념이 전사적으로 확대돼야 한다”며 “하지만 악의를 품고 비리를 저지르는 임직원이 있다면 어쩔 수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 이런 현실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보다 근본적인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업계는 물론 국회 등 입법 기관, 관계당국 차원에서 기업 내 직원 비리를 감시하고 제재하는 내용의 법안 발의 등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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