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탐방] 서울 익선동, 모던보이의 멋스러움과 낡은 옛추억으로 활기 되찾은 상권
[현장탐방] 서울 익선동, 모던보이의 멋스러움과 낡은 옛추억으로 활기 되찾은 상권
향수 자극하며 젊은 세대 핫한 거리로 부상한 서울의 명물거리
  • 이혜민 기자
  • 승인 2019.03.18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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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경제신문 이혜민 기자] 요즘 서울 중구 익선동은 20~30대 청년세대가 가장 많이 찾는 '핫한' 카페 거리다.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한테까지 꼭 한번 방문해야 하는 명소로 꼽히며 사랑받는 익선동 한옥 거리. 북촌, 인사동 등 한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은 많지만, 익선동에는 이곳만의 특별함이 있다. 경성 시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테마로 하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 익선동의 모든 것을 둘러봤다.

마치 세트장처럼 꾸며진 익선동의 어느 한 가게. 경성시대를 느낄 수 있는 소품으로 가득 차있다. 익선동 메인 스트릿의 끝자락에서 바라본 한옥 거리.(사진=소비자경제)
마치 세트장처럼 꾸며진 익선동의 어느 한 가게. 경성시대를 느낄 수 있는 소품으로 가득 차있다. 익선동 메인 스트릿의 끝자락에서 바라본 한옥 거리.(사진=소비자경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익선동…다시 모던보이

익선동 중심 거리의 끝자락. 채소 파는 트럭이 세워져 있다. 봄동이며 얼갈이배추, 어린잎상추 등을 박스 채 파는 트럭이다. 슥슥 무쳐 반찬으로 먹으면 그만일 봄철 채소 앞에 집에서 막 나온 차림의 아주머니가 기웃거린다.

“얼갈이 새끼 가져가. 이거 이렇게 좋잖아. 연하고.” 채소 트럭 주인이 넌지시 말을 걸자, 기웃거리던 손님이 말을 받는다. “혼자 먹는데 뭐 하러.” 그리고 뒤이어 낯선 대화들이 오고 갔다.

“우리 아저씨 어제 1년 탈상했어요.”

“벌써 1년 됐나? 금방이네. 엊그제 같은데. 거 참.. 잘 댕기시더니..갑자기 왜..”

“좋아하는 떡 잡수시다가 그랬다니까. 안 사온다고 막 신경질을 부리더니만.”

귀를 의심했다. 여기가 SNS에서 핫한 익선동이 맞나 싶었다. 채소 트럭을 기점으로 뒤편엔 오래된 가게들이, 앞쪽엔 새로 생긴 가게들이 즐비한 상반된 분위기의 이곳. 여기는 100년의 역사가 우물처럼 고여 있는 서울 익선동이다.

익선동이 북촌이나 삼청동처럼 고즈넉한 분위기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옥의 골조를 간직하지만 외관 인테리어나 소품은 현재 서울에서 가장 힙(Hip)한 곳 중 하나다. 커피숍은 물론 레스토랑, 떡집, 액세서리 가게, 옷가게까지 골목 곳곳이 시선을 머무르게 한다.

아예 경성시대를 콘셉트로 액자며, 의자. 테이블까지 그 시절 분위기로 꾸며 놓은 곳이 있는가 하면, 현대식으로 재해석해놓은 곳도 있다. 모두 분위기는 다르지만 공통된 구조 덕분에 비교하며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익선동 한옥의 구조적 특징은 마당이다. 작은 앞마당을 중심으로 방들이 공간을 둘러 싼 형태다. 어떤 곳은 앞마당 천장을 막아 아늑하게 꾸며두기도 했다. 그럼에도 볕이 잘 드는 덕분에 마당에 놓인 테이블에 앉으면 야외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옛날에는 쪽방처럼 되어 있었어요. 한옥에 세입자들 많이 살고, 허름했죠. 월세를 조금 받는 형태였어요. 폐지 줍는 사람이나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살았죠.” 익선동 끝자락에서 33년째 칼국수 가게를 하고 있다는 사장의 말이다. 유명해진 익선동이 불편하진 않냐는 질문에, 그는 그때보다 깨끗하고 활기차져서 좋다고 답했다.

◇익선동 도시형 한옥단지 계획했던 장본인 정세권은 누구?

한옥임에도 쪽방 형태가 가능했던 이유는, 처음부터 누군가가 이곳을 도시형 한옥 단지로 계획 조성했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까지 종로구 일대에 활발히 근대식 한옥마을을 조성한 부동산 개발업자 정세권(1888~1965)이다.

“나(한국 최초 근대 장편 소설인 <무정>의 춘원 이광수)는 그가 어떠한 인물인 줄을 잘 몰랐다. 다만 가끔 그가 토목 두루마기를 입고 의복도 모두 조선산으로 지어 입고 다니는 것과 머리를 바짝 깎고, 좀 검고 뚱뚱한 영남 사투리를 쓰고 말이 적은 사람인 것만 보았다.” -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프롤로그 중에서. (지은이 김경민/ 출판사 이마)

정세권은 어마어마한 부동산 개발자였다. 1920년 부동산 개발 회사 ‘검양사’를 세운 그는 경성 전역에 작은 한옥들이 모인 한옥집단지구를 건설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조선판 뉴타운을 건설한 셈이다. 요즘 사람들이 모두 비슷한 구조의 아파트에서 생활하듯, 정세권은 당시 사람들, 즉 조선인을 위한 주택을 건설했다.

조선인의 생활습관은 유지하되 급격히 서양화되던 생활상을 반영한 한옥이었다. 6인 가족이 살 수 있는 크기이며, 건축비 역시 이들이 살 수 있는 조건에서 합당하도록, 마당을 중심으로 거실을 만들고, 방을 만들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앞마당은 테이블을 두고 볕을 쬐며 식사하기 딱이다. 아늑하고, 야외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은, 정세권의 아이디어였다.“ - 본문 중에서

익선동 한옥의 대표적 특징인 마당. 가게마다 다르게 꾸며져 비교하며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사진=소비자경제)
익선동 한옥의 대표적 특징인 마당. 가게마다 다르게 꾸며져 비교하며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사진=소비자경제)

 

◇한옥으로 일본에 대항한 독립투사

정세권에 관한 책,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를 보면 정세권에게 한옥은 주택 부문의 물산장려운동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일제로부터 일본식 가옥을 짓도록 강요받고, 숱한 탄압을 받았음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는 조선인을 위한 주택을 지었다.

북촌으로 북진하려는 일본인으로부터 경성을 지키고, 당시 가난했던 조선인에게 할부와 월부 등으로 집을 살 기회를 제공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일제가 있었고, 그들이 우리의 언어와 사상, 삶 자체를 말살하려던 경성시대였는데 말이다.

“그는 성공한 부동산 디벨로퍼이자 대자본가에 그치지 않았다. 민족운동단체인 신간회를 후원하고 조선물산장려회의 실질적 성공을 이끌었다. 본인의 건물에 조선물산장려회 사무실과 저시관(상점)을 개설해 조선물산장려운동의 황금기를 열었고, 이후 조선어학회에도 회관과 토지를 기증하며 조선어사전 발간에 깊숙이 개입했다. 일제는 그의 민족주의 운동을 빌미 삼아 고문을 가하고 재산을 강탈했다. 그리고 그의 부는 시간과 함께 소멸되었고, 그에 대한 기억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 본문 중에서

주택을 규격화하고, 표준화하겠다는 앞선 생각을 한옥에 펼친 정세권. 그는 종로 일대의 삼청동, 가회동에 한옥거리를 일궈나갔고, 지금의 근대적 한옥집단지구가 그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그 중 익선동은 서울시가 마지막 한옥마을로 지정한 곳이기도 하다. 그가 아니었다면 한옥의 맥이 끊어졌다는 평도 있으나, 정작 정세권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누가 왜 이곳을 만들었는지, 이곳이 왜 아직까지 남아있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이다.

“월세가 계속 오르고 있어요. 옛날에는 안국역 앞에 있는 큰 회사들에서도 여기까지 점심을 먹으러 왔는데, 지금은 음식점이 많으니까 단골들만 찾아오죠.” 20년 째 익선동에서 고기 집을 한다던 주인의 말이다. 점심때가 지나 장사 준비를 하던 그에게 정세권에 대해 물었지만, 그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익선동에서만 볼 수 있는 복고풍 아이템  

현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그의 멋은 향유하지만 그의 정신은 알지 못한다는 것. 그때나 지금이나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 되어주는 이곳을 젠트리피케이션이 휩쓸고 지나갈, 철지난 유행가처럼 여긴다는 것. 인터넷 상에 익선동은 곧 해방촌이나 경리단길처럼 될 거라는 우려의 기사가 쏟아진다. 곧 과열된 인기가 식을 거라는 얘기다.

그래서 안타깝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 바짝 벌고 빠지려는 상점들과 오직 핫한 곳만 찾아다니는 젊음을 설명하기에 익선동은 지금 과잉된 외관 인테리어만큼이나 치열하다. 그리고 그뿐이다.

옛 경성시대 의상 대여점이 익선동에 벌써 네 곳이나 있다. 원조격인 경성의복은 현재 2호점을 준비 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평일 낮이면 우리나라사람보다 일본 사람이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곳도 익선동이다.(사진=소비자경제)
옛 경성시대 의상 대여점이 익선동에 벌써 네 곳이나 있다. 원조격인 경성의복은 현재 2호점을 준비 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평일 낮이면 우리나라사람보다 일본 사람이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곳도 익선동이다.(사진=소비자경제)

최근들어 많은 이들이 경성 시대 복장을 하고 익선동을 거닌다. 경성 시대 의상을 대여해주는 것이 익선동만의 트렌드다. 벨벳 드레스에 망사 달린 모자, 레이스 양산과 장갑은 경성 시대처럼 꾸며놓은 익선동에서만 할 수 있는 아이템이 됐다.

이러한 경성의상 대여점이 익선동에 벌써 네 곳이나 있으며, 원조격인 경성의복은 현재 2호점을 준비 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평일 낮이면 우리나라사람보다 일본 사람이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곳도 익선동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서울의 명칭인 경성을 버젓이 사용하면서 말이다.

우리가 빌려 입고, 되어보려는 경성 시대 사람들은 분명 실제로 그런 복장을 하고 익선동을 거닐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거리를 똑같이 따라하고 거닐며, 우리는 다른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 100여 년 전, 경성 시대를 살며 독립을 꿈꾸었던 그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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