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위임장 제시, 개인계좌로 64억 반환받아
사측 “현행 공탁금 반환제도 허점, 개선책 시급”

법원 공탁금 회수제도 허점을 노린 직원의 횡령사건이 발생한 현대건설 본사 전경. 사진=뉴스1
법원 공탁금 회수제도 허점을 노린 직원의 횡령사건이 발생한 현대건설 본사 전경. 사진=뉴스1

 

[소비자경제신문 임준혁 기자] 소송 등의 이유로 회사가 법원에 맡겨둔 공탁금 수십억원을 3년간 상습적으로 빼돌린 대형 건설사 직원이 경찰에 붙잡히면서 법원의 공탁금 회수 제도에 허점이 드러났다.

3일 경찰과 업계에 따르면 서울 종로경찰서는 현대건설 대리급 직원 A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상 횡령 혐의로 1일 구속했다.

A씨는 2016년 8월께부터 지난달까지 현대건설이 법원에 예치한 공탁금 64억여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공탁의 사전적 의미는 금전이나 유가증권, 기타의 물품을 공탁소에 임치(任置)하는 것을 의미한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때 가해자 쪽이 적절한 금액을 법원에 맡겨 합의에 최선을 다했음을 증명해 보이기 위한 것이다.

확인 결과 A씨는 최근 대전에서도 같은 수법의 범행을 벌이려다가 법원 직원의 기지로 미수에 그쳤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전지방법원에 따르면 A씨는 지난달 29일 오후 3시 30분께 대전지법에서 회사 공탁금 47억4900만원 회수 청구를 신청했다.

담당 공무원은 일반적으로 거액 공탁금 회수 때 회사통장으로 직접 입금하는 방식으로 하는데 A씨가 자신의 위임장을 제시하며 개인 통장으로 직접 입금신청을 해 이를 수상히 여겼다.

그는 A씨에게 "10억 이상 넘어가는 공탁금을 찾으려면 결제를 2번 거치기 떄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니 밖에 나가있으라"고 말한 뒤 회사에 확인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현대건설 법무팀 관계자는 “A씨에게 공탁금 회수를 위임한 적이 없다”며 “절대 지급해주지 말라”고 요청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대전지법에 왔지만, A씨는 이미 달아났다.

A씨가 대전에서 공탁금 횡령을 시도하다 실패, 도주하면서 그간의 범행 사실을 알게 된 현대건설은 그를 면직 처리했다.

경찰은 지난달 29일 현대건설 측으로부터 고소장을 접수받아 수사에 착수했다. A씨는 지난달 30일 고소인 측과 동행해 경찰서에 자수했고 경찰은 A씨를 긴급체포했다.

A씨는 마카오에서 수차례 도박을 했으며, 도박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건설 등에 따르면 A씨는 법원 공탁금 반환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했다.

통상 법원은 법인계좌로 공탁금을 반환한다. 다만 위임장을 제시하면 개인계좌로 공탁금을 돌려주기도 한다.

A씨는 법무팀 직원으로 수년간 공탁금 관련 업무를 하면서 이같은 사실을 알고 위임장을 작성, 수 십차례에 걸쳐 공탁금을 개인계좌로 받았다고 현대건설 측은 전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공탁금은 회계상 이미 소송비용으로 처리돼 있는데다 수천억원 규모의 공사 건에서 (반환되지 않은 공탁금) 수억~수십억원 정도의 손실을 찾아내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건은 개인의 일탈로 봐야 한다. 경찰의 수사과정을 지켜보면서 대응책을 강구할 것”이라며 “법원 등 관계 당국에서 위임장만 있으면 개인 계좌로 입금하는 현 시스템을 개선·정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법원 관계자는 “A씨와 같은 청구권자가 공탁금 반환을 위한 위임장 등 구비서류를 맞게 제시하면 담당 공무원은 거기에 따라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다”라며 “위임장을 위·변조해도 서류상 하자가 없으면 공탁금을 지급하는 현 시스템을 인위적인 제도로 제재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공탁금을 지급받고자 하는 사람의 양심에 달려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건설사의 법원 공탁금 반환 비리는 현재 법 체계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불온한 마음으로 공탁금을 자기 계좌에 쌈짓돈 쌓듯 반환받는 제2, 3의 A씨가 나올 가능성은 언제든 농후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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